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칼럼

 

나의 유학 이야기(5)

조경현 0 2018.05.10 12:59
옛 맥코믹 캠퍼스 

내가 미국 유학을 결심했을 때, 학교를 정하는데 몇 가지 선택 사항이 있었다. 첫째는 등록금이 비싸지 않아야 하고, 둘째는 역사가 있어야 하고, 세 번째는 나와 연관이 있는 학교였다. 그 때 나에게는 두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한 학교는 휴스톤에 있는 학교로서 비교적 규모가 컸다. 그런데 이 학교는 이 세 가지 조건 가운데 맞는 것이 한 가지도 없었다. 

하지만 맥코믹은 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이 학교를 선택하고 입학 절차를 밟았다. 사실, 내가 이 학교에 입학 하려면 토플 점수가 있어야 했지만,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덕분에 조건부 입학을 하고, 언어는 입학한 후에 마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유학을 온 곳이 바로 맥코믹신학교 였다. 맥코믹은 한국의 초대 장로교회와 연관이 깊다. 왜냐하면, 이 학교 출신들이 선교 초창기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평양에 목회자 양성을 위한 장로회신학교를 설립했기 때문이었다. 설립자와 교수진들이 모두 맥코믹 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다음에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기로 하자. 

사실 맥코믹신학교는 나의 박사 논문의 배경이 되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래서 나는 17-8년 전에 논문 리서치를 위해 이 학교에 일 주일 간 머문 적은 있었지만,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자료만 찾았을 뿐, 지금의 학교에 대한 정보는 잘 몰랐다. 그런데 이번에 이 학교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맥코믹은 원래 인디애나 알바니 라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시 도시화 되었던 시카고로 1880년대 이주했던 것이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링컨 팍 이었다. 이때는 무디가 중심이 되어 미국에 부흥의 바람이 불던 시대였다. 교회는 점점 성장하고 교인들은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목회자가 부족한 현상이 일어났을 게다. 그런데 당시의 사업가이 맥코믹이라는 분이 신학교 육성을 위해서 많은 액수의 기부를 했으며, 그렇게 해서 맥코믹 캠퍼스를 갖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미국의 교회가 약화되고, 재정적 어려움,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를 지금의 하이드 팍(시카고대학교 부근)으로 1970년대에 옮겨왔지만, 당시에 캠퍼스는 그 규모가 제법 컸다. 해서 나는 처음으로 구글 지도를 보며 그곳을 찾았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아직도 추운 겨울의 꼬리가 있었던 때였기에 걷기가 편치는 않았지만, 나의 가슴은 쿵쾅 거리며 마구 뛰었다. 

캠퍼스의 자리는 그대로 있었지만, 1920년대 학교 건물은 딱 하나 남아 있었고, 1960년 지어진 채플이 그 자릴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학교 출신들 가운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다녔던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기숙사로 썼을 법한 로(row) 하우스가 남아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는 옛 캠퍼스를 보면서, 그 옛날 교회가 부흥했을 때, 신학생들이 공부하던 모습을 상기해 보았다. 복음의 열정으로 불타 학업을 하고, 공부를 마친 후 미국의 전역에, 그리고 전 세계에 선교사로 나갈 꿈을 꾸었던 자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것은 내 자신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 

교회는 항상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더라도 쇠퇴와 성장을 반복하면서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을 배운다. 초대교회가 중세에 들어서면서 카톨릭의 타락으로 교회는 만신창이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의 그루터기를 통해 역사하셨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지금은 교회가 타락하여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통해서 다시 교회를 일으켜 세울 것이라 확신한다. 

맥코믹의 옛 캠퍼스는 지금 역사적인 장소로 보존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이 함부로 건물을 철거할 수도, 지을 수도 없다. 대신 보존 비용은 시카고 시에서 부담한다고 한다. 나는 이곳을 그 후로 여러 번 방문하면서 이 학교를 통해 배출된 지금은 잊혀진 사역자들을 회상하곤 하였다. 특히, 100여 년 전에 미지의 땅 조선에 선교사로 왔던 사무엘 모펫과 그레함 리, 찰스 클락, 번하이젤 등 선교사들을 말이다. 

그들은 맥코믹을 졸업한 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태평양을 건넜다. 그리고 전혀 모르는 땅, 조선 땅에 와서 자신의 젊음을 바쳐, 하나님 나라의 꿈을 이루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그들의 수고와 헌신의 열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그들의 고향 땅이 이곳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다니 감개무량한 것이다. 

앞으로 맥코믹의 역사는 또 어떻게 기록될 지 나는 모른다. 지금은 과거의 신학과는 많이 다른, 매우 진보적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복음은 회복되어야 하리라. 우리는 다만 이 시대에 복음이 필요한 이들에게 주님의 눈으로, 마음으로 보고, 그들에게 손과 발이 되어 다가 가는 것이리라. 맥코믹이여! 너는 과거의 영광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십자가를 질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이다.

사진(옛 맥코믹캠퍼스 Common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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