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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20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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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준희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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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20~30년 전에는 주로 일간지를 통해 고국 소식이나 이민 사회의 소식을 접하곤 했었다. 특히 연말이면 신문마다 '신년 운세'라며 열두 띠별 운세를 자세히 게재했는데, 나 역시 호기심에 이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곤 했었다.


목사가 무슨 운세를 보느냐고 반문하실 분도 있겠지만, 내가 매년 신문의 운세 칸을 살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었다. 어느 해인가 내 띠가 '삼재(三災)'에 들었다는 내용을 보게 된 것이다. 사실 미신 같은 삼재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당시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그 말에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삼재란 사람이 9년 주기로 맞이하는 가장 위험한 시기를 뜻한다고 한다. 9년이 지난 시점부터 3년 동안 재난을 겪게 된다는 논리이다. 이 내용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던 이유는, 당시 목회 현장과 가정사에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연속적으로 터졌기 때문이었다. "정말 삼재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었다.


여기에 주변 권사님들도 한마디씩 하는 것 아닌가, "목사님, 올해 삼재라던데 조심하셔야 해요." 물론 믿지는 않았지만, 계속되는 고난 속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던 것이 솔직한 당시의 심정이었다.


훗날 깨달은 사실이지만, 지난날의 고난은 삼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 확실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이루기 위해, 부족한 나를 '특수 훈련'이라는 연단 과정을 통해 강인한 군사로 만드시려는 그분의 섭리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고통이 너무 커서 혹시 삼재 때문은 아닌지 의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2026년 새해가 열렸다. 새해에는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은 추위를 뚫고 롱아일랜드 몬탁으로 향하거나,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모여들기도 한다. 타임스퀘어를 가득 메운 인파 역시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매년 바라는 대로 소원이 이루어지기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제는 기대보다는 그저 '또 한 해가 가고 오는구나' 하며 덤덤하게, 어쩌면 무감각하게 새해를 맞이하는 시대가 된 듯 느껴진다.

 

새해가 온다고 해서 '대운'이 저절로 찾아올까요? 2026년이 되면 삼재가 끝나고 금전, 승진, 건강의 복이 저절로 굴러 들어올까요? 70평생을 지내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지구가 태양을 돌며 사계절이 순환하듯, 새해 역시 과거에 내가 심어놓은 것들이 돌고 돌아 나에게 오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2026년이라는 시간 속에 무()에서 유()가 창조되어 대운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뒤의 것은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가야 한다"는 원리는 결코 뒤의 일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지 않는가, 해결하지 못한 과거는 잠시 유보되었을 뿐, 반드시 이자까지 붙어 다시 내 앞에 나타난 다는 것을 난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인생의 법칙일 것이다.

 

새해를 진정 새롭게 맞이하려면 지난해의 문제를 대충 덮어두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청산하지 않은 채 새해를 맞는 것은 착각이다. 2025년이 단 하루 남았더라도 매듭지을 것은 매듭지어야 진정한 새해가 시작될 것 아닌가,

 

70여 년을 살며 깨달은 진리는, 그 세월 동안 축복과 은혜의 문은 언제나 변함없이 열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만 그 문을 통해 복이 저절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만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025년에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열매가 없었다면, 2026년에는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내딛길 바란다. 기회가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면, 이제는 생각에만 머물지 말고 과감하게 손과 발을 움직여야 할 것이다.

 

요단강 앞에 섰던 제사장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이 법궤를 메고 강물에 첫발을 내딛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며 요단강도 건너지 못했을 것 아닌가, 새해에는 내 어깨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과감하게 첫발을 내딛는 용기가 절실히 필요한 때가 지금이다. 그래야만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2026년의 문을 열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행동하는 자만이 2026년을 진정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보여진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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