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장 10-16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제목 :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본문 : 빌립보서 3:10-16
육체의 죽음은 누구든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도 복받지만 죽을 때도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죽는 신앙인들에게 “죽음의 복”이 있습니다. 수고를 그치고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계 14:13).
죽음의 복은 “생명의 부활”입니다 (본문 10-11절). 이 세상을 사는 우리들은 누구나 아직 부활의 복을 이미 얻었다 하지 못합니다. 온전히 이루었다 하지 못합니다.
본문 12절 전반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13절 전반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때문에 사도 바울은 어찌하든지 생명의 부활의 복에 이르기를 갈망했습니다.
본문 11절 “...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생명의 부활은 이미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시어 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님이 주시는 은총입니다. 예수님처럼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함 받게 되는 너무나도 놀라운 영원한 축복입니다.
“그[예수님]가 ...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 3:21). 비유) 송충이와 같은 징그러운 애벌레의 탈바꿈: 알->애벌레->꼬치->푸르른 창공을 나는 아름다운 나비!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처럼 영광스럽고 복된 생명의 부활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두 가지가 한 세트가 된 한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오직 한 일!” (13절 중반) one thing I do! 무엇입니까?
1.먼저 할 일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는 일”입니다
본문 13절 중반 “...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 But one thing I do: Forgetting what is behind...
“므낫세”는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었던 요셉의 맏아들이었습니다. 요셉이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여 총리가 된 후, 지난 날의 고통을 잊었기에 “망각”이란 뜻의 “므낫세”란 이름을 아들에게 지어 주었습니다 (창 41:51). 형들로부터의 시기 질투, 끝내는 형들 손에 노예로 팔리는 배신의 아픔, 애굽 땅에서의 종살이 등등.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은 대부분 과거의 고통과 기억이 떠올려지면서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과거의 문제가 해결됐다면 화를 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실례: 부부싸움 ... 레코드판, 녹음기 / 신파조 가요 - 과거를 묻지 마세요).
또한 요셉은 지난 날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채색옷을 받아 입던 총애와 함께 모든 집의 일을 잊었습니다.
망각의 신앙이 복음적 신앙입니다. 과거의 옛것은 흘러갔습니다. 은혜를 받게 되면 누구든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됩니다 (고후 5:17).
그리고 늘 갱신되어 새로와지기 원하시지요? 비법은 옛 것을 잊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사 43:18)
그러나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린다 하여 도피 또는 도망이 되면 안됩니다. 현재의 자리와 시점이 괴롭다 하여 “차라리 떠나면 편하지”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현실도피는 과거를 잊어 버리는 정당한 수단이 아니라, 가장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태입니다. 현실도피의 극단적 수단이 무엇입니까? 바로 너무나 안타깝고 어리석은 “자살” 아닙니까? 우리 모두 “복된 망각”이 현 시점과 현 장소에서 지난 과거를 잊어 버리는 것임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지나간 일만을 생각하게 하고 집착케 합니다. 반면에 성령님은 앞의 일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 마귀가 붙잡고 있는 과거의 모든 사건과 기억들을 바로 잘라 버리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잘되었던 일들을 기억하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반대로 과거에 실패했던 일들을 기억하면 자기열등감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뒤에 있는 모든 것들을 잊어 버리시는 연말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중생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이 거듭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딛 3:5).
2.한 일, 즉 한 세트 중 마지막으로 복되고 영광스런 부활에 동참하기 위해 연이어 할 일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13절 후반-14절, 12절 후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앞에 있는 장래 기업을 잡으려고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히 11:8-10). 우리 주님 예수님도 앞에 있는 부활과 승천, 하늘 보좌에 앉게 되는 즐거움을 미리 보았습니다 (히 12:2 후반).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들에게 앞에 있는 것을 잡기 위해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12:2 전반).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11:6).
우리 모두 아브라함과 예수님, 사도 바울처럼 앞에 있는 하늘의 상, 즉 부활의 푯대(목표)를 잡기 위하여 좇아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좇아가야 할까요? 절제하고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킴으로 좇아가야 합니다 (고전 9:24-27 전반). 또한 어디서부터 좇아 가야 할까요? “현 지점”입니다.
언제 좇아가야 할까요? “현 시점”입니다. Here and now 입니다. 지금까지 살며 성취했던 현재의 현장이 출발점입니다.
본문 16절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Only let us live up to what we have already attained
이제 며칠 있으면 2022년 새해가 밝아 옵니다. 새로운 신년을 맞이하며 우리 모두 앞에 있는 하늘의 부름의 상을 잡으려고 자신의 사욕을 절제하며 전력을 다해 좇아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전진하려 할 때, 지나간 과거는 다 떠내 보내야 합니다. 이미 흘러간 과거에 어리석게도 얽어 매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과거는 현재 또는 미래를 결코 다시 살아주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족쇄채워 노예삼고 있는 모든 과거의 사건과 기억을 올해 마지막 날인 31일까지 모두 끊어 버리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잊어 버리는 망각의 일이 됐다 하여 멈추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부활을 얻기 위해 한 세트로 “한 일”이 주어졌기에 추가로 연이어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새해 들어서면서 앞에 있는 하늘의 부름의 상을 바라보고 현재의 현장에서 새롭게 출발하시길 축원합니다. 부활의 푯대를 향해 자신의 사욕을 절제하며 힘써 전진해 나가시는 새해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스럽고 복된 생명의 부활의 상을 끝내 받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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