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새해를 맞으려면 송년부터 잘 하는 것이 좋습니다. 송년에 할 일은 추억이 아니라 청산입니다. 무엇을 잃었으며 어떻게 놓쳤는지, 그 결함을 알아서 청산하면 반드시 새해에는 그런 과오가 반복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잘못을 모른 체 덮기보다 깨닫는 것이 올바른 삶의 태도답습니다.
성경을 맛보기로 보아 온 미숙한 눈은 마감하고 새해에는 맑고 밝은 눈으로 주님의 놀랍고 빛나는 오직 주님만 하실 수 있는 처음 표적 하나만은 꼭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생각을 하셔서 그 놀랍고 고귀한 표적을 첫 선물로 베풀어 주셨으나 사람들은 장난스럽게 취급하여 주님의 영광을 추락시켜 버렸습니다. 그러고도 태연하게 예수 이름을 부르고 아는 척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깨닫게 되는 날을 기다리십니다. 지금은 더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학자가 얼마나 많으며 예수 이름으로 밥 먹고 사는 프로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분들부터 은혜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주님은 처음 표적으로 영광을 나타내셨으나 아직도 물로 포도주 만든 것을 표적으로 오해하는 그 엄청난 불찰을 이제는 청산할 새해가 밝아 오는 것 같습니다. 고집은 송년과 함께 날려 버리시라고 이 늙은이가 편지로 간곡하게 알려 드립니다.
2018년 12월 불초 노종
요지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신 ‘처음 표적’은 익히 알고 있다. 그 표적이 의미하는 것은 처음 즉, 메시야 시대의 개통이라 하고 싶다. 그 길이 분명 뚫리기는 했으나 표적을 제대로 읽는 이가 어디에도 없다는 소리를 듣고 이런 글을 쓴다. 모두들 ‘표적’이라는 낱말 하나만 알고 있을 뿐 표적의 실체는 잘못 집고 있다. 성경에는 표적을 행하여 영광을 나타내셨다고 기록 되었다. 메시야의 정체가 들어난 표적이란 뜻이다. 그렇건만 설명할 사람은 없다. 모두들 물을 포도주로 만든 것이 표적 이라고 말한다. 그 점은 영광이 아니라 망신이다. 성경을 맛보기로 보는 무지한 소치로 보일 뿐이다. 음주로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한국의 오명을 X쟁이 책임도 한몫 하고 있다. 인류의 구세주가 처음 표적으로 6항아리의 맹물을 가지고 맛있는 와인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퍼먹였다고 지금도 떠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포도주는 당시에 누구라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흔하고도 흔한 것이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서 잔치를 한다는 논리는 참 해괴한 발상이며 유치하기 짝이 없는 수치이다. 얼마나 고대하여 맞이한 메시야께서 그렇게 하실 리가 없다.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것을 마리아가 알고 있었다면 그 때 잔치집 주인은 무엇을 했을까? 잠을 잤을 리는 없다. 아마도 수습에 나섰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정상적인 사람은 있을 만한 것을 생각 한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초대를 받고 그 집에 당도 했을 그때 까지 잔치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 마리아는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사실이 탄로가 날까봐 걱정을 한 것 같다. 예수께서는 모친의 말을 듣고 나서 잔치 집에서 잠시 자리를 뜨셨다. 그리고 돌 항아리 6개를 지목하셨다. 그 항아리들은 집 안으로 들어오기 위하여 손님들의 손을 씻는 결례용기다. 그 항아리에 손을 적시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하다. 예수께서는 집 입구에서 하인들을 시켜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다. 항아리는 물 두세 통 들어 가는 크기였다. 그러므로 18통의 물을 채웠던 것이다. 그 시간을 재어 보면 사태를 이해하는데 힌트가 생긴다. 샘에서 물을 길어 통에 채우고 그것을 항아리로 운반하는 시간은 빨라도 5분은 소요된다. 18통을 채우는데 90분, 하인이 3인이면 30분이 된다. 포도주 모자라는 양은 적은 양이면 된다. 집에 있는 물로 포도주를 만든다면 5분이면 충분하다.
예수님을 무시하지 않고는 6항아리의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야 할 까닭을 상상 할 수 없다. 예수를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지 통곡하고 싶다. 예수님의 처음 표적을 모르면 예수를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도 모르면서 예수를 안다고 하면 기만이 아니면 엉터리 일 것이다. 기만하면 사기요 엉터리면 가짜라 할 수 있다. 내가 악담을 하는 줄 알고 화를 낼 것이 훤하다. 예수의 처음 표적을 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싶었다. 그 소리를 들려 준 이가 신뢰할 만한 중견 목사였다. 나도 목사로서 그런 말을 듣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 내가 목사가 되어 처음 한 설교가 가나 혼인 잔치였다.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잔치가 처음 보다 나중이 더 잘 된 것은 확실하다. 그날 설교 제목을 ‘새로운 시도’라고 했다. 메시야 시대가 열리는 개막식이 아니던가 싶다. 나의 설교 63년 중에 그 설교를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그것은 처음 표적을 추적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고민 중에 ‘예수 첫나들이’ 라는 가나 혼인잔치를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그 후로도 그 추적은 계속 되었고 그 길은 쉽지가 않았다. 최근에 예수의 부활을 소재로 ‘생명 백서’라는 글을 쓰던 중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처음 표적이 있었으면 다음 표적도 있다는 전제가 틀림없다. 다음 표적을 염두에 두고 처음 표적으로 메시야 시대를 공개 한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나를 압도 했다. 사흘 되던 날에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셨다. 그리고 다음 표적도 사흘 되던 날에 부활 하셔서 갈릴리 바다에서 다음 표적을 행하셨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가 나타났기 때문에 처음 표적과 다음 표적은 확실한 의도적인 이치가 있는 것이었다. 처음 표적부터 확실하게 알았더라면 저절로 풀려질 성격의 표적이다.
한번 다시 잔치 집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1) 메시야는 포도주를 만들 수 없는 거룩한 신분이다.
2) 잔치에 초대 받은 하객이 주인의 영역을 월권 하면 반칙이다.
3) 마리아가 포도주가 없다고 전했을 때 예수님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잘랐다.
4) 잔치는 주인의 소관임으로 하객은 음식에 관여할 수 없는 것은 상식이다.
5) 잔치가 종반에 다다랐으므로 6항아리의 대량의 물은 사리에 어긋난다.
6) 시간이 다급한데 항아리에 물 채우기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7) 마리아가 아들에게 포도주 만들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8) 포도주가 모자라면 1통이면 될 걸 18통을 만든다면 정상이 아니다.
9) 연회장은 잔치에 별 이상 없이 잘 되어 간다고 선포했다.
10) 주인은 일체 말이 없으나 경영을 침착하게 한 것 같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은 한 건 뿐이다. 6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운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얼토당토 않는 포도주를 예수께 뒤집어 씌우는 모양새가 가소롭다.
그런 중에 예수의 처음 표적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주인이 엄연한데 초대 받은 자 입장에서 포도주를 만들었으면 주객이 전도되는 파행의 잔치가 된다. 초대를 받은 하객이 고마운 주인에게 결례를 행할 이유가 없다. 예수께서는 최대의 예우로 혼주에게 아무 불명예스러운 일도 없이 생각을 초월한 더 좋은 잔치를 성사 시켜 준 은인이 된 것이다. 그런 줄 안다면 처음 표적은 알고 있어야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만일 ‘예수의 처음 표적이 이런 것이다’라고 발설하면 수긍 할지 어떨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별별 공격을 퍼부을 것 같다. 그뿐 아니라 내 말을 믿으려고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좀 바보스러운 데는 있지만 그런 대접 까지 받고 싶어 할 바보는 아니다. 그러기에 꼭 알고 싶은 사람들이거나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된다면 조용한 데서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
제발 새해에는 눈 좀 씻고 바른 눈을 뜨고 싶은 사람이 없을지 찾고 싶고 만나고 싶다. 내 주변에 나를 기리는 목사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을 불러서 말해 줄 용기는 나지 않는다. 만일 믿지 않는다면 쌓아 온 우정마저 잃어버리기는 싫어서 주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