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분이 이목사님 아니요?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팔도 움직이기 힘든줄 알았어요. 그런데 전보다도 더 당당한 풍채에 양팔로 세상을 휘저으며 활보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병이 다 나은 모양이지요?”
“아니요. 병이 더 악화돼서 이렇게 걷는 답니다”
“그건 또 뭔 소리요?“
이후근목사부부가 돌섬을 찾아왔다. 병자답지 않게 활보하는 나를 보고 놀란다.
뉴욕에는 서울감리교 신학대학 62학번동기들이 다섯명 있다. 이후근 심우영 정기성 김영자 이계선. 일학년 신입생이라야 50명이 전부인데 그중에서 5명은 적은수가 아니다. 이후근은 감리교단 감독을 지낸 선비목사다. 수석입학을 한 심우영은 목사안수를 받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정기성은 맨해튼에서 굴지의 여행사를 운영하다가 더 넓은 LA로 옮겨 갔다. 김영자는 유명한 김해종감독의 동생으로 나구용목사의 부인이다. 일기당천(一騎當千)의 두령급들이다. 난 감신에서 1학년을 끝내고 군소교단나사렛으로 옮겼다. 황소꼬랑지 대신 닭대가리가 될줄 알았는데 평생 병아리목회만 하다가 끝냈다. 엄밀히 말하면 실패한 감신퇴출생인 셈이다.
입학동기들의 우정이 각별하다. 김영자가 습작으로 쓴 시를 주길래 몰래 “광야신인문학상”에 보내봤다. 한국최고의 심사위원들(소설-이문열 이호철 시-김남조 김소엽)이 어떻게 읽을까? 그중 “북창동순두부”가 당선됐다. 지금은 다섯권의 시집을 낸 기독시인이다. 난 1회때 소설로 등단했으니 우리는 등단동문이 되는 셈이다.
그래도 제일 잘해주는 동창은 이후근목사다. 뉴욕교계에서 명망가로 통하는 이목사는 교회 행사 때마다 날 불러 세웠다. 하도 자주 서니 1년 선배 김용해목사가 친교시간에 밥을 먹다 말고 떠들었다.
“거, 감신 일년하고 나사렛으로 간 이계선이 뭔데, 자꾸만 불러세우는 거야? 우리들은 감신졸업 유학출신에 정회원목사인데도 식사기도 맡기도 어려운 판인데 말야”
나도 맞장구.
“용해형은 뭘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고 있소. 내가 감신4년을 다 끝내고 감리교목사가 됐다면 기라성같은 인물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식사기도차례도 못 맡았을거요. 다행히 1년밖에 안 다니고 감리교목사도 못됐으니 회소가치 때문에 귀하게 여겨 자주 뽑히는 거요”
“와, 맞아요. 맞아!
20명 넘게 모인 감리교목사들이 웃었다. 그때부터 감신출신 선배들은 나를 “아우님”으로 후배들은 “형님”으로 불러준다.
돌섬에 온지 7년 파킨슨병이 생긴지 5년이다. 이후근목사가 돌섬에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단순 방문이 아니라 병문안이었다. 돌섬을 다녀간 이가 많지만 문병은 처음이다. 나는 파킨슨병을 자랑(?)삼아 허풍을 떠는 글을 쓰는 편이다. 친구는 그걸 심각하게 읽은 모양이다. 하긴 김근태의원은 5년 동안 파킨슨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돌섬을 다녀간 인천의 이가림시인도 5년을 앓다가 임종. 나도 5년째이니 죽던가 아니면 손발을 떨면서 뭉기고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배삼룡처럼 비실비실 걸을줄 생각했는데 장군의 아들처럼 어깨로 걷는게 아닌가? 친구는 내가 많이 나은줄 알고 놀란 것이다. 그런데 병이 더 악화돼서 장군처럼 걷는다고 하니 더 놀랄수 밖에. 무슨 소리인가?
파킨슨병은 나아지게 하는 치료는 없다. 진행을 늦춰 주는게 치료다. 약복용 단백질섭취 운동이 치료다.
난 매일 도파민약을 4알씩 복용한다. 고기와 홍삼을 먹는다. 매일 2시간씩 걷는다. 채식주의자가 5년동안 고기와 홍삼을 먹어댔다. 팔목이 굵어지고 얼굴이 커지더니 헤비급레슬러처럼 건장해졌다. 그래도 병은 악화됐다. 이목사부부가 다녀간 5개월 전보다 요즘 더 나빠졌다. 피곤하고 졸리다. 타자치기가 힘들다. 걷기가 힘들다. 다리에 힘이 빠져 제멋대로 걷게 된다. 술취한 사람처럼 어리어리하게 보인다. 걸어다녀도 무중력상태가 된다. 난 슬퍼하지 않는다. 오즈의 마법사라도 된 기분이다.
‘아하! 무중력상태로 달나라를 탐사하는 우주인의 기분이 이런거 라구나’
그래도 걸어야한다. 걷지 않으면 쓰러져 눕게되니까! 난 걷는 연구를 해봤다. 하루에 천리를 걷는 수허지의 대종은 다리에 부적(符籍)을 붙혔다. 금강산도사의 축지법(縮地法)은 명상을 통한 유체이탈(流體離脫)이다. 모두 손오공같은 허무맹랑이다.
광대걷기를 생각해봤다. 광대들은 긴 막대기와 부채를 사용하여 외줄위를 다람쥐처럼 걸어 다닌다. 오른 쪽으로 몸이 기웃둥하면 긴막대기를 왼쪽으로 기울여준다. 부채일 경우는 왼쪽 아래로 부채질. 그러면 왼쪽이 올라오면서 평행유지. 외줄을 평지처럼 걷게 된다. 광대걸음으로 걷자. 우선 두주먹을 으스러지도록 불끈쥔다. 덜 졸리다. 보폭을 좌우로 넓힌다. 그래야 기울어 넘어지지 않는다. 어깨를 올리고 가슴을 편다. 팔을 벌려 좌우를 조정한다. 왼족으로 몸이 기울어지면 오른쪽 팔을 밖앗쪽으로 휘둘러 균형을 잡아준다. 외줄타기 광대비법이다. 난 외줄타기를 하면서 걷는 것이다. 광대처럼 관객은 없지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난 광대타기로 매일 2시간씩 돌섬길을 걷는다. 주일날은 한시간반을 걸어 교회간다. 걸어 다니며 보는 세상이 타고 다니며 보는 세상보다 더 아름답다. 파킨슨이후 세상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겨울에도 걷는다. 아내 당부.
“오늘은 어둑어둑하고 추우니 두둑하게 입고 나가세요”
완전무장을 한다. 검은추리닝 검은구두 검은장갑에 눈만 빠꼼히 보이는 검은벙어리 모자를 뒤집어썼다. 난 복면을 쓴 알카에다 전사가 된 것 처럼 든든하다. 사람들이 슬슬 피한다. 다리밑을 지나는데 흑인남녀가 엉겨 붙어 일을 벌리고 있다.
“어험!”
긴 바람 큰 한 소리에 혼비백산 놀란 남녀가 아랫도리를 움켜잡고 줄행랑이다.
“광대걸음으로 걸어다니는 세상이 재미있구나!”
친구가 다녀 간 후 내 식탁위에는 매화그림이 시들지 않는 그리움으로 꽃피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