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창35:1-8, 신32:7
제 목 :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신32:7) Remember the days of old, consider the years of many generations: ask thy father, and he will shew thee; thy elders, and they will tell thee. (Deu 32:7)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했던 날을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6월은 국가 보훈의 달로서 6일 현충일이 있고, 6.25 사변은 우리 민족사에 가장 참담했던 결코 잊을 수없는 비극적인 날입니다.
우리의 강토가 초토화 되었고,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6,25 사변은 잊지 못할 아픈 상처가 많이 있는 슬픈 역사의 날입니다.
국군 전사자가 146,837명, 유엔군 전사자가 36,837명이며, 부상자는 국군이 717,003명, 유엔군이 11,580명이요, 실종자가 국군이 43,572명, 유엔군이 1,554명이었고, 행방불명된 자가 303,212명, 부상자가 229,625명, 전쟁미망인이 5십 만 명, 고아가 5만 9천명입니다,
이 같은 엄청난 비극이 이 땅에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한국의 5천년 역사 가운데서 약 960여회의 크고 작은 전쟁의 끔찍한 고난을 많이 당하였습니다.
하지만 6,25와 같이 우리 민족끼리 처절했던 영영 지울 수 없는 쓰라린 상처투성이를 남긴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전 국민의 5천180 여만 명중 80% 가까이 되는 세대는 6,25 동란을 격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더욱 안타까운 실정은 전쟁을 격은 기성세대 까지도 그 비극적인 무서운 사건을 까마득히 잊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6,25 를 역사 속에 묻혀있는 비사로 여기며 너무 안일하고 나태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
저는 신록이 짙어지는 6월이 되면 공산주의자들의 불법남침으로 일어났던 6.25 사변의 비극이 빚은 남북분단의 아픔이 되살아납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운동장에서 전 교생이 모여서 풍금에 맞춰 부르던 6,25노래 불렀던 생각이 납니다.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나라 이겨레
애국심에 불탔던 교장 선생님의 훈시가 지금까지도 들립니다.
저는 이 시간 동족상잔(同族相殘) 의 비극적인 전쟁 6,25 사변 71돌을 맞이하며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조국과 민족은 5천년의 긴 민족역사를 갖고 있으면서, 한 번도 수난을 당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으로 인해 언제나 전쟁의 공포 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도 당나라와 생사가 걸린 전쟁을 해야 했고,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침략을 받아 40여 년 동안 한반도가 몽고인의 말발굽에 처참하게 짓밟혀야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청나라의 속국처럼 되어 노략질을 당해야 했으며, 1598년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으로 인해 7년 동안 포악한 일본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더욱이 일제 36년 동안에는 일본의 학정 밑에서 이름도 글도 언어도 잃어버린 채 귀머거리 되고 벙어리 되고, 장님이 된 상황속에서 비참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멸절되지 않았습니다.
모진 수난을 일본의 멸망으로 해방의 기쁨을 맞이했는데, 채 누리기도 전에 공산주의의 마수에 의해 우리는 남침으로 처참한 전쟁을 또 겪으며 남북분단을 맞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얼마나 잔악한 마귀의 사상인지를 모르고 공산주의자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며 머리에 뿔이 났느냐? 몸둥이가 빨갛냐? 하며 설득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서울에서도 좌경세력이 난무하고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소리를 공공연히 들을 수 있었으니 붉은 용의 간교함이 얼마나 능란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오늘 본문말씀을 통하여 '6.25사변을 다시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오늘 우리가 얼마나 잘 잊어버리는지 모릅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 지난주일 설교말씀의 제목을 기억하고 있는 분이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 지난 일들을 까마득히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망각을 아무리 잘하고, 잘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그런 중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십자가 때문에 내 죄 사함을 받게 되고, 화해와 화목을 이루게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십자가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생명을 얻어, 구원을 얻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놀라운 사건의 결정체인 서슬 퍼런 갈보리 언덕의 그 십자가 사건을 우리가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사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의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신 예수의 그 사랑의 몸부림의 절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아울러 오늘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8.15해방, 2002월드컵의 영광, 등)
그 중에 또 하나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6.25사변 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처참했던 6.25사변을 이 나라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결코 잊을 수가 없고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우리가 그 날을 잊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정권 때는 6.25 행사도 못하게 하고 6,25 노래도 개사해서 부르는 통탄할 일입니다.
피해자들이 가해자 들을 자극할까봐 그런지 이해가 안 됩니다.
오히려 당시에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을 찬양하고, 미화시키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특히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가에서 인공기가 펄럭이고, 불순 책자들이 나돌고 있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걱정이 안 된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6.25를 기억하면 6.25가 안 오고, 6.25를 잊으면 6.25가 다시 온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음세대를 위하여 다시는 그러한 아픔을 당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면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난 40년 동안 고난 길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고난을 주셨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의 때를 기억하라고 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처참했던 6.25를 다시 기억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후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훈련을 시킨 후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가데스 바네아로 인도했습니다.(신2:14)
하나님을 믿고 바로 들어가면 되는 데 이들은 먼저 그 땅을 탐지하자고 하여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내어 40일 동안 정탐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탐꾼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도리어 들어가면 죽는다고, 불평하므로 모든 백성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가나안의 꿈이 유산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고난을 겪은 것은 불신앙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A.D 70년에 디도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인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이 되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 있던 110만 명이 죽임을 당했고, 9만 7천명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 히틀러의 나치정권 때, 600만이나 되는 유태인들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면 ‘야아드 마심’ 이라고 하는 600만 학살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곳에 학살당하면서 유대인들의 비참한 모습의 사진과 그들이 입었던 피 묻은 옷 찢어진 신발 등 가슴 아픈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무서운 고난의 때에 하나님이 계시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원망하면서 죽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이 그처럼 엄청난 고난을 당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그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려주소서. 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죄 때문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역사는 거울입니다.
본문에는 벧엘이 어떤 곳이기에 신앙이 해이해진 야곱에게 그 곳에 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했을까요?
벧엘은 야곱이 팥죽 한그릇에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고, 축복기도를 받은 후, 에서가 죽이려고 하자, 부모 형제 고향을 떠나 야밤에 도주하여 이르게 된 곳입니다.(창28:10-22)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하늘을 지붕 삼고, 잠을 자다가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내려와 땅 끝에 닿고, 수많은 천사들이 그리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곳입니다.
신앙의 놀라운 체험을 한 곳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야곱의 신앙이 해이해졌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잊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한 번은 야곱이 세겜 땅에 거할 때에, 그의 딸 디나가 세겜족 추장에게 요새말로 성폭행을 당했습니다.(창34:1-31)
그리고는 그 추장이 디나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과 결혼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하다, 한 가지 조건으로 모두 하나님을 믿으라, 고 권면을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 부족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십시오.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과는 결혼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세겜 족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았고, 그로 인해 그들이 끙끙앓고 꼼짝 못하고 있을 때, 야곱의 아들들이 쳐들어가 세겜 족의 모든 남자를 다 죽여 버렸습니다.(창34:24-25)
이 사실을 들은 야곱이 생각해보니 큰일 났습니다.
그 주위의 부족들이 쳐들어와 복수할까봐 무서워 떨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거기 거하며,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고 하셨습니다.(창35:1)
그래서 야곱은 가족과 함께 가서 이방신상과 귀고리등을 다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밑에 묻고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하여 범죄하고 해이해졌던 신앙이 다시 회복되고 영적으로 재무장했더니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창 35:5) 고 했습니다.
6.25 사변을 맞이하면서 우리민족, 아니 우리성도들도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는 기회를 삼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6.25사변을 통하여 새로운 은혜와 체험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옛날 일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신32:7)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6.25 사변을 상기하고 기억함으로써, 그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교훈을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1. 죄의 값은 무서운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6.25사변은 한국교회의 죄 때문에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들어오고 큰 교회들이 세워져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 북한이었고 평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기독교를 탄압하고 억압 정책을 쓰니까, 하나님이 가장 가증이 여기는 다른 신을 섬기는 일과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습니다.
즉 신사참배, 궁성요배(宮城遙拜)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진해서 거룩한 성전의 종과 거룩한 기구들을 떼다가 바쳐서 무기를 만드는데 쓰게 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 연맹' 에 가입하라고 강요하니까 가담하여 공산당 앞잡이 노릇하며 타락한 정치목사들도 많았습니다.
타협할 수밖에 없어서 타협하고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범죄 하였지만 죄의 값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히12:6, 8, 11).
하나님께서 공산당이라는 몽둥이를 들어 다 치시고 만 것입니다.
야곱은 큰 재난을 당할 위기에 처해서야 회개했습니다.
'이방신을 버리라' 고 했는데 야곱은 신앙이 해이해 져서 가족들이 이방신 우상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묵인했으므로 그 죄를 회개했던 것입니다.(창35:2)
또 '자신을 정결케 하라' 고 했는데 전에 아버지와 형과 외삼촌을 속이고 잘못한 죄를 회개했던 것입니다. (창35:2)
'의복을 바꾸라' 고 했는데 거짓된 행위 이방인의 풍속, 습관 등 더러운 행위를 끊고 돌아서지 못했으므로 그 죄를 회개했던 것입니다.
죄의 값으로 무서운 재난과 위기가 닥친다고 할 때, 이 나라에 제 2의 6.25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주의 종들과 교회들이 먼저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북한에서는 핵무기를 개발해 놓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세균무기를 250톤이나 만들어 놓았다고 큰 소리 칩니다.
붉은 용의 사자들이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누가 알겠습니까?
실로 우리는 항상 회개하고 정신 차리며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2. 극심했던 고난을 기억해야 합니다.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창35:3)
하면서 옛날에 다급하게 도망하다가 인적이 없는 광야에서 돌베개 베고 잠자던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 주시고 은혜 베푸시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팡이만 가지고, 나그네봇짐 하나 걸러메고 도망가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큰 부자가 되고 많은 처자식들을 거느리게 되었지만, 위기를 만나 이전의 고난의 때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편안하고 잘 살게 되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천하고 가난했던 때를 잊어버리면, 교만해지고 세속화되고 사치해지고, 음란 방탕해져서 타락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편안할 때 오히려 고난의 때를 기억하며 더욱 겸손하고 경성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단체에서 실시하는 6.25때 먹었던 주먹밥을 먹어 본적이 있는데 받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 졌습니다.
지금도 지상낙원이라고 할 만큼 부요한 나라 덴마크에서는 청년들이 호화스런 파티에 들어가기 전에 옛날 선조들이 먹던 까만 호밀 빵과
맹물을 마시고 들어간다. 고 합니다.
고난의 때를 기억하며 선조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고 그 고난을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자신들의 자세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지요.
이렇게 우리도 6.25의 불행을 되새기며 기억함으로써 더욱 경성할 때 6.25와 같은 불행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만나던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네가 네 형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 35:1)고 했습니다.
위기와 고난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로 구출 받던 때를 항상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후, 돌아 서서는 '우연이었겠지, 뭐' 라고 말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삭개오가 가끔, 전에 예수님을 만났던 그 뽕나무를 찾아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무를 쓰다듬고 또 물을 주며 울었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은 처음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고 은사 받던 그 기도원을 찾아가 해마다 기도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계2:4-5)
사1:3-4에서는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흘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라고 탄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은혜 받던 때와, 구원받던 때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항상 자기의 비천하고 가난하고 죽을 뻔 했던 때를 기억하고 겸손하게 그 때에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이 계속적으로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4. 하나님의 축복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지금 이만큼 번창하고 잘 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임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 축복의 보장을 받았던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지금 부자가 되고 처자식을 거느리고 잘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지, 본인이 잘나서 된 것이 아닙니다.
고후3:5에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났느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옷을 입어도, 음식을 먹어도,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을 보아도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축복임을 깨달아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감사와 감격이 사라지고 신앙의 열정이 식어지면 언제부터인가 시험에 든 것입니다.
다윗 왕은 나라가 부강해지고 명성이 높아져도 늘 자기는 비천한 목동 출신이며, 이새의 말째 아들이었던 것을 잊지 않고 자신의 부와 명예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삼하7:8-9)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고 했습니다.
이 때에 다윗은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 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라고 하나님 마음에 쏙 들도록 대답하였습니다.
신8:12-14에 보면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 신8:17-18에서는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호국 보훈의 달 6.25 사변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 쓰라린 아픔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 입니다.
죄의 값은 무거운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사망입니다.
극심했던 고난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만치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깊은 교제가 이뤄집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 다 잊었다고 해도 우리 죄를 사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때로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에벤에셀 하나님을 기억하여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6.25와 같은 비극이 다시 오지 않도록 겸손하고 성결한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이 민족을 건져주시고 살려주시며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지켜 주신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가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