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여호와는 땅에 인애와 정의와 의(공의)를 행하시는 분이시라.”
본문 : 예레미야 9:24
24 나 여호와는 인애와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을 너희가 깨닫고 알아야 할 것이니라
오늘날 우리 신자들이 이 말씀을 막연한 객관적인 명제나 어떤 선언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여호와 그분은 땅에 인애와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시다”는 문장(명제)으로 마무리하려니까, 너무나 아쉬움이 많다는 말입니다. 만일 그렇게만 받아들이고 만다면, 구약에 위치한 이 말씀은 너무 막연하고 미완성이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올바르게 읽는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런 관점을 소개합니다. 즉 하나님(성부)의 모든 뜻과 계획은 그 아들(성자)을 통하여 계시될 뿐만 아니라 실현된다(the Son as the revelator and realizer)고 하는 관점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을 읽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땅에 인애와 정의와 공의를 어떻게 행하시는지, 3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구별해서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진 관점으로 이 말씀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1. 여호와는 “인애”(loving-kindness, 긍휼=사랑)를 땅에, 더 구체적으로 사람에게 행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서 내게(죄인 다윗) 은혜를 베푸시옵소서.”(시편 51:1) 시편의 이 구절에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땅 위에 막연하게 인애를 행하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아주 구체적으로 땅의 죄인에게 인애(긍휼, 사랑)를 행하시는=베푸시는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인애=긍휼)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고 하신 말씀에서, 여호와의 인애(긍휼=사랑)가 땅의 죄인에게 어떻게 행하여지는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성부)께서 인애를 땅의 죄인에게 행하시되=베푸시되, 궁극적으로 아들(성자)을 통하여 (십자가 사건에서, 롬 5:8) 완전하게 베풀어진 것을 깨닫게 됩니다.
2. 여호와는 “정의”(justice=공정한 재판)을 땅에, 더 구체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행하시는 분입니다. 한 평생을 죄인으로 살아온 우리에게 이 말씀은 너무나 엄중한 책임을 물으시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나라고 하는 죄인(신자라고 할지라도)이 하나님(여호와)의 공정하시고 엄격하신 재판(대) 앞에 세워질 경우, 나 자신은 도저히 (무죄한 자로[not guilty] 판결 받을) 자신이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재판을 견딜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내 모든 삶에서 정의로움을 결코 찾을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나의 뇌리를 스쳐지나는 생각이 있습니다. 4복음서에서 뚜렷하게 느껴지는 내용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로 공정하지 못한 재판으로 말미암아 한 의인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으로 판결받아 죽임을 당하신 경우입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니, 이와 같이 연결됩니다. 아무리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자녀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 스스로는 하나님의 공정한 재판(“정의”) 앞에서는 오히려 근심과 슬픔에 쌓일 뿐입니다. “무릇 시온에서 (죄든지 정의롭지 못한 것을 인하여) 슬퍼하는 자에게 재(회개와 눈물)를 대신하여 화관(꽃의 관)을 주시고, 그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주시고, 그 근심 대신에 찬송의 옷으로 가득차게 하셨도다.”(이사야 61:3) 쉽게 말해서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메시아=아들)를 자신의 피난처와 구원자로 삼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가 이것입니다. 백성과 자녀인 그 죄인들을 대신하여 모든 공정한 재판(“정의”)을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든 죄인들을 대신하여 공정한 재판(justice)을 받으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그 육신에 죄를 정하셨도다.”(죄의 선고와 죄의 집행, 롬 8:3)
3. 여호와는 “의”(righteousness=공의)를 땅에, 더 구체적으로 사람에게 행하시는 분입니다. 산상교훈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매우 역설적인 은혜를 발견합니다. “의에 굶주리고 목이 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태 5:6) 즉 의에 굶주려 있고 목 말라하는 자에게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배부름을 제공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확인되고 확인하는 바는 내게는 의로운 구석이 털 끝 만큼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혹시라도 의로운 구석을 조금이라도 발견한다면, 지극히 자신의 이득과 이로움을 바라면서 베풀었던 아주 이기적인 의이었던 겁니다. 이렇게 자신에게는 의를 찾고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한 자에게(=의에 주려 있고 목마른 자에게) 오직 믿음과 신뢰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주시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로마서 3:22)
이렇게 본다면, 하나님의 인애와 정의와 의(공의)는 땅에 따로따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포괄적으로 성취되었다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인애와 정의와 의(공의)를 풍족하게 체험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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