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칼럼

사막은 은헤의 땅 26

김태훈 목사 0 2017.02.24 09:15

그 당시만 해도 4백 달러면 적지 않은 돈이었는데 몇 시간 동안 슬롯머신을 열심히 당겼더니 졸지에 4백 달러나 되는 돈을 벌 수 있었다. 나는 신이 났다. 

 

'야,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나는 카지노의 짜릿한 맛에 완전히 매혹되고 말았다. 그 후로 나는 몇 달 동안 거의 매 주말이면 신학생이라는 직분도 망각하고 카지노를 전전하며 슬롯머신을 섬기는 맛에 살았다. 그 당시 아내는 신학공부를 시작한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 맨해튼에 손톱 손질하는 가게를 시작했는데 가게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운영이 잘 되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   고 있었다. 덕분에 내 호주머니에도 여유 있는 돈을 조금씩 챙길 수 있었고 그런 돈만 생기면 나는 카지노로 달려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신앙 양심에 큰 갈등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명색이 신학을 공부하는 신학생이 주말이면 카지노로 달려가는 형색이 말이 안 된다는 자각의 음성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양심의 소리는 듣고 있었지만 '한 번만 더,한 번만 더'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몇 달을 도박과 신학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또다시 결단을 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도박을 계속하면서 세상의 재미를 더 즐기든지, 아니면 다시 하나님의 양심에 합당한 신학생의 본분으로 돌아가든지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가 나를 볼 때 나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회개를 참 잘한다는 것이었다. 잘못한 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나는 하다못해 아이들에게라도 나의 잘못을 이야기하고 용서받기를 원했다. 하나님 앞에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있다면 나는 철저히 용서받기를 원하며 회개의 눈물도 많이 뿌렸다. 이번에는 도박문제로 인해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 도박에 맛을 들였는데 하나님이 고쳐 주세요 주말만 되면 도박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흘을 베풀어 주셔서 저를 죄악의 구렁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이틀을 금식하며 기도한 후에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치유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고 난 후 나는 다시 는 도박장을 찾지 않았다. 도박에 한 번 빠졌던 사람들이 들으면 믿기 힘든 일이라고 하겠지만 사실 나는 그날 이후 다시는 카지노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도박은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끊을 수 있다. 자신의 의지로는 결코 끊을 수 없는 끈질긴 죄의 결박이 바로 도박이기 때문이다. 

 

도박과 신학 사이에서의 갈등은 그렇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해결하고 3년 동안의 평신도 성경학교에서 요구하는 모든 학점을 이수할 수 있었다.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면서 나는 더욱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연습을 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무척 교만한 생활을 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돈 잘 쓰고 찬양 잘하고, 기도 잘하는 소위 말해서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신학생'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가난은 이제 옛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님께서는 아내의 비즈니스를 통해서, 그리고 부동산 구입을 통해서 물질적인 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셨다. 주급 150달러짜리 어려운 생활을 하던 때가 잊그제 같았는데 어느 사이엔가 한 달 생활비로 1만 달러를 쓰는 중상류층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복을 부어 주실 때 우리는 좀더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 물질을 사용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한동안은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현금을 가 지고 도박에 빠졌다가 성령님의 호된 질책의 음성을 듣고 도박을 끊기도 했다. 또한 한국에서 목사들이 신학교를 방문하면 무슨 대단한 갑부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봉투에 돈을 넣어서 용돈까지 챙겨주기도 했다. 그런 일들을 순수하게 주의 종을 섬기는 마음에서 했으면 좋았을텐데 돌이켜 보면 그것은 일종의 거만함이었다. 돈 잘 쓰는 신학생으로 알려지면서 학교에서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학생으로 꼽혔다. 그래서 본과에서 공부를 시작한 이후 2년 동안 학생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신학교를 뜻하는 영 어 단어인 Seminary는 공동묘지라는 뜻 의 Cemetery와 발음도 비슷하고 단어도 유사하다. 나는 이 두 단어 사이에 상당한 연관성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신학교에서 영성을 개발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더 가깝게 대면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신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학교는 오히려 영적인 공동묘지가 된다.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주의 종으로 준비되기 위해 시작한 신학교(Seminary)가 오히려 영적인 침체, 결국은 영적 사망의 공동묘지(Cemetery)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신학교는 어쩌면 영적인 공동묘지에 더 가까운 기간이었다. 하나님을 열망하며 기도하던 순수한 마음이 신학교를 거치면서 영적 교만과 거드름으로 대체됐다. 그렇게 타락했던 신앙의 순수성을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과 연단의 과정이 필요했다. 내가 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아내는 곧바로 작은 사업장을 시작했다. 손톱 손질을 해주는 조그만 가게는 매일 손님들이 미어터질 정도로 잘 됐다. 우리 가게가 잘 된다는 소문을 듣고 주변에 동일한 손톱 손질가게들이 생겼지만 유일하게 아내의 가게에만 손님들이 몰렸다. 경쟁 가게들이 가격을 인하하면서 손님들을 빼앗아가기 위해 혈안이 되었지만 가게의 매상은 한 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업소보다 가격을 더 높여 받는데도 새로운 손님들이 계속 늘었다. 아내는 처음에는 혼자서 일하다가 도무지 일손이 딸려서 사람을 두지 않고는 가게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 사람씩 종업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던 것이 가장 많을 때는 그 조그만 가게에 9명의 종업원을 두기까지 했다. 물론 아내의 솜씨가 좋아서 손님이 몰리기도 했겠지만 그 사업장은 하나님이 복 주심으로 잘 될 수 있었다. 아내는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그냥 손님으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 전하는 일에도 그렇게 열심을 냈다. 아내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 손님들 모두가 이 업소에 들어오면 일단 예수님에 대해서 단 한 마디라도 듣지 않고 나가는 경우가 없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아내의 이런 전도의 열정을 기쁘게 받으셨다고 믿는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게 부동산을 사고파는 안목을 주셨다. 아내의 사업장이 잘 되면서 더 넓은 장소로 가게를 이전해야 했는데 이때 기왕이면 건물을 구입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몇 군데 상가 건물들을 보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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