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A 동남부한인교협, 목회자 및 사모 세미나 "종이여 일어나라!"
작성자 정보
- 복음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RCA 동남부한인교회협의회(회장 김종윤 목사)는 김종훈 목사(뉴욕예일장로교회)를 강사로 초청하여 '목회자 및 사모 세미나'를 개최했다. 2월 10일(월) 오전 10시에 뉴저지영광장로교회(담임 정광희 목사) 교육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강사 김종훈 목사는 사도행전 11장 19-26절을 본문으로 '종이여 일어나라!' 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다.
세미나는 회장 김종윤 목사의 시작 기도, 강사 김종훈 목사의 강의와 질의 응답, 총무 원도연 목사(시온제일교회)와 회장 김종윤 목사의 광고, 최혁 목사(포도나무교회)의 오찬 기도 순으로 진행되었다.
강사 김종훈 목사는 9일(주일) 오후 5시에 뉴저지영광장로교회 본당에서 열린 'RCA 동남부한인교협 신년연합부흥성회'에서도 '성도여 일어나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었다. 김종훈 목사는 설교와 강의에 대한 사례비 전액을 "수고하시는 사모님들께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면 좋겠다"며 RCA 동남부한인교협에 돌려 주었다. 뿐만 아니라, 숙박비도 받지 않았다.
다음은 강사 김종훈 목사의 강의 내용이다.
제목 : 종이여 일어나라!
본문 : 사도행전 11장 19-26절
강의 : 김종훈 목사 (뉴욕예일장로교회)
목사는 요리사라고 생각을 한다. 똑같은 본문을 가지고 어떻게 요리를 해서 성도들에게 먹이느냐 하는 것이 마치 주방장이 혹은 가정 주부들이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식구들에게 먹이는가 하는 것과 아마 동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본문은 비교적 유명한 본문, 또 목회자들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본문인데, 이것을 제가 어떻게 요리를 해서 어떻게 나눠주는지, 이런 차원에서 제가 어떻게 이 본문을 요리를 해서 성도들에게 나눠주면서 지금까지 목회를 해왔는지 이런 차원에서 말씀을 정리를 했다. 우리의 희망은 회복과 부흥이다.
11장 21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사실 이것은 우리의 소망이다. 목회를 하는 모든 목회자들의 소망이죠. 주께 돌아오는 것이 회복이고, 부흥이고, 주께 더하여지는 것, 교회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고, 교인 수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께 돌아오는 것, 주께 더하여지는 것,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게 회복이다. 이게 부흥이라는 것을 기억을 하고 섬기고 있다. 그리고 부흥의 주체는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다" 주의 손이 함께 하셔야 한다는 것을 저는 배웠다. 인간의 노력으로, 계획으로 부흥과 회복은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에게 주의 손이 함께 하실까? 제가 세 가지를 얘기했다.
텍스트(Text), 콘텍스트(Context), 서브텍스트(Subtext) 입니다.
텍스트는 "주예수를 전파한 뒤 주의 손이 함께 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왔다" 이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설교해야 할 텍스트는 주예수다. 우리가 가르쳐야 할 분은 예수다.
그 다음에 컨텍스트는,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얘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가 그 당시에 텍스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도 보내시고 말씀도 하시고 하셨기 때문에, 오늘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이 기록될 당시만 기억을 한다면, 오늘의 성도들에게는 거리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서브 텍스트라고 하는 것은, 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 그 사람의 영성 그 사람의 성령의 충만함과 영적 성숙 자체를 신뢰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통 보수주의라고 하는 교단에서는 텍스트만 강조한 경우가 많다. 진보주의노선에서는 서브텍스트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 서브 텍스트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을 하지 않는다.
결국, 목회는 균형이다. 텍스트만 얘기를 하면 거리감이 있어지고, 컨텍스트만 얘기를 하다가 보면 텍스트에 힘을 잃어버리게 되어지고, 서브 텍스트가 온전한 복음의 채널이 되지 못하면 듣는 사람이 귀를 막아버릴 수가 있기 때문에, 텍스트 컨텍스트 서브텍스트 이것은 반드시 트라이앵글처럼, 삼위일체처럼 "주께서 구원받는 자의 수를 더한다" 는 희망을 본문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주 예수를 전파하니" 예수를 전파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모든 성경에서 예수를 증거해야"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39절에 "너희가 영생을 얻고자 하여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말씀은 곧 내게 대하여 증가한 것이라" 그래서 이 모든 말씀은 구약 신약 모두를 들었다.
누가복음 24장 32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예수님이 만나셔서, 실망 가운데서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두 사람에게 말씀을 풀어서 예수님에 대한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얘기를 전했을 때 저들이 뭐라고 얘기를 했는가 하면,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성경을 풀 때 마음이 뜨거워진다는 것이 성경은 곧 예수께 대해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함께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성경을 풀어줬더니 속에서 마음이 뜨거워지더라. 그리고 사도행전 26장 22절에서 23절은 아그립바왕 앞에서 사도 바울이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했는지, 내가 왜 여기 서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증거한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도바울 역시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이 이루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영생의 문이 열리고, 그것만 증거했다.
노아 방주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묵상을 해보면, 이 묵상을 통하여서 걸러지는 솟아나는 감동이 나를 감화시키면, 반드시 성도들은 감동하게 돼 있어요. 결국은 죄악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방주를 주시는데, 그 방주 안에 있는 사람은 안전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최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몸으로 막으시고,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방주 안에 있었던 사람처럼 안전하다. 생명을 얻게 해주셨다. 이것이 깨달아지면, 방주를 설명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가하게 될 것이고. 이것을 증거할 때에 우리 성도들에게서 '아멘!' 소리가 막 나오더라고요. 이게 마음이 뜨거워진다는 거예요. 그냥 방주를 옛날 이야기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진노를 몸으로 막으시고, 그 방주 안에 있는 자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몸으로 짊어지시고, 영생을 얻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는 것처럼, 이렇게도 되고 그다음에 성경에서 나오고 있는 어떤 곳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흔적들을 우리가 얼마든지 읽을 수가 있다.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쳤던 산이지요. 그런데 그 산이 어딘가 하면, 역대상 21장에 보면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에요. 2차 인구조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죠. 인구조사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과시 이런 것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이죠. 갓 선지자를 통해서 세 가지 옵션을 주셨다. 3년 기근, 석 달 동안 대적에게 쫓기기, 다윗이 선택한 것은 3일 전염병이었다. 그때에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사서 번제를 드린다. 역대하 3장 1절에 보면 솔로몰이 성전을 짓는 장소가 바로 타작마당이라는 것을, 모리아산 곧 오르난의 타작마당이라고 하는 것을 언급을 하게 되세요.
제가 한번 여성들의 헌신 예배 때 설교를 했어요.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는 것처럼 십자가에서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셨구나! 그런데 이삭을 잡으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숫양을 준비하시고 아들을 죽이지 않으셨지만, 자기 아들을 심장 안에서 죽이셨다. 왜냐하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셨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을 했었다. 주 예수를 전파한 이 성경 구석구석 어디서를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가할 수 있는 것을 말씀을 드렸다.
"아빠, why?"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고 모태신앙인 사람들은 십자가에 대해서 엄청나게 많은 얘기를 들어왔다. 그래서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감동이 덜 될 수도 있죠. 제겐 위로 딸 둘, 밑으로 아들이 하나 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네 살 때쯤 되었을 때였다. 어느 토요일 날 손님이 찾아오셨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고, 배웅을 하느라고 같이 나오는데, 이 아이도 나왔어요. 그리고 손님이 가신 다음에 올라가는데 이 아이가 자기가 먼저 올라가고 싶어서 벽돌 계단을 밟고 그다음에 문이 있는데, 슬리퍼를 그것이 벽돌 모서리에 걸려서 아이가 넘어지면서 위에 있는 붉은 벽돌 그 모서리에 입을 부딪혔어요. 피가 쏟아지고요. 정신이 없어요.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하얀 수건이 눈에 보이길래 입을 일단은 막았어요. 하얀 수건에 붉은 피가 번져 나가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아내하고 이머전시로 갔어요. 토요일 오후기 때문에 레지던트가 있었는데, 그 레지던트가 "이거는 지금 꿰매야 합니다." 꿰매기 위해서는 마취 주사를 놔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마취 주사를 만지고 있으니까 아이는 주사를 보면서 더 우는 거예요. 그래서 "안 되겠습니다. 좀 아이를 묶어두겠습니다." 해서 이제 들것 같은 데, 거기에 눕히고 아이를 묶었어요. 의사가 도와달라고 하니까 도와주지만,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묶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도 고개를 막 흔들면서, 얼굴은 빨개가지고 눈물을 흘리죠, 입에 피가 나죠,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더 도와주십시오. 이 아이의 머리를 잡아야 마취 주사를 놓을 수가 있습니다." 아이는 들것에 누워 있어요. 몸은 묶여 있었어요. 아이 머리 뒤로 가서 머리를 잡았어요. 그러니까 막 울다가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치는 거예요. 그러면서 눈을 딱 떠보면서, 저는 아이 머리를 잡느라고 이렇게 보고 있고, 아이는 누워 가지고 막 움직이다가, 나중에는 눈을 딱 뜨더니 저와 눈이 마주치니까 아이가 뭐라고 얘기하는 거야. "아빠, why?" 그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어요. 자기는 지금까지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아빠는 자기 편이라고 알았어요. 그런데 이 시간에는 아빠가 의사편! 울던 아이가 눈물을 딱 그치면서 "Why?" 하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그런데 그때 저에게는 오버랩 되는 영상이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영상이 오버랩 되었는데 저에게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요. 그래서 주사를 놓고 꿰맸습니다. 그리고는 제 마음속에는 '아들아! 그래야 네가 깨끗하게 나갈 수가 있어! 하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그랬을 때에, 이렇게 해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침묵하셨다. 아이가 자랐다. 틴에이져가 되었다. 어렸을 때는 아빠가 최고인 줄 알고, 이 세상에서 아빠만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틴에이져가 되니까. 달라지는 모습이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가정 예배를 드리는데 어렸을 때는 "가정 예배 드리자!" 그러면은 잘 모였는데, 틴에이져가 되면서 "가정 예배를 드리자!" 하면 꼭 토를 답니다. "내일 시험이 있다"든지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요. 우리 교회에서 늘 가정 예배 교재로 <오늘의 양식>을 성도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거기에 십자가에 대한 얘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이 십자가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제가 아들에게 물었어요. "4살 때 있었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니?" 하고 물었더니, 눈물이 떨어지더라고요. 거기에서 복음을 다시 한 번 목사 아들이지만 다시 한 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면서 감사했어요. 아직도 이것을 기억하고 이 복음의 메시지를 기억하고요. 그래서 예수를 증거한다는 것이 우리 속에서 마음을 뜨겁게 해요. 그리고 사춘기가 되어 가지고 아빠하고 멀어지고 대화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런 때도 마음을 연 것이다. 이렇게 해서 느낄 수 있었던 은혜였다.
그래서 텍스트로 주 예수를 전파할 때, 예수님이 실망에 빠져서 엠마오로 가던 사람 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지서 모세의 글을 통하여 전해주었다. 오늘도 어쩌면 실망의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시대에, 우리가 전할 것은 주 예수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두번 째는 컨텍스트로 "스데반의 일로 흩어진 사람들이 안디옥으로 모였다" 고 되어 있다.
당시에는 처음 예수 믿었던 사람들은 다 유대인들이었는데, 크리스천이 되면, 예수를 믿게 되면 excommunication이 되죠. 축출이 되어버리죠. 그래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인 기업들, 노동조합에서 쫓겨나게 되고, 거래처에서 끊어지게 된다. 신체적인 것은 사자굴이라든지, 고문이라든지, 이런 것이 1세기의 환란이었다면, 지금은 이런 것보다 문화적인 것이다. 어떤 문화적인 것인가? 자신의 신격화, 오늘의 이익 문화, 어제 저녁에도 나누었던 너 자신이 하나님이다.
너는 너 자신이 되어라! 네가 이런 성향인가? 그러면 그 성향이 되어라! 뭐 이렇게 하는 것이 오늘의 시대죠. 그래서 성경의 절대 진리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성경이 얘기하는 것은 오늘의 문화와는 다르다, 옛날 얘기다, 그래서 성경의 절대 진리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조롱까지 한다. 이런 문화적인 미국의 무신론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서 무신론자가 된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는 것을 읽게 되었다.
과학은 기술 산업의 발달을 가져왔으나 인간 내부의 불안과 인간 사이의 증오를 없애지 못한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두 번째 팬데믹 이후에 보면 청소년 4명 중 1인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한국이 이천 개, 미주한인교회가 천 개가 문을 닫았다. 뉴욕에는 제가 졸업한 NYTS(뉴욕신학교)가 문을 닫았다. NAYAK이 문을 닫았다. 펜실배니아에 있는 Biblical이 문을 닫았다. 큰 신학교가 없다. 지금 그래도 동부 지역에서는 유서와 전통이 있다고 하던 Gordon-Coonwell도 보스턴 다운타운으로 그걸 팔고 와야 되겠다, 뭐 이렇게 했는데 졸업생들이 "안 됩니다!" 해서 돈을 모아서 팔지 않고 그대로 있도록 했구요. Pasadena, CA에 있는 Fuller는 오래 전에 그걸 팔고 또 옮기게 되어지고요. 지금 신학교들이 급격히 축소가 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저희 신학교에서 프로젝트가 뭔가 하면은 이 미국에 ATS라고 있다. The 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라고요. 미국과 캐나다의 ATS에 소속된 신학교가 270, 그런데 지금 ATS에 돈이 있어요. 돈이 있는데, 지금 M. Div.가 모든 신학교에서 M. Div.가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다. 어떻게든지 이 M. Div.를 살리고 M. Div.가 목회 과정이니까. 다음 세대의 목회자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Lilly Endowment라고 해서 Lilly Foundation에서 이번에 천만 불($ 10,000,000)을 내놓았다. 그래서 이 천만 불을 가지고 한 25개 학교인가를 지원하고 있어요. 지금 이렇게 몸부림을 치고 있어요. 우리 교단 KPCA에는 3개 신학교가 있다. LA에 있는 미주장신은 지금 종합대학교(California Prestige University)로 바꿨다. 상당히 크다. 전체 학생 수가 300명 가량 된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확실히 들을 때이다. 죄의 수치심에 대한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이다. 양극화된 세상의 해답은 십자가와 십자가의 화평이다. 죽음과 내세에 대한 공포는 부활의 소망이다. 이기주의 사회의 해답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의 실천이다.
서브텍스크 :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내면에 있는 인격과 영적 성숙(성령과 믿음 충만)
바나바는 성령이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복음을 증가할 때 먼저 착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 이 착한 사람은 성격 좋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다. 그래서 특별히 우리는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는데 성도님들이 나를 볼 때 '아! 우리 목사님은 참 착하시다!' 하고 그렇게 인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 우리 목사님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시다!' 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잘 알고 시대적 상황을 잘 알아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인격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성명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갈라디아 5장 17절 우리 안에 두 가지 법이 있다. 육체의 소욕이 있고 성령이 있고 서로 거스른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육체의 소욕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성령의 충만 밖에 없다.
믿음 충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시선이죠. 시몬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모습, 실수 투성이고 미성숙한 모습, 베드로는 예수님이 붙여주셨던 반석이라고 하는 이름이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또 재미있는 것은 시몬의 모습도 있고 베드로의 모습도 있는 거예요. 시몬의 모습은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는 거 뭐 이런 거는 시몬의 모습이 아니겠어요? 베드로의 모습은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원하나이다. 정말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요. 목숨을 걸고 그럴 마음도 있어요.
결국 목회자가 된 내 안에도 아직도 시몬이 있고, 아직도 베드로가 있다는 것, 그런데 여기에 또 누가 드러날까? 마귀가, 사탄이 드러나는데, 이 사탄은 너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사탄은 이렇게 밀 까부르듯 하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믿음은 주님을 향한 시선, 주님의 은혜에 대한 시선이다.
한 교회에서 개척을 해서 32년을 이렇게 지나오면서 보니까 고비가 참 많았다. 예일교회를 실질적으로 개척해서 이끌어온 저에게는 정말 숨막히는 것과 같은 고통이 있었어요. 그래서 대나무가 자라다가 마디가 있고 이 마디를 넘어야, 고비를 넘어야 그 다음에 또 성장하고, 또 고비가 있고 그걸 넘어야 그 다음이 오고, 32년이란 세월을 볼 때, 밖에서 볼 때는 건강한 교회라는 평판이 항상 있어 왔다는 것을 내가 부인할 수가 없어요.
근데 제가 가는 짜장면 집에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을 것이다.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을 것이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 잃을 것이다." 이런 글이 붙어 있어요. 이해가 되더라고요. 돈보다는 명예가 중요하니까, 명예보다는 건강이 중요하니까, 건강 잃으면 다 잃어버리잖아요?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 '우리 힘으로 안 된다!' 함께하시면, 오늘의 말씀처럼, 어려울 때에 힘을 얻어서 '종이여 일어나라!' 이 말씀으로 목사님들이 힘을 얻으셔서 목사님들이 일어나시고, 사모님들이 일어나시고, 교회가 일어나고,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관련 동영상] https://www.bogeumnews.com/gnu54/bbs/board.php?bo_table=movie&wr_id=210
[관련 사진 모음] https://photos.app.goo.gl/fF3ikWTBHtpLyUp27
김동욱 기자 ⓒ 복음뉴스(BogEu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