여호와의 성전 산(Zion)의 높아짐 (이사야 2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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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삼현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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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보았던1)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다2)..
이사야 1:1에 이어서 2:1에서도 큰 표제(Superscription)가 나타난다. 이사야 1:1의 표제는 이사야서 전체 66장에 대한 것《곧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를 두루 거치면서 선지자가 유다와 예루살렘, 특히 열방 모두를 포함해서 본 계시》이라고 한다면, 이사야 2:1의 표제는 이사야 2∼12장에 대한 것《곧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선지자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두고 본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3)
(2절) 말일에(In the latter days) 여호와의 집(성전)의 산이 굳게 세워지게 될 것이다.
그 산들의4) 머리(꼭대기) 위에 그리고 언덕들보다(비교급=위에) 높여질 것이다.
모든 나라들(만방)이 거기로(=예루살렘 성전 산으로) 모여들 것이다(flow).
(3절) 많은 백성들이 (거기로) 갈 것이며 말할 것이다.
“가자, 우리가 올라가자, 여호와의 산으로 야곱의 하나님의 집으로
그가 우리에게 그의 길을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길에서 행할 것이다.”5)
이는(For) 시온으로부터(도치=강조) 율법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4절) 그가 민족(나라)들 사이에 판단하실 것이다.
그가 많은 나라들을 판결하실 것이다(=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칼들을 쳐서 쟁기(보습)들로 바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창들을 (쳐서) 낫들로 (바꿀 것이다)
한(이) 나라가 한(저) 나라에 대항해서 칼을 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아니할 것이다.6)
(5절) 야곱의 집이여, 가자, 그리고 우리가 여호와의 빛7) 가운데서 행하자.
⦁2:2∼5의 단락에 대하여. 먼저 히브리어 표현에 따라서, 우리는 2∼5절을 한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왜냐하면 2:6절(“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신 까닭…”)이 앞 단락에 대한 명백한 이유를 제시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다른 단락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구절은 바로 3절과 5절이다. 3절(많은 백성=만방의 고백 혹은 호소: “가자, 우리가 올라가자, 여호와의 산으로…우리가 그의 길로 행할 것이다”)과 5절(야곱의 족속을 향한 권면: “야곱의 집이여, 가자, 그리고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은 돋보일 만큼 inclusion(포괄구조=시작과 종결)을 형성하기 때문에, 더욱 한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8)
⦁2:2∼5의 내용에 대하여. 2∼5절은 마지막 날 ‘하나님의 (꿈꾸시는) 예루살렘’9)이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게 될 것인지를 묘사하고 있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이사야 1:27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온은 공평(미쉬파트=justice)으로, 공의(체데카=righteousness)로 구속된다”고 하는 말씀의 계속10)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시온’(3절)이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이사야 1:8에서 시온은 ‘남은 자’로 언급되고 있고(“겨우 남았다”) 이사야 1:27에서 시온은 하나님의 은혜(미쉬파트와 체데카)로만 구속되는 공동체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우리는 시온이란 단순한 지리적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며, 앞으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할 대표적인 명칭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11)
마지막 날(말일, 2절)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apocalyptic(묵시적)이란 현재의 질서가 완전히 파괴되고 완전히᜶전적으로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는 것을 뜻한다. eschatological(종말적)이란 역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기존질서 그대로 마무리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러한 엄격한 구분이 필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어서 마지막 날이란 apocalyptic(묵시적) 날인 동시에 eschatological(종말적)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12)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시온의 궁극적인 모습(2∼3절): 여호와의 집(성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들 위에 (가장 높게) 확실하게 세워진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확실하게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산’이란 고대 근동의 관점에서 대체로 종교적, 정치적 형태의 모든 권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의 산이 높아진다는 말은 모든 정치적, 종교적 세력들 위에 군림한다는 뜻이다. 13)그 결과로써 모든 나라들(만방)이 거기로 마치 물결처럼 모여든다.14) 이유는 여호와의 율법(교훈), 여호와의 말씀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곧 거기에 살 길이 있기 때문에, 열방이 집결한다는 뜻이다. 율법이 시온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시내 산 언약을 상기시키고 있다. 과거에 이스라엘이 옛 언약(시내 산)을 파기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새 언약은 다른 방식으로, 곧 시온 산에서부터 세워지고 완성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호와의 샤파트(통치, 4절),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에 관한 선언이다. 그가 민족(나라)들 사이에서 판단하실 것이다. 나라들 사이의 논란, 심지어 전쟁까지도 구별하시는 분임을 통해서,15) 여호와는 ‘권위 있는 판결을 내리는 통치자’이심이 드러난다.16) 그는 많은 나라들에 대하여 결정을 내리실 것이다(render decisions). 17)바로 갈등 해결자 혹은 중재자의 모습을 띠고 계신다.
마침내 우리는 시온의 영광스러운 모습(=여호와의 성전의 산이 모든 산들 위에 높이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만방이 시온으로 몰려올 뿐만 아니라, 세상에 도래한 완전한 평화를 만나게 된다. 전쟁 도구(칼과 창)가 농업 기구(쟁기와 낫)로 바꾸어지는 모습과 이 나라가 저 나라에 대항하여 칼을 들지 않는 모습에서, 우리는 전형적인 평화의 상징을 마주하게 된다. 18)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이런 평화의 도래를 바라보면서, 이것을 그리스도의 초림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재림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초림(“이미”)으로만 보기에는 열방들끼리의 관계가 상당히 어색하다는 것이며, 재림(“아직”)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적용으로는, 각 개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영적 평안의 도래뿐만 아니라 원수까지도 선으로 이길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롬 12:14∼21).
“야곱의 집(족속)이여, 가자,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5절) “가자, 우리가 오르자,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자”(3절)라는 열방의 고백(호소)은 “야곱의 족속이여, 가자,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5절)는 야곱 족속을 향한 권면에서 메아리치고 있다(롬 11:11∼12). (*)
각주
1) 시각적으로 눈으로 보는 것을 뜻한다기보다는 “내적(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인식하는 것”(perceive with the inner vision)을 말한다(B.D.B. p. 302).
2) 이사야 1:1의 표제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명사가 ‘하존’(vision=이상)이라면, 이사야 2:1의 표제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명사는 ‘하따발’(the word=말씀, 메시지)임을 고려하라.
3) 이사야(서)의 표제의 범위에 대하여, 독자는 엄격하게 기계적으로 구분하기보다는 유연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사 6:1)라는 표현은 이미 ‘요담 왕의 통치하던 시대’ 내지 ‘아하스 왕의 통치하던 시대’이었다는 것(7장)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열방들의 신탁을 소개하는 이사야(서)의 둘째 단락(사 13∼23장)에서 사용된 ‘아하스 왕의 죽던 해에’(사 14:28)라는 표현에서는 이미 ‘히스기야 왕의 통치하던 시대’이었음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4) ‘그 산들’(복수)은 시적으로 혹은 격조 높은 스타일로 ‘총괄적으로 모든 산’을 가리킴(B.D.B. p. 250).
5) 직접 화법(direct narration)을 여기까지로 제한하는 것은 ESV를 따른 것이다(Crossway판, p. 669).
6) (히) ‘라마드’가 exercise in(훈련하다), learn(배우다)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B.D.B.가 여기는 배우는 것이라고 규정한다(B.D.B. p. 540).
7) “여호와의 빛 가운데서 행하자”라는 표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엡 5:8, 히 1:3을 참고하라).
8) 그렇지만 개역이나 개역개정은 사 2:5부터 새로운 단락을 만들고 있다.
9) 특히 2:6 이하에서 드러난 ‘사람의 (망가뜨린) 예루살렘’, 곧 황금만능 도성으로 변질된 예루살렘의 모습과 뚜렷하게 대조된 점을 참고하라. 이사야 2:6의 첫 시작은 “주님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신 까닭은…”이라고 도입한다.
10) 혹은 ‘확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11) 신약적인 관점에서 ‘메시아(어린양)를 따르는 공동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계 14:4). 신자들로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crucifixion)이 바로 ‘온 세상을 향하여 높이 드러나고 세워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롬 3:25을 참고하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세우셨으니”).
12) 흔히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면, 옛 것(첫 창조)은 지나가고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재창조)이 도래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개혁주의 해석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재창조)이 도래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질적으로 그렇게 느낄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할 정도로, 변화된 것을 뜻한다(고후 5:17, 계 21:5).
13) 시편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그리스도인은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crucifixion)이라고 고백하게 된다.
14) 행전 2:8∼11을 참고하라.
15) B.D.B. p. 1047.
16) 알렉 모티어, p. 107.
17) The New Scofield Study Bible, p. 927.
18) 무디성경주석, p.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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