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증경 회장님들의 용단
먼저 증경회장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목회를 길게는 50여년, 짧게는 30여년을 한결같이 주의 말씀을 전하는데 온 인생을 다 쏟아 부으신 증경회장님들에게 어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당연히 존경받고 대접도 받아야 정상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분들이다.
더욱이 어려웠던 이민 초기 교회를 연합체로 구성시켜 이민교회를 정착시키고 교회가 힘을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신 분들이 바로 교협 증경회장님들이시다. 이런 귀하신 분들이 아직도 교협에서 후배들과 함께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에 뿌듯함과 자부심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런 자부심 뒤에는 증경회장님들로 인한 부작용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들어 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증경회장님들로 인해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몇 가지로 지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증경회장님들의 영향력
올해도 예외 없이 증경회장님들이 특별위원회에 22명이 임명되었다. 이는 현재 뉴욕에 생존하고 계신 교협회장을 지내신 분들의 약 70%의 목사님들이 교협 중요 직책을 맡고 계신다는 뜻이다. 또한 올해 총 9명의 선관위 위원회 모임을 보면 선관위 위원장을 비롯해 증경회장 5명, 평신도 장로 2명, 임원 1명, 그리고 실행위원 1명이다. 증경회장님들이 과반수가 넘는다. 또한 교협 총회 회의를 보자. 총회에서 발언을 하는 분들 중에 절반 이상이 증경회장님들의 발언이 주를 이룬다.
그뿐만이 아니다. 할렐루야 대회 강사 선정에 보이지 않게 관여하는 분들이 증경회장님들이다. 회장의 입장에서 증경회장님들의 추천을 무시할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숨어들어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총회 시기가 되면 회장, 부회장에 출마할 목사들이 증경회장님들에 의해 결정이 되고 또 출마를 권유하거나 어느 한 후보를 지지하는 힘(?)이 작용한다. 그런 풍토가 지금 교협 전체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교협 회원들은 다 안다. 증경회장님들의 영향력을 교협 행사나 사업 곳곳에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증경회장님들 모두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증경회장님들 중에도 제가 정말 존경하는 분들도 계신다. 그러나 지금 현실이 많은 부분 증경회장님들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가 교협 회원들 사이에 팽배해져 있다는 데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 현실로 여겨진다.
둘째, 무시할 수 없는 증경회장님들
증경회장님들의 연륜을 보면 약 40년 전 회장을 지내신 분도 있다. 종합해 보면 한세대가 넘는 시대에 교협을 이끄셨던 분들이다. 이런 연륜을 가지고 계신 분들 앞에서 이제 40대, 50대 임원들이 마음대로 발언할 수 있는 힘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 회장이라면 400여개의 교회 대표이다. 대표가 임기 1년 동안 단 한 번도 회원들 앞에서 설교를 한 목사가 누구일까? 내 기억에 없었다고 여겨진다. 왜 회장이 자신있게 설교를 못하고 지낼까? 그 이유는 증경회장님들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교협회장은 행사 때의 모든 설교는 당연히 증경회장님에게 설교를 부탁 해야만 한다. 아니 당연히 부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통상예가 되어 버렸다는데 문제가 있지 않나 본다. 더더욱 문제는 설교를 어떤 증경회장님이 했느냐에 따라 보이지 않는 암투가 있단다. A 증경회장에게 설교를 부탁하면 B,C 증경회장들이 보이지 않는 험담이 일게 되고 증경회장님들끼리 선을 긋고 분파가 만들어 갈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설교를 누가했느냐에 분파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미 증경회장들 사이에는 분파가 있다는 것을 밖에서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모습이 젊은 목사회원들에게 그대로 비춰진다. 그래서 하는 말, “아버지 같은 분들이 앞장서 계신데 저희가 낄 자리가 없네요.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증경회장님들이 이렇게 교협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을 뿐더러 또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꼭 증경회장님들에게만 있을까? 결국 그렇지 않다고 본다. 증경회장님들이 교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다보면 어떤 회기 때에는 정말 수준 이하의 회장으로부터 임원 그리고 운영하는 모든 분야를 보면 간섭을 안 할 수 없는 그런 교협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게 그 원인이 있다고 여겨진다. 뒤에서 지켜보기에 정말 견디다 못해 교협 일에 간섭 아닌 간섭을 하다 보니 이제는 간섭의 차원을 넘어 아예 교협을 운영하는 그런 자리까지 가게 되지 않았나 보아진다.
그러면 이대로 교협 운영이 증경회장님들에 의해 운영되어야만 하는가? 많은 회원들이 증경회장님들에게 묻고 있다. 이대로가 좋은 것인지?
셋째, 증경회장, 뒤로 물러 설 용단은 없는가?
교협 헌법 제2장 회원 제4조(자격)제1항 "본회 회원은 ... 교협에 가입된 교회로서 목사대표 1인 평신도 대표 1인으로 구정한다.(단 은퇴 또는 70세 이상된 증경회장은 당연직 총대가 된다)"
이 법조항은 증경회장은 은퇴를 해도 평생 교협 회원이고 총대가 된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법조항이다. 교협을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하셨기에 평생회원으로 대우해 드리겠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증경회장님들이 많이 모이면 이제는 20-30여명이 된다.
보통 총회 때 총대로 참석하는 회원이 평신도 대표 포함 200여명이다, 그러니까 목사회원은 증경회장들을 포함해서 100여명이 된다. 즉 일반 목사회원은 70-80여명밖에 안 된다는 의미다. 왜 이렇게 일반 목사회원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필자는 묻고 싶다, 한번 냉철하게 집어보자. 이번 46회기 임시총회에서는 58명이 총대로 참석했다. 그 중에 평신도대표 20여명 정도라 하고, 증경회장님들 10여명, 교협임원 7-8명을 빼면 목사 회원은 20여명이다. 400여 교회의 교협 임시총회에 총대 목사님들 20명이 참석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왜 교협이 이렇게 신뢰가 떨어지고 참여하는 교회가 갈수록 줄어들까? 그 원인이 증경회장님들 때문일까? 꼭 그렇다 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교계에 들려지는 많은 이야기로는 바로 평생회원 증경회장님들 때문에 참여도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증경회장님들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시대적 요인과 회장들의 수준 낮은 교협 운영이 내포되어 있지만 그런 교협을 다시 회복시킬 큰 힘을 가진 증경회장님들이 오히려 교협 운영에 저해가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뭐라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는 한시대가 지나갔다. 시대가 무섭게 변화되고 있고 최첨단 AI 시대가 왔는데도 교협은 아직도 40여 년 전 그 구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벗어나지 못할까? 나이가 든 증경회장님들 때문일까? 아니다. 증경회장님들 때문이 아니다. 어차피 교협을 갱신해야 한다면 그리고 증경회장님들도 교협에 회원으로 자리매김을 계속한다면 증경회장님들도 마음가짐을 달리하고 교협 갱신에 앞장서야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 생각이 없기 때문에 교협은 구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이제는 40-50대 젊은 목사들에게 모든 것을 내 주는 것이 어떨는지 묻고 싶다. 증경회장님들에게 그런 결단이 실행된다면 지금이라도 평생회원의 명찰을 벗어던지고 뒷자리에서 조용히 신세대의 교협 운영을 지켜봐야 한다. 증경회장님들이 뒷좌석에 앉아 계신다는 것 자체가 교협의 힘이요 영광이기 때문이다.
넷째, 증경회장님들 중에 사표(師表)는 없는가?
오늘날 이 시대를 사표가 없는 시대라고 한다. 이민 사회도 동일하다. 후배 목사들, 젊은 목사들이 본받을 만한 사표가 보이지 않기에 방황하는 시대라고 여겨진다. 물론 인간을 사표로 삼는다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목사로써 좀 애매한 표현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선배 목사님들 중에 참 본받을 만하다는 그런 사표가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교협역사 45년이다. 반세기가 가까이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교협 회장을 지내시고 한 시대에 목회를 40-50년 하신 목사님들 중에 은퇴하신 목사님들을 보면서 “아, 정말 훌륭한 분이시다”라고 여기는 본받을 만한 분이 안 보인다는 것이 참 슬픈 현실이다.
물론 제가 아는 몇 분은 정말 훌륭하신 목사님으로 존경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분들에게 실망을 하게 되는 장소가 바로 교협 총회장소이다. 총회 때가 되면 어느 지지 회장, 부회장 후보를 놓고 언성을 올리는 증경회장 목사님들, 아주 사소한 법규를 가지고 논리성도 없이 옳고 그른 싸움을 하는 증경회장님들, 이런 현실에 존경의 이미지는 총회 석상에서 다 무너진다.
과연 아들 같은 젊은 목사들이 이런 중경회장님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하고 계실까? 차라리 뒷좌석에 앉아 조용히 지켜보는 증경회장님들이 훨씬 존경스럽고 본받을 만하다고 여겨진다. 필자는 묻고 싶다. 증경회장님들로 인해 여러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옳은 방법인지 그 해답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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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장은 일꾼일 뿐이다.
먼저 교협 회장이 되신 분들, 그리고 회장이 되시려고 하시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왜 회장을 하셨고, 왜 회장을 하시려고 합니까? 나는 진정으로 묻고 싶다. 그렇게 회장이 되려고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렇게 불법을 저지르면서 회장을 하셔야 합니까?
또 하나 묻고 싶다. 본인이 회장을 하실 만큼 400여명의 교협 회원 목사님들 보다 뛰어난 지도력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계신가요? 혹시 내가 회장이 되면 뭔가 보여 주겠다는 영웅심, 아니 회장이라는 명예욕이 발동하지는 않으셨나요?
이미 증경회장이 되신 분들에게 묻고 싶다. 회장을 역임하시면서 얼마나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회장이 되셨고 하나님 앞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역임을 하셨나요? 진정으로 교협이 나가야 할 방향이 무엇이고, 어떤 정책을 펼쳐야 교회가 역동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그런 비전은 가지고 회장을 하셨나요? 물론 이런 질문을 하는 필자도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필자가 25년 동안 25명의 회장을 역임한 분들을 지켜보면서 묻고 싶은 것은 과연 하나님 앞에 물질과 명예욕에 자유하였다는 회장님이 몇 분이나 계신가요?
어제까지 부회장이었던 분은 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뒷자리에서 찍었는데 오늘 회장이 되는 순간부터 당당하게 앞자리 중앙에 서서 사진을 찍는 것은 당연한 권리요, 당연한 위치라고 여기는 그 자세부터가 벌써 세상 원리가 적용된다고 보지는 않으신가요? 물론 400여 교회를 대표하기에 앞자리 중앙에 있어야 하고 상석에 앉는 게 당연한 원칙이다. 그래야 질서가 선다. 하지만 주의 종이라면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본다. 회장이 뒷자리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고 회장의 권위가 사라지는 것일까? 말단 자리에 앉는다고 회장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일까?
물론 상석에 앉아야 한다. 당연히 앞자리에 서야 한다. 그래야 위상도 있고 질서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당연한 권리로 자리 잡으면서 서서히 교협은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세상 집단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 40여년 전 교회가 몇 되지 않던 이민초기에는 회장의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았으리라 본다. 그래서 누가 회장이 되던 나이나 순번에 의해 회장이 되었고 또 서로 회장이 되기보다는 서로 먼저 하시라는 양보의 미덕도 있었으리라 본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한인 커뮤니티가 미국 사회에서 무시 못 할 만큼 성장했고, 교회 역시 그 역할이 한인 사회에 중추적 역할을 할 만큼 커졌다. 그러다 보니 회장의 역할 역시 상당한 지도력이 요구되고 또 교회를 대표하는 인격도 겸비해야 하는 그런 위상으로 격상되었다고 여겨진다.
이런 격상된 교협에 과연 누가 회장이 되느냐에 따라 400여 교회와 수만명의 성도들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연 어떤 분이 회장이 되어야 하나 몇 가지로 지적해 보도록 하겠다.
첫째, 목사의 인격을 갖춘 분이 회장이 되어야 한다.
교협 회장이라면 일반 성도들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뭘까?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 그러면서도 400여 교회를 움직이는 덕스러운 지도자의 이미지로 함축시켜 보면 어떨까?
교협회장은 그 첫째가 인격이다. 왜 인격이 최우선일까? 그 이유는 교협은 일반 사회단체와 그 본질이 다르다. 돈이 많아서, 큰교회 목사라서, 뒷배경이 좋아서. 말을 잘해서 회장감이라고 한다면 이는 완전히 일반 사회단체와 뭐가 다르겠는가? 돈이 없어도, 큰 교회목사가 아닐지라도, 뒷배경이 없다 해도, 말을 좀 못한다 해도 회장되신 그분을 보면 훈훈해지고 존경스러워진다면 그 자체가 400여 교회를 대표하는 회장감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회를 좀 못 봐도, 회의 운영을 좀 못해도, 법을 잘 몰라도 말 한마디에 은혜가 풍성한 그런 분이 회장이 되어야 진정한 교협회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교협회장은 무조건 인격을 갖춘 분이 하셔야 한다. 그게 교협의 위상을 높이는 가장 지름길이다.
그러나 현 제도는 자격미달 목사도 회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인격이라고는 아니 목사로써도 자격미달인 분이 회장이 된다면 이는 보나마나 명예욕에 사로잡힌 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런 분이 회장으로 있을 때 어떤 성도(기업대표)에게 들은 이야기다. ‘저런 자가 교협회장이라니 후원금을 내고 싶어도 후원금이 아깝다’고 하는 그런 소리까지 일반성도들에게 들려지고 있는 현실이다. 교회 전체가 한사람의 비인격적인 행동으로 인해 싸잡아 욕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자격미달의 회장 때문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인격적인 회장을 쉽게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일까? 그 문제점은 진정으로 인격을 갖춘 분들은 회장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 그런 인격을 갖춘 목사님을 회원들이 뽑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문제는 회원들이다. 일단, 회장 출마자와 나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우리 교단 사람인가, 나에게 유익을 끼친 분인가가 우선이지 인격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회장을 선출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 만큼 교계에 존경받을 목사님이 없다 보니 자격없는 목사가 회장 후보로 나와 금권 선거를 벌이고, 또 그런 분들에게 한 푼이라도 받거나 밥 한끼라도 대접받은 목사는 의리상(?)이라도 그 후보자를 뽑는다는 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현실이지 않았던가?
또한 후보자를 검증할 그 어떤 방법도 없고 대책도 없다. 다만 선관위는 후보자가 자격요건을 갖춘 서류만 내면 그것으로 후보자격을 허락할 수밖에 없기에 당연히 서류에 조그마한 하자가 발생해도 그것으로 후보자격을 박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모순이 매년 반복되고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그 어떤 대책도 세우지 못하는 교협의 현실이 자격미달의 비인격적 회장을 양성하는 발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논고에서 밝힌 제3부 회장 선출에 대한 제언 제3안에 제시한 운영위원회가 회장 자격을 갖춘 분을 지명하여 총회에 상정한다는 제언에서 제시했듯이 인격있는 분을 각 교단에서 추천받아 회장을 뽑는 제도가 오히려 인격적인 회장을 뽑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밝히는 바이다.
둘째, 정책적 비전을 가진 분이 회장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회장이 되신 분들은 모두 자신이 일 년 동안 추진할 목표를 표어로 만들어 제시한다. 어쩌면 일 년 계획을 추진할 목표가 이 표어에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회기 때는 표어는 표어이고 일 년 동안 추진한 내용을 보면 전혀 표어와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한 예로 ‘회복하게 하소서’라는 표어가 있었다. 뭘 회복하겠다는 것인지 매우 불분명하다. 그런데 일 년 동안 이 표어가 신년하례감사예배 순서지에, 할렐루야대회 순서지에 올라가 있었지만 뭘 회복하였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나 정책은 하나도 없이 그냥 보기 좋은 글에 지나지 않는 간판 역할만 하고 끝난 회기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회기 때는 표어대로 모든 사업이 추진되었던가? 거의가 표어는 표어일 뿐 일 년 동안 일하면서 표어도 모르고 일한 임원들도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형식적인 구호만 있을 뿐, 진정한 교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좋은 글 하나 퍼 와서 자기 회기에 걸어 놓고 일 년을 지낸다는 것이다. 물론 매회기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 표어대로 일 년을 아름답게 마무리한 회장도 많다. 그러나 정책과 비전이 제시되지 않는 회장은 거의가 40여년 교협이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 회기에 했던 모든 일을 답습하기에 급급한 그런 일 년을 보낸 회장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한번 회장의 동향을 보자. 거의 매주 어느 때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여기저기 부름을 받는다. 축사, 권면, 설교 뿐만 아니라 축도라도 하고 와야 한다. 회장이기에 안갈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자기 교회 목회도, 준비할 설교도, 또 기도할 시간도 없다. 정말 1년 동안 체력이 좋아야 한다고 할 정도다. 이렇게 바쁜 교협 회장이 신년하례만찬, 부활절 새벽연합예배, 할렐루야대회와 그에 따른 기도회, 실행위원회 등등 정해진 기본 행사만 해도 일이 벅찰 정도로 감당이 안 되는 그런 현실에 무슨 정책이 필요하고, 비전을 가지고 일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교협이 추진할 짧게는 5년 정책, 길게는 10년 20년을 향한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정책도 계획도 없는 교협에 회장은 나름대로 뛰어난 영도력(?)를 발휘하여 전회기보다 잘했다는 칭찬을 받아야 한다. 이게 교협 회장의 현주소 아니겠는가?
한마디로 이민사회를 향한 명쾌한 목표를 가진 회장이 나와야 한다. 뜬구름 잡는 계획을 5-6가지씩 나열해 놓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없이 1년을 보내는 그런 회장은 이제 없었으면 한다.
비전을 가진 회장! 그 회장이 1년 동안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해도 그 비전이 차기 회장에게 이어질 수 있는 그런 비전을 제시할 그런 분이 회장이 되어야 한다.
셋째, 진정한 봉사정신이 있는 분이 회장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교계나 정치계를 보면 국민을 위한 봉사자, 교회를 위한 봉사자를 자처하고 회장에 출마하는 분이 거의 다 이다. 자신 만이 진정한 봉사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남이 하는 봉사는 잘 못된 봉사이고 자기가 해야 진정한 봉사를 하는 후보자가 된다는 것인가? 그래서 온갖 수모를 다 겪고, 돈은 돈대로 쓰고, 교회 성도들에게는 이미지까지 실추시키면서 회장을 하려 한다. 진정한 봉사자가 되어 보겠다는 일념 때문일께다.
회장, 부회장 후보들이 자주하는 말이 ‘잘 섬기겠습니다’ 이다. 맞다. 이 섬김이 봉사다. 남을 위해 일하고, 남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 봉사다. 그래서 회장이 되면 잘 섬기라고 후원금도 내주고, 회비도 내고, 찬조금도 낸다. 잘 섬기는 회장이 되라고... 그런데 현재 교협 회원들의 현실을 보라. 400여 교회 중에 이번 회기에 회비를 낸 회원이 7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왜 300여교회가 함께 해주지 않을까? 바로 교협이 섬겨주는 단체가 아니라 오히려 회원들이 받들어 주는 그런 단체로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느 회원이 신년하례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권 2매를 샀다. 없는 교회에서는 100불이 금보다 귀한 금액이다. 그 100불을 내고 행사장 맨 뒷자리에 앉게 된다. 감히 회장은 가까이서 얼굴도 못 본다. 회장은 VIP석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자리에서 일어나 귀빈들과 악수를 나누고 강단에 올라가 진정한 봉사가가 되겠다고 인사말을 한다. 그 인사말에 모두 박수를 보낸다. 100불을 내고 참석한 회원도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늦은 저녁 한 끼를 먹고 쓸쓸하게 되돌아온다.
과연 누구를 위한 만찬인가? 이것이 진정한 섬김인가? 어쩌면 봉사자란 탈을 쓰고 명예와 지위를 등에 업고 군림하는 세상 단체의 모습을 보는 것같다. 그래서 일까? 회장이 되려는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회장이 되려 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회원 교회 목사님들은 70%가 교협을 외면한다.
단체 사진을 찍는데 회장이 안 보인다. 앞자리에는 연노하신 노인 목사님들, 그리고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서 있다. 회장은 저 뒷자리에 얼굴만 겨우 나오는 위치에서 사진을 찍었다. 누가 회장이야? 그런 사진이 보고 싶다. 설령 그것이 쑈라 할찌라도...
진정한 회장은 섬기는 자다. 어려운 교회에 몇 주년인지 창립예배에 초청도 하지 않은 교협 회장이 찾아와서 기도해주고 조용히 헌금하고 돌아 간 회장, 다음날 어떤 뉴스에도 교협 회장의 동향이 소개되지 않는 그런 섬기는 회장이 뉴욕한인교회협의회 회장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그런 교협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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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는 말
아무리 좋은 제도, 아무리 좋은 계획과 정책, 완벽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도 회장이 교협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모든 것은 말짱 꽝이다.
이제 교협은 달라져야 한다. 회장이 변화시키겠다는 의지와 그 의지에 동참하는 회원들이 하나가 될 때 교협은 달라질 수 있다. 그동안 여러 회장들이 변화를 외쳤다. 그러나 도무지 개혁이 안 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혁하겠다는 회장 목사님들의 의지가 빈약했었다는 데 그 원인을 찾아보고 싶다. 또 하나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회원들의 무관심이었다. 오랫동안 교협에 식상한 차세대들의 외면, 무자격자로써 자질도 없는 회장이 앞장서 있는 교협에 지각 있는 회원 목사님들이 숨어버렸다. 이유는 같이 더러워질까봐 우려해서 였을까?
이제 숨어 있던 목사님들이 일어나야 한다. 이렇게 뒷짐지고 있다가 신뢰를 잃어버린 교협이 되고 나서 다시 회복시키는 일은, 다음세대에게 너무 큰 짐을 안겨다 주는 격이 될 것이다.
머리를 맞대면 얼마든지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변화시킬 수 있는 바탕은 무궁무지하다. 최고 학부를 졸업한 차세대 목사님들, 목회 40-50년 쌓아 놓은 놀라운 경험의 대가이신 증경회장단, 세상에서의 경륜과 신앙을 쌓아 놓고 계신 이사회 장로님들, 이민사회 구석구석 최고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석박사들이 즐비한 인재들이 기다리고 있다. 변화의 불길이 붙기만 하면 교협은 불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누가 이 변화에 부르심을 받을까? 이 이민교회의 미래를 변화시킬 교회 연합체, 뉴욕한인교회협의회가 변화되어지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감사합니다.
한준희 목사(뉴욕성원장로교회)
교협에 관한 작은 교과서 같은 글들이었습니다..
개혁이란 끊임 없는 역사의 작업 입니다. 반성과 수정 없이 그냥 그냥 지나가는 해가 많습니다.
이번 회기 큰 기대를 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