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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르치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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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철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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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성경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르치는가? (2)

(Does The Bible Teach The Deity of Christ?) 

 

12-2장 성경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르치는가?(2): 12살 때, 아이 예수님은 성전에서 발견되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근심하면서 그를 찾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선생들 가운데서 그들의 말을 들으며 또 그들에게 질문하는 그를 찾았다. 그들은 말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그때 소년 예수님의 이상한 대답이 있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마리아가 그 12살 소년의 아버지에 대해 말했을 때 그 여자는 그 아이의 인간적 아버지 즉 그에게 다른 어떤 인간보다 더 아버지와 같은 관계에 있었던 사람을 의미했다. 소년 예수님의 대답에서 그의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의미하셨다. 그가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우리 아버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던 것을 주목하라. 그는 이 땅 위에 살았던 어떤 다른 인물에게 적용될 의미와는 전적으로 다른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것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시는 방식에 대한 가장 이상한 사실들 중의 한 가지를 제공해준다. 이 이상한 사실은, 현대의 불신자들이 아주강경하게 참되지 않다고 거부하는 요한복음에서 뿐만 아니라, 공관복음서에서도 나타난다. 그 이상한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사복음서 전부에 의하면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고, 우리라는 말로 자신을 자기 제자들과 한 부류로 간주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는 나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시고 그의 제자들에게는 너희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아들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을 자기 제자들과 한 부류로 간주하여 우리 아버지라고는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다.


주기도’(The Lord's prayer)우리 아버지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그 기도를 하지 않으셨던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기도에는 죄()의 고백이 들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고백할 죄가 없으셨기 때문이다. 주기도는 그가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이었지, 그가 스스로 기도한 기도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 중요한 사실은 남아 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들에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께 우리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결코 나타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버지이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아버지이셨다. 그러나 그는, 그가 그들의 아버지이셨던 의미와는 전적으로 다른 의미로 그의 아버지이셨다. 예수님께서는 전적으로 독특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병행 구절들을 가지고 있는 마가복음의 시작 부분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공적 사역(公的事役)의 시작에 대해 듣는다. 그 사건은 한 기적에 의해 두드러졌다. 성령께서 예수님 위에 내려오셨고 하늘로부터 이런 음성이 있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여기에 언급된 하나님의 선한 기쁘심은, 예수님께서 그의 공적 사역에 보냄을 받았던 그 순간에 이루어진 명확한 승인의 행위이었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러한 하나님의 승인의 행위는, 그와 같이 승인을 받은 그 분께서 하나님을 향하여 항상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명히 간주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승인을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셨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의 승인을 받으셨다.

그러한 문제와 또 그와 비슷한 문제들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를 위해 나는 여러분에게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가 쓴 예수님의 자기 계시(The Self-Disclosure of Jesus)라는 학문적이고 아주 많은 빛을 주는 책을 부수적으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의 공적 사역(public ministry)에 들어오신다. 그는 그러한 공적 사역에서 자신을 어떠한 모습으로 제시하시는가?


여기에서 한 가지 위대한 중심적인 사실이 우리 눈앞에 닥친다. 나는 그것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것이다――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단지 신앙(信仰)에 대한 모범으로서 제시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제시하신다. 그러한 사실은 불신자들이 전적으로 비역사적이라고 거절하는 요한복음에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세 권의 공관복음서들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공관복음서들에서 그것은 현대 비평학(modern criticism)이 복음서들의 배후에 있는 아주 초기의 자료들로부터 왔다고 옳든 그르든 간에 생각하는 부분들에서도 나타난다.


여러분은 복음서들의 어느 곳에서도 그것을 떠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곳에 퍼져 있다. 그 사실은 제임스 데니(James Denney)에 의해 그의 책 예수님과 복음(Jesus and the Gospel)에서 아주 설득력 있게 증명되어 있다. 나는 그 책을 여러분에게 전체적으로 추천하지는 못한다. 어떤 점들에서 그것은 애석하게도 잘못된 책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즉 공관복음서들을 포함하여, 그리고 옳든 그르든 공관복음들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된 자료들을 포함하여 신약성경의 어느 곳에서나 예수님께서는 신앙에 대한 단순한 모범으로서가 아니고 신앙의 대상으로서 표현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가? 우리가 예수님께서는 일차적으로 신앙에 대한 모범으로가 아니고 신앙의 대상으로서 제시되신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매우 단순한 어떤 것을 그리고 동시에 매우 굉장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단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나를 보라. 나는 참된 종교를 실행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내가 실행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종교(宗敎)를 실행하라고 명한다.”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그가 단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나를 보라. 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내가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과 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명한다.”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그가 단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나를 보라. 나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여긴다.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내가 그를 나의 아버지로 여기는 것과 똑같은 의미로 너희가 하나님을 역시 너희의 아버지로 여기라고 명한다.”


현대의 불신자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표현한다. 그들은 그를 좀 더 넓은 형태의 종교생활로 안내하는 안내자로 여긴다. 그들은 그가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설립자라고 여긴다. 그들은 기독교가 예수님의 종교생활에 대한 모방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종교' 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예수님에 ’(about) 복음과 구별되는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of) 복음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이와 같이 그들은 예수님을 단순한 선생과 모범의 위치로 떨어뜨린다. 그들은, 그를 그 내용으로 가지고 있는 그 복음으로부터 단지 그가 전파한 복음이었던 한 복음(a gospel)에 로 돌아선다.


그들이 그렇게 할 때, 그들이 과거 천 백 년 동안 기독교로 알려져 왔던 것으로부터 돌아서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역사적 자료들에서 우리에게 제시되어있는 예수님 자신으로부터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사복음서 모두에 의하면, 그리고 현대의 비평학이 사복음서에 대해 발견하려고 했던 모든 가상적(假想的)인 자료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그의 복음 안에 두셨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복음은 또한 예수님에 복음이었다. 그가 전파하셨던 복음은 또한 그를 구주로 제시했던 복음이었다. 그는 단순히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물론 요한복음서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공관복음서들에서도 나타난다. 사실, 공관복음서들에 의하면, 예수님의 공적 사역 중에서 그가 일반적으로 자신의 인격을 체계적인 이야기의 명확한 주제로 삼지 않으셨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조금 더 깊이 본다면, 여러분은 모든 곳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사람들의 구주로 제시하고 계셨고 그들에게 자기를 믿으라고 요구하고 계셨음을 알 것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그의 병 고침의 기적들에서 나타난다. 그는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누구에 대한 믿음인가? 아마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대해 가지고 계셨던 믿음과 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그 이야기들을 주의 깊게 읽고 그러한 해석이 참으로 정당한지 스스로 질문해보라고 말한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이 정당치 않음을 발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기적들을 행하셨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그가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명하셨던 그 믿음의 대상으로 제시하셨다. 물론 그가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라고 명하셨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은 또한 그에 대한 믿들을 구원했던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는 그 백성들을 육체적인 질병들로부터 구원하셨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들의 영혼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셨다. 그것은,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온 중풍병자를 고치심에서 명백하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단지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 드러나게 표현되지 않은 경우들에서는 확실히 합의되어 있다. 모든 복음서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신다. 그리고 그가 그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수단은 그가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구주인 그에 대한 믿음이다.


이와 같이 모든 복음서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참된 종교적(宗敎的) 믿음의 대상으로 제시하신다. 참된 종교적 믿음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그는 하나님이시다. 모든 복음서들에서 그리고 심지어, 옳든지 그르든지 간에 복음서들의 기초가 된다고 상상되는 자료들에서도, 예수님께서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제시하는 방식은 예수님 자신이 자기 자신의 신성(神性)에 대해 증거 하신 거대한 증거이다. 그 증거는 단지 각개의 구절들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림 전체에 가득한 일종의 풍취이고 혹은, 표현을 바꾼다면,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기초이다. 만약 여러분이 그것을 무시하면, 성경이 예수님에 대해 제공하는 모든 이야기는 절망적인 수수께끼가 될 것이다.


다음 강연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하여 계속 취급하기를 원한다. 지금은 그 큰 주제를 제시하는 일을 단지 시작할 수 있었을 뿐이다.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대의 불신자들과 함께 그를 단지 보다 높은 형태의 종교적 생활의 창시자, 곧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인간의 형제 됨에 대한 어떤 영속적인 사실들의 발견자로 생각하는가?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그를 영광의 주님, 곧 여러분을 여러분의 죄로부터 구원하기위하여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 생각하는가? 혹은, 마지막으로 그에 관해 미결정() 상태 인가? 두 견해 중에서 어느 것을 취할지 결정치 못한 상태인가?


여러분은 믿음의 가족들 밖에 서서 그 안의 따뜻함과 기쁨을 갈망하면서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는가? 여러분은 어두운 의심들로 말미암아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 받고 있는가? 만약 여러분이 그러한 세 번째 부류에 속한다면, 여러분이 적어도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고 말하게 되기를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말한다면 주님께서는 옛날에 그렇게 말했던 사람을 도와주셨던 것과 같이 여러분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실 것이며, 여러분을 믿음의 밝은 빛 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다(If you do say that, the Lord will help your unbelief, as He helped the man who said that so long ago, and will bring you into the clear shining of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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