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학 이야기

나의 유학 이야기(26)

조경현 0 2019.06.24 22:21

사진(미시간 호수)

 

 

섬머 스쿨 

유학생들이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언어(language)이다. 왜냐하면 그 나라의 언어로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일본에서 공부하려면 일본어를 반드시 익혀야 하듯이, 이곳은 미국이기에 영어는 어느 정도 능숙하게 하여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한국에서 수 십 년간 영어 공부를 했지만 글자 그대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문제였다. 언어는 공부를 해서 익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습관(cultural habit)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곳에서 금시 체득하였다. 

잘 알다시피 미국은 이민의 나라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이민을 오고, 공부를 위해 온다. 그런데 유독 한국인들은 언어적 난관을 겪는다. 그러나 영어권에서 오는 인도, 필리핀, 말레시아, 호주, 아일랜드,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온 이들은 억양만 다른 사투리 영어라도 능숙하게 말하고, 듣고, 공부를 하는데 불편함이 없단다. 처음에는 그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이곳에서 한 학기를 마치고 한국에 잠시 가기 전에 내가 참여해야 할 과정은 섬머 스쿨(Summer School)이었다. 즉 ESL과정이다. 이 과정은 MTS에 유학생으로 온 인터네셔날 학생들은 반드시 참여 해야 한다. 여기서는 언어 습득이 목적이 아니라 유학생들이 학교와 시카고 지역에 잘 적응하도록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내 기억으로는 그해 7월 초에 시작했던 것 같다. 

이 과정에 참석한 이들은 인도,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까지 포함하여 약 15명 정도. 약 한 달 이상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9시부터 오후까지 모였다. 모임의 내용은 주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 대화 하기, 글쓰기, 점심식사, 그리고 오후에는 특정한 곳 방문, 혹은 영화를 보거나 했다. 그래서 일 주 일에 한 두 번은 시카고 다운타운 등 관심이 있는 지역을 방문했다. 처음 시카고에 온 학생들에겐 많은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 그러나 난 이미 6개월 전에 이곳에 와서 워밍업을 했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처음 한 주는 흥미롭고 재미있고 좋았다. 하지만, 두 번째 주부터 지루하고 따분했다. 왜냐하면 서로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이 있기에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게 조금씩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모임에서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조금씩 자연스럽게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때 내가 깨달은 것은 언어란 공부가 아니라 습관이며 관계이다는 것. 

섬머 스쿨에서 나에게 인상 깊었던 몇 가지고 사건과 사람들이 있다. 첫째는 팀별로 시카고 다운타운에 가서 인터뷰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우리 팀은 모두 5명. 우리가 간 곳은 그 유명한 밀레니움 팍(millennium park). 그곳은 관광지이므로 많은 이들이 분볐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임에서 다루었던 과제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몇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 질문은 생태 문제. 물론 다 그렇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친절하게 나의 인터뷰에 응해 주었고, 만족할만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때 나는 미국인들의 여유와 자연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둘째는 Susan이라는 미국인 여성이다. 수산은 백인 여인인데, 자원봉사자로 우리 모임에 나왔던 장애인. 그리고 우리 팀원이었다. 한 번은 멕시칸 지역을 방문하는 날, 함께 버스와 전철로 이동하였다. 수산은 평일에는 몸이 불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어려워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차(Pace)를 타고 학교에 오가곤 했다. 그러나 이 날은 현장 체험이기에 우리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녔는데, 이때 미국인들이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배려를 하는 나라인지를 느꼈다. 

그녀가 버스나 전철을 탈 때마다 기사들은 정성을 다해 그녀의 안전에 관심을 기울였고, 도와 주었다. 한국의 경우라면 짜증 낼 만도 한데, 이곳에서는 여유 있는 도움을 주는 것. 역시 선진국의 면모를 본 듯 하여 기분이 참 좋았다. 어디 이 뿐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아닌 우리가 같은 사람인 것을 보여 주었다. 역시 미국은 장애인들의 천국 임을 확인하는 날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외국에서 온 친구들이다. 이들은 비록 국적은 모두 다르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기 위해 온 친구들. 이들 모두 최선을 다해 미국을 배우기 위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그 가운데, 탄자니아에서 온 40대 초반의 블랙 남자가 있었다. 자기 가족은 탄자니아에  있고, 자신만 홀로 이곳에 유학을 온 학생인데, 한국인처럼 가부장적 제도 문화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평소에 여자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섬머 스쿨 후에도 늘 홀로 외롭게 미시간 호수를 거니는 그를 나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는데, 결국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한 학기도 마치지 못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학생을 보면서 미국에서도 관계(relation)가 좋지 않으면 생존하기 참 힘들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유학생들은 이 과정이 마친 후, 서로 더욱 가까이 지내게 되었고,  학교에서나 길거리에서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전우들이 되어 있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우리는 같은 시기에 같은 학교에서 만나 공부한다고 생각하니 아마도 동지의식을 느꼈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들은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낯선 나라이지만, 선의의 경쟁을 하며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 년 후엔 모두 하나님이 열어 주신 환경, 그 곳에서 최선의 삶, 최고의 인생으로 살아갈 것을 의심치 않는다. 


keywords/ 언어, 섬머스쿨, 장애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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