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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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나의 상대적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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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윤석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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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들어가며]

 

우리는 요한복음의 주제,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라는 것이 기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는 단순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 받은 것을 아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기독교는 그분의 충만한 데서 받는 것이다. 사람의 영혼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이다. 영원한 것을 받는 것이다. 신성한 성품(벧후 1:4)을 받는 것이다. 여러분은 과연 그의 충만한데서 받고 있으며, 은혜 위에 은혜를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기독교가 제안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에 담긴 의미 또한 이것이다. 우리는 이 충만함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알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충만함을 받지 못하게 가로막는 방해물과 장애물이 많다. 영혼의 원수 마귀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고전 3:1)로 머물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 든다. 그 가장 큰 장애물 중에 하나는 요한을 따르던 자들의 마음에 있던 혼동이다. 그 혼동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이에 우리는 세례요한의 고백인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를 살펴보자.

 

1. 우리의 경험 속에서 그분가 차지하는 상대적 위치에 따라 영적인 상태와 상황의 수준이 달라진다

 

여러분의 삶과 경험 속에서 그분과 나는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상대적 위치가 어떠한가? 상대적 비중이 어떠한가? 예수그리스도와 나의 인격적인 관계가 어떠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보다는 나 자신의 행동을 신뢰할 위험이 늘 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참 위치는 이 살아 있는 교제, 그리스도의 생명, 성령의 생명 안에 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선행을 했는지 따지지 말자. 얼마나 바쁘게 활동했는지도 따지지 말자. 그것은 시금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육신 안에서도 할 수 있다. 시금석은 그분과 나의 관계이다. 예수께서 전면에 드러나시면 내가 사라지고, 내가 전면에 드러나면 그분이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서로 긴밀히 엮어 있고 묶여 있어서 각자 따로 움직일 수 없다. 이것은 따질 여지가 없는 영적 생활의 기본원칙이자 절대법칙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세례 요한은 이 말을 통하여 주님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다. 그는 이미 그분을 가리키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1:29)이라고 말했다. 주님이 누구신지 어렴풋이 보았기 때문에, 주님께 세례를 베풀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에 대해 미리 알려주신 사실을 기억했기에, 그는 흥해야 하고 자신은 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 일이 끝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2. 더 나아가 더 깊고 구체적인 영적 의미가 있다.

 

우리가 그의 충만함과 은혜위에 은혜를 받기 위해 그는 흥해야 하고 우리는 쇠해야 한다. 영적인 생활에는 확실한 필수 원리와 법칙들이 있다. 요한복음 3장 앞부분에서도 벌써 세 가지 필수 원리가 나왔다.

 

1) 첫 번째,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원리는 내게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3:7)이다.

오늘날 세상이 제시하는 모든 교훈과 기독교 메시지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절대 법칙이다. 어떤 이견을 제시해도 변하지 않는다. 주님은 이 점을 놓고 니고데모와 토론을 벌이지 않으셨다. 주님은 계속 그를 저지하며 입을 막으셨다. 질문이나 다른 말을 꺼내지 못하게 하셨다.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3) ”거듭나야 하겠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할 때 절대적으로 중요한 원리이다. 타고난 천성 그대로는 믿을 수 없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육에 속한 사람에게는 믿음이 없고 믿을 수도 없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어리석게 보인다. ”거듭나야 하겠다.“ 이것은 영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2) 두 번째 필수 원리는 주님의 죽으심과 관련된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 그분은 죽기 위해 오셨다. 그의 죽음이 없었다면 구원도 없었을 것이다. 그분의 죽음은 어떤 일어난 일에 대한 처방책이거나 갑자기 된 사건이 아니다.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된 일이었다(벧전 1:20). “하나님이 정하신 뜻미리 아신일이었다(2:23). 그의 죽으심은 인간이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않고자 의도하신 일이었다(고후 5:1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는 반드시 높이 들리셔야 했다. 이것은 영적 생활의 자명한 이치요 기본 법칙이다.

 

3) 세 번째로 그의 충만함과 은혜 위에 은혜를 받고 싶다면, 반드시 쇠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명을 알고 더 충만히 알고 싶다면,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3:18-19) 충만해지고 싶다면, 그는 흥하셔야 하고 우리는 쇠해야 한다. 이것은 절대 법칙이다. 여기에 대해 논쟁하려 한다면, 큰 생명과 충만함으로 가는 길만 가로막힐 뿐이다.

 

3. 이 일은 계속되는 과정이다

 

그의 충만함과 은혜위에 은혜를 받을수록, 우리의 삶과 경험에서 그는 점점 더 흥하시고 우리는 점점 더 쇠하게 된다. 이제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는 말의 소극적 측면을 강조해보자.

우리 삶의 원수는 자이이다. 이 말은 우리 안에 있는 가장 큰 원수가 자아라는 뜻이다. 물론 우리의 가장 큰 원수는 마귀, 사탄, ”이 세상 신“(고후 4;4)이다. 그런데 마귀는 무엇보다 자아를 통해 일한다. 최초의 유혹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이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다고? 왜 그랬을까? !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 같은 존재가 되어 모든 지식을 얻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라는 것이다. 뱀은 교만에 호소했고 자아에 호소했다. 그것이 원죄로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아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틀어 가장 큰 장애물이며 방해물 역할을 해왔다.

이렇게 자아가 쇠하지 않고 처리되지 않으면 그분의 충만함을 받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음료가 있어도 그릇이 차 있으면 담을 수 없다. 좋은 음료를 담으려면 그릇부터 비워야 한다. 빈 그릇에만 음료를 채울 수 있다. 이와 같이 내가 쇠하지 않으면 그가 흥하실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음료가 있어도 그릇이 차 있으면 담을 수 없다. 좋은 음료를 담으려면 먼저 그릇을 비워야 한다. 이와 같이 내가 비우거나 쇠하지 않으면 그분이 흥하거나 채워질 수 없다.

 

* 이런 우리의 상태와 정확한 위치에 대해, 우리 자신을 검증하는 가장 좋은 시금석은 무엇일까?

 

1) 첫째 시금석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헬라철학자는 지혜롭게도 너 자신을 알라는 중대한 말을 성공적인 삶의 첫 번째 법칙으로 제시했다. 성경의 첫 번째 중대한 원리도 이것이다. 자신의 정확한 실상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다.

 

(1) 자신을 냉철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로마서 12;3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는 모두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자신에게 도취되어 있다. 그러나 냉정하고 정확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2) 자신을 정확히 보도록 믿음의 선진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갈라디아 6:3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자기기만은 하나님의 충만함을 빼앗아 간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을 정확히 보는 것이며, 그렇게 하기에 아주 좋은 방법은 초대 교부들과 청교도들이 율법의 일이라고 불렀던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실상을 명확히 드러내고자 율법을 주셨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율법은 범법하므로 더하여 진 것”(3:19)이라고 말했다. 율법이 온 것은 죄를 지목하고, 유죄를 선고하며 우리 실상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바울도 자신에게 크게 만족하며 살다가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다(7:9) 고백한다. 이것이 자아를 죽이는 방법이다. 율법은 탐심을 강조함으로 그의 실제 상태를 정확히 드러냈다. 사도는 빌립보서 3장의 짧은 자전의 기록에서 고백한다. 자신이 매우 올바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율법이 다가오자 모든 것이 쓸모없고 소망 없고 가치없는 배설물이요 쓰레기요 해로운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은 율법으로부터이기 때문에 회개가 따를 수밖에 없다.

자신을 바로 보아야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절실히 필요함을 알게 된다. 율법이 자신에게 작용되어야 자기의 실상을 알게 된다.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 모든 놀라운 재능에도 불구하고 믿기 힘들만큼 겸손해졌다. 그것이 은혜로 받은 것이었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바울 자신도 자기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1-13)”

바울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디도서에서 우리에 대한 진실, 즉 태어날 때부터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3:3)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려면 이 깨달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부 은혜로 받은 것이요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기에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로워질 뿐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전부하시는 일이며 전부 주시는 일이다.

 

(4) 이런 자식을 잘 알수록 자신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

율법보다 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율법은 우리의 실상을 정확히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율법의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율법의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자신의 연약함을 계속 인식해야 하고, 최선의 행동조차 누추하다는 것을 계속 인색해야 한다. 바울은 그가 구원을 확신하고 감격하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2-14).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서 계속 이렇게 생각하며 달려갔다. 출발할 때만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계속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이렇게 자기 실상과 마음의 어둠과 무가치함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면서 계속 쇠하여야 한다. 바울처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안다고(7:18) 고백해야 한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로 보는 자는 쇠하게 되어 있다.

 

2) 둘째 시금석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과연 나 중심성에서 점점 더 벗어나고 있는가? 자기중심성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해치는 독약이요 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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