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논단

루터의 대, 소교리 문답

편집인 0 2017.02.06 06:39

당시 교회들의 영적 상황 

종교개혁 이전부터 교회의 영적 상태는 개탄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 교황의 독재가 폐지되고 각자 자기의 생각대로 행하는 자유스러운 분위기로 인해 교회는 더욱 침체하게 되었다. 1525년 농민전쟁이후 교회는 죄를 자백하지도 않고 기도도 하지 않았다. 헌금도 하지 않았고 성찬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태도와 권징이 사라져버렸다. 교회는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성직자들의 교육 수준과 자질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그들은 일정한 수입도 없고 영적으로 무지하고 무관심했으며, 일부 성직자들은 술집을 운영하면서 수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목회자들은 기독교 교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루터의 복음주의 개혁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루터는 무지한 성직자들로 인해 교인들이 겪을 고통을 알게 되었다. 
 
일반 평신도들의 신앙 역시 형편없었다. 그들은 과거에는 교황을 업신여겼으나 지금은 성직자들을 업신여기며 존경하지 않았다. 이처럼 목회자들이나 평신도들의 영적인 비참함과 무지로 인해 루터의 마음은 매우 아팠다. 이러한 사실에 충격을 받은 루터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을 목회자들에게 가르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루터는 교회의 주된 임무는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목회자들의 교육과 그들의 무지와 불신앙으로 인한 폐습들을 치유하고 또한 평신도들이 체계적으로 공부하도록 하기 위해 집필에 착수하였다. 
 
루터가 집필한 대교리문답과 소교리문답
 

▲ 루터의 소교리문답 ©뉴스파워 김현배


결국 루터는 1529년 4월과 5월에 독일어로 된 두 권의 교리 문답을 완성하여 출판했다. 교육의 주춧돌이 될 교리문답서는 ‘대교리문답(Greater Catechism)’과 ‘소교리문답(Lesser Catechism)’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모든 교리 중의 교리인 십계명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인 사도신경과 기도 중의 기도인 주기도문과 지극히 숭고한 의식들인 복된 성례 등 4가지의 주요 내용이 들어있다. 
 
루터의 교리문답은 기독교 신앙의 도리를 가장 정확하고 직설적이고 간추려서 진술하고 있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얻으려면 알아야 하는 모든 교리가 집약되어 있다. 목회자와 교사들은 그 뜻을 상세히 풀어 설명할 수 있도록 돼 있으며, 성도들이 십계명과 사도신경, 주기도문을 외우게 돼 있다. 자세하게 분석한 모든 내용들은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교리 문답’은 성인들을 위한 책으로서 그들을 가르칠 교사나 목회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목회자들이 교리 문답 설교를 하는데 안내 역할을 해 주고 있다. 
 
그리고 ‘소교리문답’은 보다 단순하고 어린이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언어로 쓰여 졌으며 전반적인 단순한 표현 기법으로 널리 사용되고 이해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또한 어린이들이 설교를 잘 알아듣지 못하여 배우는 것이 많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천국의 비밀들을 어린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말로 쉽게 잘 풀어내 놓은 책이다. 암기하기에도 쉬운 교리문답서이다. 
 
루터는 교리 교육의 책임을 교회가 아닌 부모에게 지게 했다. 소교리 문답은 아침, 저녁, 그리고 식탁의 기도와 가정예배를 인도하기 위한 책으로서 온 가족이 날마다 그 내용을 배우도록 했다. 또한 신앙생활 하는 신자들이 구체적인 삶을 생활 속에 적용하도록 했으며, 나중에 암기할 수 있도록 꼭 요구되는 성경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루터는 자신이 어렸을 때 교황의 교회에 다니면서 십계명이나 주기도문에 관해서 배워본 적이 없었으며, 또한 교황주의자들은 어린이들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는 그러한 수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이 무지한 상태로 방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소교리문답은 어린이들을 교육시키고 예배에 쓰기 위한 매우 소중한 책으로서 교회에서도 사용하도록 의도했다. 
 
루터교 신앙고백을 받아들이는 교회들 마다 교리문답반을 만들었으며, 주일학교 어린들에게 주일 아침 마다 교리문답을 가르쳤다. 또한 문답식 구성은 기계적인 암기 교육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여 어린이들이 날마다 암송하도록 했다. 작지만 위대한 교리문답은 장년에게는 단단한 음식이요 아기들에게는 젖이다. 이 책의 내용 하나 하나를 하나님 앞에 아뢰면 곧 기도가 된다. 
 
대. 소요리문답의 중요성 
 
1529년에 작성한 두 교리문답은 매우 중요하며, 루터가 남긴 걸작 중 하나이다. 특히 루터는 자신의 모든 책이 다 불타 없어진다 해도 ‘의지의 속박’(1525년)이란 책과 ‘소교리문답’(1529년) 책만 남아 있다면 괜찮다고 할 정도로 어린이를 위한 소교리문답을 중요시 여겼다. 
 
루터는 그의 저서 “탁상담화”에서 요리문답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교리문답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 안에는 기독교 교회의 유서 깊고 순결하고 신적인 교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교리문답에 위배되는 것은 겉으로 아무리 위대하게 보일지라도 거짓 교훈이므로 항상 주의하고 배척해야 한다. 이 책은 가장 온전하고 훌륭한 교리이므로 설교를 통해 지속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모든 공적 설교는 교리문답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이것을 날마다 설교하고 날마다 낭독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시교회에서 목회할 때 매일 설교했다. 특히 그는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교리문답의 설교를 했는데, 그의 대.소교리문답이 설교의 기초가 되었다. 루터는 요리문답 공부를 통해서 개혁의 추종자들이 복음의 진리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확실한 지식을 소유하도록 독려하였다. 그는 어른과 아이들 모두 교리 문답서의 내용을 암기하도록 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식사를 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교리문답서는 기독교 신앙 입문의 기초과정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복음주의 교리의 주춧돌이 되었다. 또한 종교개혁 사상을 배울 수 있게 해주었고, 교회의 표준으로 남아 교회를 다스리는 준칙이 되고 있다. 가정과 교회들과 그 지역의 공립학교들에서 널리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루터파 기관들에게서 널리 채택되어 사용되었다. 
 
루터는 탁상담화에서 “교부들의 저서들을 다 모아 놓고 정리한다 해도 오늘날 우리가 이 얇은 교리문답을 통해 배우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교훈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두 교리문답은 오늘날까지 모든 루터파 교회의 기본교리가 되고 있으며, 독일어 번역 성경 다음으로 유익하고 큰 영향을 미쳤다. 
 
1529년 루터가 대.소교리문답을 출판한 이후에 그 이후에 수 백 개의 교리문답이 쏟아져 나왔다. 칼빈의 어린이용 제네바 교리문답(1542),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1647) 등 개혁파의 교리문답과 여러 신앙고백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루터의 교리문답이 오늘날 교회에 주는 교훈
 
종교개혁 시대는 교리문답의 황금기이다. 성경적 교리는 종교개혁의 심장이 되었다. 교회로 하여금 다시 교리들을 만들어 완벽하게 명확한 방식으로 진술하게 했다. 종교개혁자들의 특징은 교리문답 교육을 가장 중요시했으며 교리문답은 종교개혁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17세기 청교도들과 언약도 들 역시 교리 교육을 그토록 강조했다. 청교도 리처드 백스터는 교리문답 교육을 통해 회심케 하고 신앙이 더욱 더 성숙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특히 설교를 들으면서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회중들이 교리문답 교육을 통해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교리를 공부하지 않고 성경을 연구하면 위험하다. 성경의 교리는 연구 주제가 아니다. 교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과거에 알았던 것 보다 더 온전하게 알게 해 준다”고 말한다. 또한 청교도 리처드 그린햄(Richard Greenham)은 “교리문답이 교육이 개혁주의 교회를 세우고 로마가톨릭교회를 심각하게 도전하고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 
 
교리는 참 교회와 이단을 구별해 준다. 교리문답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실천, 사랑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며, 그 신앙고백의 믿음이 그리스도인들의 실제 삶으로 들어오게 하는 도구이다. 기독교는 배워야 하며 따라서 체계적인 가르침이 필요하다. 특별히 교회는 성도들이 신앙을 고백하고 믿도록 하기 위해 교리를 잘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목회자들은 교리문답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성도들 역시 시시하게 여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말한다. 설교자나 성도들 모두 좀 더 깊고 수준 높은 어떤 새로운 것을 찾는다. 이것은 오해요 착각이다. 정말 깊고 수준 높은 것은 교리문답 뿐이다. 어둠의 악한 영들은 교리문답의 빛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속으면 안 된다. 오늘날 어린이들과 젊은 청년들과 장년들에게 체계적인 문답식 교리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유럽교회사에 나타난 부흥을 연구해 보면 부흥 시기 마다 항상 성경적인 교리가 있었다. 설교자들은 성경의 핵심적인 주요 교리들을 설교하고 가르쳤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원죄, 회개, 칭의, 중생,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의 피, 하나님의 진노, 구원의 은혜, 대속의 교리 등을 선포함으로서 부흥의 불을 지피게 되었다. 예를 들면 18세기 영국의 조지휫필드가 중생을 설교할 때 부흥이 일어났다. 설교를 들은 청중들의 뺨에는 회개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처럼 성경적인 바른 교리 설교위에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부어졌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경적인 교리를 붙잡을 때 다시 부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배 목사는 현재 베를린 비전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영국 런던신학교와 웨일스 복음주의 신학대학교에서 청교도와 부흥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는 총회세계선교회(GMS) 파송 독일 선교사이며, 유럽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국 부흥의 주역들”(CLC)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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