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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대적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끼치신 영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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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재도 선교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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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장 대적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끼치신 영향은?

            What impact did Jesus have on His opponents?


(로이 주크 저서 [예수님의 티칭 스타일]의 제 10장을 요약 정리한 내용임)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서 오지 아니하였느냐?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7:45-46)

 

학생들 (또는 자녀들 또는 성도들 또는 전도대상자들)이 가르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학생이 가르치는 당신에게 공연히 도전적이거나 싸우는 것처럼 대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아는가?

교사인 당신에게 올무를 씌워서 다른 사람들의 신뢰감을 상실시키려는 그런 학생들을 어떻게 다루는가?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에 이런식으로 반대하는 종교적, 정치적 무리들을 공생애 기간에, 특히 사역 3년 동안에 많이 만나셨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그 무리들은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서기관들, 헤롯당원, 대제사장과 장로들로서 대단히 많았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그 무리들의 호전적인 태도에 대응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능숙한 모습과, 때로는 주도권을 쥐고 강력히 행하신 뛰어난 모습들은 때로는 다루기 힘들고 어려운 학생들을 다루는 교사들에게 좋은 통찰력을 제시한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바리새인들)

바리새인들은 신약성경에 약 100번 정도 언급되었다.(복음서에 88, 사도행전에 9, 빌립보서에 1)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주전 2세기 경에 형성되었다.

주전 175년에 통치자인 안티오쿠스 에피파테스가 유대인들에게 헬라 문화와 이방 풍속들을 강화하자 큰 반발이 일어났다.

하시딤(Hasidim, 충성스런 자들)은 외세에 대항해서 하스모니아파(마카비인들로 알려지기도 함)를 형성했다. 바리새인들은 하시딤으로부터 파생된 여러 무리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바리새란 이름은 페루심이란 히브리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분리된 자들’ (the separated ones) 이란 의미다.

예수님 당시에는 ‘6천명이 넘는바리새파 정회원들이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점차 대중의 지지를 얻어 주도적인 분파가 되었다.

그들은 대부분 기술자, 농부, 상인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의 생활을 지배했고, 일반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오로지 고도의 엄격함과 일관성으로 인해 다른 무리들과 구별된 국가의 핵심이었다.

 

(사두개인들)

사두개인들은 부유하고, 영향력있는 배경 출신들이었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성전관리들이었다.

그들은 하스모니아 왕조 때 생겼는데, 어느 정도 헬라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사두개라는 명칭은 솔로몬 시대의 제사장이었던 사독(Zadok)으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최고 법원인 산헤드린 공회는 70인으로 구성되었는데 그중에는 바리새인들도 약간 명 있었으나 주로 사두개인들로 구성되었다.

사두개인들은 일반 평민들에게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사두개인들은 정치와 종교 양면에서 보수적이었다.

사두개인이란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오직 14번 등장한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신조)

Beliefs of the Pharisees and the Sadducees

 

바리새인 구전되는 전통(oral tradition)은 구약성경의 권위와 동등하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는 기록되지 않은 선조들의 전통을 후손에게 전했다.

사두개인 오직 기록된 구약성경만이 권위가 있고,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구전 되는 전통은 권위가 없다. 그래서 지킬 필요가 없다.

 

바리새인 어떤 일은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또 다른 일은 사람이 결정한다. 운명을 인정한다.

사두개인 사람은 무제한의 자유가 있다. 운명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들의 능력에 달려있다.

 

바리새인 영혼은 사람이 죽어도 존재한다. 저 세상에서 상급과 심판이 주어질 것이다. 육신의 부활이 있다.

사두개인 영혼은 육신과 함께 소멸한다.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의 존재나, 저 세상에서의 상과 벌은 없다. 죽은 사람의 육신의 부활은 없다.

 

바리새인 여호와는 전 우주의 하나님이시며 누구라도 유대인의 믿음에 동조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다.

사두개인 여호와는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한 하나님이시다.

 

바리새인 천사와 악령은 계급적인 조직으로 존재한다.

사두개인 천사와 악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리새인들의 주장 - 모세 오경은 일상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에 관한 지침을 하나하나 제시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가르침을 세우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복잡한 규정들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구전된 것으로, 이것들은 모두 모세 율법들에 대한 해석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세 율법과 동등한 권위로 여겨야 한다.

그런 결과 너무 복잡하고 지나칠 정도로 세밀한 규정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율법에 대한 그같은 열정과 고도의 경건함 그리고 금욕 생활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대중의 존경과 지지를 받았다.

 

바리새인또는 바리새적이라는 말을 들으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나는가?

위선(hypocrisy), 율법주의(legalism), 자기의(self-righteousness),

전통(tradition), 분리주의(separatism), 용납하지 않음(intolerance),

자만(pride), 예배의 조그만 부분들에 대한 너무 지나친 관심 (scrupulous attention to details of worship),

종교적 허식(religious pretense), 정화 의식(ritual purification),

허세적인 종교 행사(ostentatious display of religious acts) 등이 생각날 것이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은 서로 어떻게 대했나?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헌신을 허세를 부리듯이 자랑했다. 그것은 그들의 복장과 연보와 기도와 금식 같은 것들에서 뚜렷히 나타났다.

(23:5, 6:2, 6:5, 6:16, 23:28)

 

그들은 자긍심과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23:5-7)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전통들을 따랐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7:8-9)

 

그들은 스스로 판단하여 영적으로 무지하거나, 불결하게 보이는, 자신들보다 못한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않았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18:9-11)

 

그들은 도덕적 문제들을 등한시하면서도, 의식 형태(observance of rituals)에 있어서는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왔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23:23)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탐욕과 자만감에 빠졌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11:39)

 

그들은 예식적인 정결 작업에 지나치게 빠져 있었다. 정결 의식을 유지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바리새인들은 여러가지 손씻는 방법들을 고안해냈다. 심지어 불결한 손으로 컵의 바깥 부분을 만지면 음식도 불결해진다고 생각했다.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7:1-5)

 

그들은 자기들의 규정 속에 하나님의 계명들을 교묘히 피하는 구별을 만들었다.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지만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는 식이었다.(23:16-22)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이지만 하나님께 바치기로 했다고 부모에게 말함으로써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회피하는 길을 모색했다.(13:3-6)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로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을 가로 막았다. 바리새인들은 이방인들을 바리새적 유대교로 개종시키기는 했지만, 사실 사람들이 주 예수님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되는 일을 막았다.(23:13-15)

 

그들은 사람들을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무거운 짐을 가중시겼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23:4)

 

그들은 영적으로 우월함을 주장했지만 매우 위선적이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같이 살지 못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친 그대로 살지 못하는 위선자들이라고 여러번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23:2-3)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곱 번 저주’(woe)를 선포하셨고, 그중에서 여섯 번의 저주에서 그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hypocrites)이라고 말씀하셨다.

저주란 단어는 불쾌함또는 질책을 의미했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의 선포는 그들의 위선적 생활에 대한 다가올 심판을 강하게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위선을 묘사한 말씀들은 다음과 같다.

회칠한 무덤(23:27), 평토장한 무덤(11:44),

누룩과 같은 외식(8:15), 독사의 자식(12:34),

독사의 새끼(23:33), 눈 먼 인도자(23:16)

 

(예수님께 대한 바리새인들의 반응)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과 그 분의 사역을 반대하였을까?

첫째, 예수님은 그들의 부족함을 지적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의 텅 빈 종교성(empty religiosity)을 강하게 지적하셨다.

둘째, 예수님은 들이 매우 중요시 여기는 전통들을 어기셨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매우 분노했다. 바리새인들이 매우 분노한 내용은?

예수님이 죄인들 세리들과 함께 어울리시는 것(9:1-11)

예수님이 금식하지 않으시는 것((2:18)

예수님이 율법을 거역하는 안식일에 치유하셨던 일(3:1-3)

예수님이 손을 씻는 일을 두 차례 어기셨던 일(15:2)

예수님이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을 따 먹는 것을 개의치 않은 것(12:1-8)

 

셋째, 예수님이 그들의 종교 체제와 자신들의 지도자적 위치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설교와 치유는 유대와 갈릴리 지방과 팔레스타인 지역 여러 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넷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중풍병자와 죄를 지은 여인의 죄를 용서해 주셨음에 분노했다.(5:20-21, 7:47-48)

예수님의 그같은 말씀이 참람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시는데,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으므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10:33)

그러나 그같은 것은 바로 예수님이 강조하셨던 것이다.

 

다섯째,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자신들의 한계를 지적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당황했다.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들의 외적인 순종이 아니라, 내면의 태도들에 미치는 구약성경의 영향에 관심을 기울이셨다.

예수님의 말씀 - 분노는 살인, 욕정은 간음, 결혼은 한평생 연합, 맹세를 실천할 것, 보복하지 말고 도우라,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5:21-48)

 

여섯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했다.

바리새인들이 내보인 감정 상태는 매우 다양했다. 그들에게는 놀라움, 의심, 고소, 비난, 분노, 냉소, 그리고 살인 음모가 있다.

 

일곱째, 바리새인들이 가장 자주 사용한 방법은 질문이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대할 때 적어도 세 번 중 한번은 질문공세를 폈던 것이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신 것에 대해 제자들에게 질문함(9:11)

금식에 대해서 예수님께 질문함(9:14)

안식일에 낟알을 따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함(12:2)

하늘로부터 표적을 내리도록 예수님께 요구함(12:38)

제자들이 먹기 전 손을 씻지 않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함(15:1-2)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돌로 쳐야하는가를 예수님에게 질문함(8:36)

자신들 역시 소경인지 예수님께 질문함(9:40)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책잡기 위해 질문 공세를 함(11:53-54)

언제 천국이 올지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함( 17:20)

예수님께 이혼의 사유들을 질문함(19:3)

가이사에게 세금 내는 문제에 관해 예수님께 질문함(22:15)

어느 계명이 큰지 예수님께 질문함(22:34-36)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모든 반대하고 대적하는 전략에 직면하시는 경우,

그 대부분을 오히려 사람들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으셨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 어떻게 반응했나?)

복음서 저자들은 사두개인들이 부유했고, 제사장 계층이었다고 묘사한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간의 심각한 차이점을 미루어 볼 때, 그들이 함께 세례 요한을 보러 갔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다.(3:7)

그들은 단순히 세례를 받거나, 단순한 호기심이나 관심을 갖고 세례요한을 찾아갔다.

그들은 진정한 회개는 없고, 오직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것만 생각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함께 예수님에게 하늘의 표적을 보여달라고 시험했다.(16:1)

그들의 사악한 의도에서 우러나온 요구를 거부하신 예수님은 그들이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지 못하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시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요나의 표적 뿐이라고 말씀하셨다.(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16: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16:6)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쉽게 적발하지 못하고 부패성과 침투력이 있는 그들의 교훈을 조심하라는 것을 가르쳤다.(16: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16:12)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간의 대표적인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바리새인들은 미래의 부활을 믿는 반면, 사두개인들은 미래의 부활을 부인했다는 점이다.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의도에서 사두개인들은 일곱 형제들로 인해 과부가 된 여인의 경우에 대해 예수님의 의견을 물었다.(22:23-33, 신명기 25:5)

예수님은 대적하는 자들에게 논리(logic)를 사용하셨고, 구약성경을 인용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어떻게 반응했나?)

서기관(teachers of the law, Scribe) :

서기관은 헬라어로 그램마테우스’(=a person of letters, 학문의 사람), 저술가, 학자, 율법 선생, 율법사, 교법사.

그들은 모세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고, 가르치기에 전념했다.

그들은 전문가들이었지 정치적 집단은 아니었다.

율법에 대한 전문적 지식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존경했고,

그들이 율법을 가르쳤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랍비 또는 선생이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서기관들은 바리새인들이었다. 일부 서기관들은 사두개인들이었다. 일부 서기관들은 바리새인도, 서기관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서기관들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일반인들이었고, 대부분의 사두개인들은 제사장들이었다.

 

또 다른 선생인 예수님이 어떤 정규적인 랍비 교육을 받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더 뛰어난 권세와 새로운 메시지로 가르치셨을 때 서기관들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신 때부터 서기관들은 주님을 적대시했다. 그들이 우려했던 것은 율법과 예수님의 권세였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또한 그들이 영적인 문제는 등한시하면서 율법에만 집착하는 것과, 그들의 자만심에 대해 저주의 말씀을 하셨을 때(11:39-44), 율법사들은 자신들도 모욕을 당했다고 말했다.(11:45)

예수님은 율법사들을 모욕한 것을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세 가지 저주(화있을진저’)를 분명히 말씀하셨다.(11:46-52)

서기관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살해하려고 모의했다.

그당시 어떤 종교 지도자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지 않았다.(예외 한 명) 그들은 자신들의 오랜 전통을 버릴 수가 없었고, 자신들의 생활방식이 깊이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께 어떻게 반응했는가?

 

(대제사장들)

대제사장들은 사두개인들로서, 종교적 정치적인 면에서 보수적이었다.

대제사장은 사두개인들과 약간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 70인으로 구성된 유대인들의 법정이었던 산헤드린의 의장이거나 중재자였다.

 

(장로들)

장로들은 평신도 지도자들(lay leaders)로서 정치적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사두개파 성향을 가진 영향력있는 가족들의 연장자들이었다.

회당의 회중들은 장로들이 다스렸는데, 그들을 가리켜 회당장이라고 불렀다.(5:22)

예수님이 예측하셨듯이 대제사장들은 혈안이 되어 주님을 체포해서 죽이려고 애썼다. 그 이유는 주님의 가르침과 행동들이 국가적 종교 지도자들로서 자신들의 권세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결 론)

예수님이 자신을 공격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대하신 모습에서 우리는 여러가지를 관찰할 수 있다.

대적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첫째, 예수님은 적들과 견해가 다르다는 점을 뚜렷이 하셨다. 그래서 그들의 틀린 점과 행동을 지적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된 믿음과 그릇된 행실을 깊이 가슴 아파 하셨다.

 

둘째, 예수님은 종종 대적하는 자들의 고소에 대한 대답으로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셋째, 예수님은 대적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생각들을 계속 고집함에도 주님의 시각을 받아들이게끔 하셨다.

 

넷째, 예수님은 대적하는 자들이 자기의 습성 속에 숨어버리는 것을 감지하실 때면 서슴지 않고 그들을 비난 하셨다.

 

다섯째,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하는 일이었지만 교리와 행실을 교정하시는 일을 분명히 하셨다. 주님은 절대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셨고,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하나님의 진리를 가두지 않으셨다.

 

여섯째, 예수님은 종종 대적하는 자들의 질문이나 도전들을 사용하셔서 오히려 진리를 가르치는 기회로 삼으셨다.

그래서 긴장의 순간들은 가르치는 기회들이 되었다.

(Those tense incidents became “teachable moments”.)

 

이런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날 교사들이 자기에게 동의하지 않거나, 아니면 틀린 견해를 극구 주장하는 학생들과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제시한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본받아서 다음의 내용들을 항상 기억하면서 가르치는 일을 충성스럽게 해야 한다.

 

첫째, 성경과 상충되는 점들을 분명히 지적하라. (First, point out views that conflict with Scripture.)

그러나 사랑의 태도로 그들의 행실이 성경의 기준들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볼 수 있게 이끈다.

 

둘째, 대적하는 사람들이 말로 공격할 때 그들의 생각을 자극하는 질문들을 사용한다.

 

셋째, 우리와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더 흥분시키기 보다는 사랑과 신중한 모습을 가지고 진리로써 그들을 사로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넷째, 학생들의 믿음과 행실 가운데 잘못된 점들이 지닌 위험성을 일깨워 주려고한 모든 노력들이 실패했을 때에만 비난한다.

 

다섯째, 개인의 편안함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지 않는다.

 

여섯째, 만약 학생이 진리를 무시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도전하면, 그런 순간을 논란거리(extended debate)로 사용하지 말고 오히려 더 가르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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