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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장 예수님은 또 다른 수사적 표현법을 어떻게 사용하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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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재도 선교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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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장 예수님은 또 다른 수사적 표현법을 어떻게 사용하셨나?

            How did Jesus use other rhetorical devices in his teaching?


(다음의 글은 로이 주크의 저서, [예수님의 티칭 스타일]의 제 13장을 요약하고, 정리하고, 추가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 신 후에 그곳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13:53-54)

 

예수님의 교수 방법에는 유머, 수수께끼, 격언 또는 경구, 반복, 논리적 추론, 대조, 실례(examples)와 설명, 운율 등의 탁월한 수사학적 방법들이 있다.


유머 (Humor) 

유머는 반어법과 마찬가지로 예기치 않은 것을 제기한다.

유머는 모순된 것, 역설적인 것, 이치에 맞지 않는 것, 혹은 얼토당토 않은 것을 말함으로써 듣는 사람들로부터 미소 혹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죄인들을 구원하실 목적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려고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그토록 심각한 사명에도 불구하고 유머가 매우 풍부하셨음에 놀라워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커뮤니케이터이자 교사이셨던 예수님은 종종 해학적인 말씀을 통하여 큰 효과를 보셨다.

다음의 성경 말씀들은 예수님의 유머스러운 표현을 잘 보여준다.

자신들의 자선을 알리기 위해 나팔을 불어대는 바리새인들의 모습.(6:2)

커다란 나무 기둥이 사람의 눈에 박혀 있는 것.(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소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7:3)

낙타가 바늘 귀를 통하여 들어가는 것.(19:24)

맹인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23:24)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함이 아니냐?”(4:21)

누군가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진다거나(7:6)

자식에게 떡 대신 돌을 주고, 생선 대신 뱀을 주며(7:9-10),

알 대신 전갈을 준다거나(11:2),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7: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7:16)

모래 위에 집을 짓는다(7:26) 고 생각한다면 이는 실로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11:15, 13:9, 13:43)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우스운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귀가 있고, 귀로 듣지 않는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7:15)

이리가 실제로 양의 가죽을 쓸 수 있겠는가? 이는 우습고도 거짓된 모습이 될 것이다.

유머는 예상 밖의, 그리고 극단적인 것들을 사용함으로써 예수님의 비판을 더욱 통렬하게 하고 기억에 오래 남게 해주었다.


수수께끼 (Enigmas) 

좋은 선생은 학생들이 알아야 할 것을 항상 말해주는 대신, 가끔씩은 그들이 생각하게끔 만든다.

예수님은 때때로 모호한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예수님이 확실히 알지 못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학습을 증진시키기 위해 그런 방법을 사용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을 생각해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8:2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17:12)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4:2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5)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6:51-5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21:18)

 

오늘날의 교사들도 해결책이나 답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학생들이 토론하도록 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조심스럽게 선택된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사용함으로써 학습에 좋은 효과를 꾀할 수 있다.


경구 혹은 금언 (Maxims or Aphorisms) 

예수님은 경구를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셨다. 예수님의 경구는 매우 뛰어났고 다양하면서도 심오한 뜻을 가졌다.

복음서 안에는 예수님의 간결하고도 함축성 있는 진술들이 가득하다.

경구가 지니는 간단명료함은 심지어 그것들을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파고 들어 자리잡게 해준다.

속담과 경구 간결하고 기억하기 쉬운 형태로 생각을 정제하고 압축시킨 짧은 진술이다.

속담 지혜의 모음을 전달하고, 발생 자체가 대중적이고, 그 사회의 문화적 전통을 대변한다.

경구 한 개인의 산물이며, 말하는 이의 독특한 견해를 표현하는 신선한 창의물이다.

예수님 당시의 율법학자들도 많은 금언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금언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는 통렬함이 없다.(통렬함 = pungent force, 날카로운, 신랄한, 찌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경구의 수효는 학자들마다 다르다.


자명한 내용을 진술하는 경구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5:13)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5:14)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6:27)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리라”(6:34)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19:26)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24:28)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15:15)


예상 밖의 내용을 진술한 경구들 :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6:21)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7:2)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12:8)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12:34)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15:18)

이와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20:16)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22:14)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26:41)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26:52)

예수님은 많은 경구와 금언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많은 경구와 금언들을 들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반복 (Repetition) 

반복은 적절히만 사용하면 학생들의 마음에 진리를 확실히 심는 효과적인 학습 도구가 된다. 어떤 것들은 반복해서 가르쳐야 할 가치가 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고 아홉 차례에 걸쳐 거듭 말씀하셨다.(5:3-11)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반복해서 지적하심으로 자신이 바리새인들의 전통보다 권위있음을 밝히셨다.(5:21-44)

염려하지 말라를 반복하셨다.(6:25, 31, 34)

두려워하지 말라를 반복하셨다.(10:26, 28, 31)

화 있을진저라고 7번이나 거듭 말씀하셨다.(23:13-29)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맹인이여라고 다섯 차례 부르셨다.(23:13-26)

마가복음에 있듯이 예수님은 세 차례 자신에게 다가올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예언하셨다. (8:31, 9:31, 10:33-34)


논리적 추론 (Logical Reasoning) 

가르침에는 학생들이 생각하도록 하는 일, 즉 논리적이고 정확하게 생각하게 이끌어 주는 일이 포함된다. 예수님 역시 면밀한 논리적 전개와 논증을 통해 그런 표현을 하셨다.

 

첫째, 일반화 논법

덜한 것에서 더한 것으로 옮겨가는 논리다. 이 논리 방법은 이전에 내린 결론 또는 받아들여진 사실보다도 훨씬 더 강한 결론을 유도해 낼 수 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6:26)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7:11)

제자가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10:25)

 

둘째, 귀류법

사람의 견해를 불합리한 논리적 결과로 이끌고 간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듣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리와 불의한 자들로 비쳐지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장하셨듯이 단지 자기들만을 사랑하고 자기 형제에게만 문안하는 것은 위에 언급한 죄인들과 똑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그들이 원치 않는 것이므로 산상수훈을 듣던 자들은 자신들의 습성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5:46-47)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5:46-4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니라.”(18:23)

 

셋째, 대인논증 방법

이것은 논리 자체 보다는 사람의 감정이나 선입관에 호소하거나 상대방을 공격하는 논법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12:4)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대한 무지를 지적하신 것이다.

그런 힐책은 예수님의 행위나 말 속에서 흠을 잡으려는 자들의 노력을 무너뜨리고 오히려 그들을 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8:7)

무리가 예수님을 곤궁에 빠뜨리기 위해 간음 현장에서 잡은 여인을 주님 앞으로 끌고 왔을 때에도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셨다. 요한복음 8:7의 말씀은 얼마나 기막힌 것인가?

이로 인해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넷째, 배중률 논법 (law of the excluded middle)

이것은 논쟁하는 자가 주어진 상황에서 단지 두 개의 정반대되는 것만이 존재함을 보이는 추론의 한 형태다.

즉 중립적 위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두 가지중 하나가 반드시 선택되어야 한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12:30)

예수님은 이 배중률을 사용하셔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진퇴양난에 빠뜨리셨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21:25)

그들의 대답이 어느 쪽이 되었든 곤궁에 처하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세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질문함으로써 예수님을 곤궁에 빠뜨리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재빨리 전세를 역전시켜서 오히려 그들을 곤궁에 빠지게 만드셨다.

 

다섯째, 모순불가 논법 (law of noncontradiction)

한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다 혹은 아니다라는 양자택일을 강요함으로써 상대방이 자신의 견해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6:39)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아니다 란 것이다. 즉 이 질문의 답은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주님의 논점을 받아들이게 하셨는지 주목해 보라.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14:28)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15:4)


여섯째, 유추법 (analogy)

예수님은 내용의 전달을 위해 종종 유추법을 사용하셨다. 주님은 어떤 친숙하거나 이미 받아들여진 사실로부터 그와 비슷한 또 다른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셨다.

하나가 사실이므로 그것에서 유추하는 다른 것도 사실인 것이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12:40)

요나 선지자를 삼킨 큰 물고기의 배는 예수님의 묻히심을 묘사한다.

노아 시대 홍수로 인해 많은 사람이 갑자기 목숨을 잃고 오직 소수만이 구원 받은 사건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있을 심판과 구원의 모습을 표현한다. (24:37-41)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15:9)

예수님은 자신이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것과 같다는 것을 전하시고자 유추법을 사용하셨다.


대조 (Contrasts) 

어떤 대상의 반대되는 것에 주의를 집중시킴으로써 그 두 대상의 특성을 뚜렸하게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밤과 낮, 조그만 쥐와 거대한 코끼리, 깨끗함과 더러움,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가난과 부유, 건강과 질병, 뜨거움과 차거움,

어는 것과 녹는 것, 밝음과 어두움, 진실과 거짓, 늙음과 젊음, 역동성과 피곤함, 유식과 무지, 속삼임과 외침, 날카로움과 무딤.

대조를 통해 어떤 생각이나 사람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흥미는 배가 되고, 상상력이 크게 자극되고, 학습은 더욱 효과적이 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다양한 대조를 이루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과 외식적인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대조는 그들의 구제, 기도, 금식에서도 두드러진다. (6장과 7)

용서하는 것과 용서하지 않는 것(6:14-15),

보물을 땅에 쌓아두는 일과 하늘에 쌓아두는 일(6:19-20),

재물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6:24),

물질에 마음을 뺏기는 일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6:32-33),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넓은 문으로 가는 것(7:13-16),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7:24-27) 등이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12:35)

예수님께서 하신 많은 비유가 대조적인 원리로 형성되었다.

포도원에 일하러 간 아들과 정작 일하러 가지 않은 아들,

미련한 다섯 처녀와 슬기로운 다섯 처녀,

이방인들의 심판 때에 언급된 염소와 양,

잃어버린 한 아들과 큰 아들(15:11-32)


실례와 설명 (Examples and Explanations) 

일반적으로 구체적인 실례없이 어떤 내용을 듣게 되면 혼동되거나 도전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예를 더하게 되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한결 명확하게 밝혀줄 수 있다.

일반적 :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

구체적 :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5:22)

 

일반적 :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구체적 :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5:39)

명쾌하면서도 효과적인 가르침을 위해서는 실례와 설명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사항들이 추상적인 의미를 확실하게 하고, 설명을 통해 원리들이 더욱 쉽게 이해되고 설득력 있게 된다.


(Poetry) 

예수님은 말씀 가운데 시적 표현을 사용하심으로 가르침을 더욱 실감나게 하셨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나시고 자라셨기 때문에 종종 히브리풍의 시적 표현을 하셨다.

히브리풍의 시는 영시에서 보게 되는 각운(rhyme)은 거의 없다. 반면에 히브리시의 주된 특성은 대구인데 여기서는 시행들이 서로 대구적으로 존립한다.

이러한 대구는 동의적이거나(혹은 비교), 대조적이거나(혹은 대비), 종합적이거나(혹은 완결), 단계적이다.


동의적(혹은 비교) 병행구의 경우 두번 째 시행은 다소 말들을 달리하면서 첫번 째 시행의 의미를 반복한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7:6)

조적(혹은 대비) 대구에서는 두번 째 행이 첫번 째 행에 대조되어 제시된다.

먼저 된자로서 나중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9:30)

천지는 없어지겠거니와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24:35)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25:46)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9)


종합적(혹은 완결) 

첫번 째 시행에서 발달된 의미가 두번재 시행에 완결되어지는 시적 형태이다.

두번 째 시행은 보통 첫번 째 시행에서 진술된 것에 대한 이유를 제공해준다.

두번 째 시행은 결과나 결론을 진술해준다.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23:9)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8:36)


단계적 대구 

두번째 시행이 첫번 째 시행의 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반복하고 의미를 점차적으로 발전시켜나간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10:40)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니라.” (10:16)

예수님은 듣는 이들이 주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도록 도우셨을 뿐 아니라, 그들이 배운대로 살도록 도전하기 위해 이런 형태의 시를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이러한 시적 형태의 메시지를 담아 전하심으로써 듣는 이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기 마음과 가슴에 담아 간직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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