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마태복음 27장 15-26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복음뉴스 0 2021.02.14 20:20

본문말씀 : 마27:15-26

제   목 : 예수냐 바나바냐. 

      김경열 목사 

이에 바나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마27:26) Then released he Barabbas unto them: and when he had scourged Jesus, he delivered him to be crucified. (Matthew27:26)

 

인생은 선택(Choice) 에서 결정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크고 작은 순간 선택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선택을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선택하지 않는 것 역시 선택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하는 사소한 선택에서 부터, 어떤 직업을 선택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배우자를 선택 할 것인지, 중대한 일들을 선택을 통해 결정하게 됩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 합니다. 라는 전자제품회사 광고도 있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그렇게 중요한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행복과 불행, 선과 악이 내가 선택해서 나타난 결과입니다.

영원한 지옥과 천국도 순간 선택에서 갈라집니다.

 

선택은 자유지만, 선택에 따른 결과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성경에도 선택에 대한 교훈이 많이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잘못 선택함으로 에덴을 쫓겨나는 불행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내가 내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하라, 고 했습니다.(신30:19-20)

 

모세의 유언적인 기도인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있고, 잘 사는 길이 있고, 망하는 길이 있나니 올바른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올바른 선택은 평생 아니 영원한 미래까지도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올바른 선택을 몇 가지 소개하면

 

좁은 길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크고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으니라(마7:13)

 

좁은 길은 한 곳으로 가는 외길이요, 그 길은 힘든 길이요, 위험이 도사릴 수도 있고, 유혹도 있으며 장애물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외모보다 중심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이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롯의 선택도 당장 눈앞에 비옥한 땅만 보고, 소돔 땅을 선택한 것이 훗날에 불행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7대왕 이었던 아합도, 여자하나 잘못 선택한 것이 나라도 망했고, 가문도 망쳤고, 자신도 불행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엘리아는 3년6개월 기근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갈멜산에 모아놓고 바알이냐 하나님이냐? 선택을 분명히 하라고 외쳤습니다. 

 

여호수아도 가나안땅을 정복한 후 제일먼저 백성들에게 분명한 선택을 촉구했습니다. 

 

애굽에서 섬기든 신이든지, 광야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섬길 자를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평생을 넘어,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불행한 선택한 자가 등장합니다.

 

당시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선택입니다. 

 

총독으로서 공정한 재판을 내려야 할 신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의 아우성 소리가 두려워서, 법과, 정의와 원칙, 양심을 버리고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 주기로 선택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불행한 선택을 했습니다. 

 

빌라도는 이런 선택의 결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구속사역의 길로 갔지만, 그 길을 가도록 쓰임 받은 사람은 가룟 유다같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겁니다. (마26:24)

 

신앙고백을 할 때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의 입에서 가장 불행한 이름으로 주님 재림 할 때까지 오르내리는 이름이 빌라도입니다.

 

올 한해도 희망차게 시작했습니다. 

 

한해를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마다 바른 선택을 하시길 축복합니다.

 

많은사람들이 맞다고 해도 틀린 것은 틀리다고 할 수 있는 용기, 많은사람이 다 틀리다고 해도 맞는 것은 맞다고 하는 소신이 필요합니다.

 

빌라도의 불행한 선택은, 정의와, 법과 원칙, 양심의 세 가지 기준을 버린데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모습도 이런 기준이 무너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1. 빌라도는 정의를 버린 불행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당시 명절이 되면 죄수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20-21절)

 

백성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죽이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바라바가 누구인가? 살인죄를 지은 흉악범입니다. 

 

예수가 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빌라도는 군중들의 민란의 아우성 소리에,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었습니다.

 

1) 빌라도는 다수의 요구에 불의한 선택을 했습니다.(21절)

 

빌라도는 군중들에게 두 번씩이나 누구를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고 물었습니다. 

 

몰라서 물은 것 아닙니다.

 

예수는 아무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의로운 재판을 집행하지 않고, 군중들의 인기를 얻어 총독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비열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이 하는 선택이 잘못인줄 알면서도, 군중들의 요구에 불의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주장이 옳은 것만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면서 물이 없어 고통스러울 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원망하면서 외쳤습니다. 

 

만약에 모세가 이런 백성들에게, 여러분 애굽으로 갈까요. 가나안으로 갈까요. 여러분이 선택 하라고 했다면, 애굽이요 애굽이요. 모두 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이 외치는 다수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을 향해 앞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고라자손들이 당을 지어 군중을 선동하며 장애물을 만들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가나안을 향해 갔습니다. (민16:30-33)

 

하나님은 모세의 가는 길을 가로막는 고라자손들을 땅을 갈라 쓸어 묻었고 나머지는 불로 태워 버렸습니다.(민16:35)(민26:10)

 

만약 백성들이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소리를 모세가 선택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원히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과거 불평과 반역, 불신으로 얼룩진 세대는 다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대에 기대를 걸고 가나안 정복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애굽을 나온 1세대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 한사람도 남지 않고 죽었다고 했습니다.(민26:65)

 

성경은 다수의 선택이 아니라, 신본주의(하나님 중심)적 선택입니다. 

 

백성들이 다 반대해도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야하고, 멈추라고 하면 멈추는 것입니다. 

 

성경적 선택은 독재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신본주의였습니다. 

 

다수가 아니라 소수라 할지라도 하나님 편에서 선택할 때, 하나님이 책임져 주셨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황금의 입” 으로 유명한 동방교회의 성자요,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한때 교회서 중대한 결정을 내렸는데, 주변 사람들이 

모두 반대를 했습니다. 

 

참모가 모든 사람이 반대한다는 내용의 보고를 올렸을 때, “그는 온 세상이 반대한다면 하나님 편에 서기위해, 우리가 온 세상을 반대 해야지”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오직 하나님 편에 서기를 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해, 온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다수가 아닌 소수의 편에 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불이익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초대교회 성도들은 직장을 잃고, 수없는 수치와 고통을 겪고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빌라도가 정의로운 판결을 원한다면, 온 세상이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해도, 아닙니다. NO. 라고, 외쳐야 했습니다.

 

죄 없는 예수를 놓아 줘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다수의 불의한 요구에 정의를 버린 불행한 선택을 했습니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출23:2)

 

여러분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편이 아닌 줄 알면서도, 다수의 동요되어 불의한 선택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WCC, 다원종교, 차별금지, 동성애 같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을 선택한다면, 엄청난 후폭풍을 당할 것입니다.

 

앉지 말아야 할 자리에 앉고, 서지 말아야 할 자리에 서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는 가기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2, 빌라도는 법과 원칙을 버린 불행한 선택을 했습니다.(22-23절)

 

1) 빌라도는 역사의식이 없는 지도자입니다.(22절)

 

빌라도는 당시 판결을 내릴 때, 참과 거짓, 의와 불의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역사의식이 없었습니다. 

 

역사란 훗날 후대에게 물려줄 유산입니다. 

 

우리의 발자취는 역사 속에 남게 됩니다. 

 

개인의 역사는 추억으로 남게 됩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런 역사의식이 없이 법과 원칙을 버렸습니다.

 

자기 부인의 꿈을 통해서도 예수는 죄가 없음을 알려줬습니다.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19절)

  

예수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습니까? 

 

죄를 발견하지 못했음을 자신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23절)

 

그러나 빌라도는 자신의 직위와,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법도 원칙도 버린 역사 앞에 불행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역사의식이 없이 불행한 선택을 한 지도자입니다.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23절)

 

빌라도의 판결은 하나님이 없는 교만이었습니다.

 

오만불손한 판단으로 법과 정의, 역사의식보다는, 민심을 두려워하는 이 판결로 끝인 줄 알았던 사건입니다.

 

아벨의 죽은 핏 소리가 하늘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창4:10)

 

힘 있는 자의 권세가 영원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자리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음지도 양지되고, 양지도 음지 되는 날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애굽, 바벨론, 메데파사, 로마, 같은 강대국들이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배교하고, 우상을 섬기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겠다는 말씀을 두려워해야 합니다.(마24:2, 막13:2, 눅21:6))

 

정의와 공평 속에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인은 선택의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1) 하나님 편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의 기쁨을 구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고 했습니다. (갈1:10)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선택의 기준이 분명했습니다. 

 

자신의 손익을 계산하기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선택의 기준을 삼아야 합니다.

 

신앙 속에서 있는 많은 일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초개같이 버리고 골고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을 먼저 생각하고, 선택의 기준을 삼을 때, 결과가 좋아지게 됩니다. 

 

(2) 또한, 더불어 함께 잘 사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나만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피해를 주고, 피눈물 나게 만든다면, 그 선택은 잘못된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동성애 같은 범죄행위는 반사회적인 행위로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만약에 돈을 벌기 위해서 마약을 팔아 사람을 병들게 한다든지, 성매매를 한다면 잘못된 선택입니다. 

 

나 하나를 위해서 사회를 병들게 하고,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면, 소유나 권력은 축복이 아닙니다. 

 

새벽예배 다녀오는 길에 남의 호박 따 놓고, 일용할 양식 주셨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분명히 도둑 (법적 용어로 절도)입니다.

 

미국의 정치계 유명한 케네디 가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불행이 가문에 일어났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집안은 양조업을 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답니다. 

 

그러나 미국 국민의 가정을 수없이 파괴시켰고, 알콜 중독자를 양산했습니다. 

 

케네디는 대통령 재임 중에

(1) 학교에서 성경 가르치는 것을 중단시켰습니다.

 

(2) 십자가를 떼어 버렸습니다. 

   종교행위를 중단 시키고 난 이후, 미국 청소년들의 마약과 범죄는  급속도로 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가문에는 끊임없는 비극,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1) 케네디 대통령은 39세의 나이로 암살당했습니다. 

 

(2) 그의 삼촌 케네디가 46세로 암살당했습니다, 

 

(3) 맏형 케네디는 비행기 추락으로 29세에 전사하였습니다. 

 

여기서 케네디 가문의 불행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동생, 막내동생, 존 F케네디 2세마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함으로 케네디가의 대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2012년 캐네디 며느리가 뉴욕자택에서 자살했고,

 

2020년 4월 케네디의 손녀 메킨이 아들과 함께 카누를 타다가 사망.

 

케네디가의 비극이라 정말 끔찍합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엄청난 불운입니다.

 

그의 아버지의 고백이, 우리 가문은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고 했답니다. 

 

많은 가정을 술로 파괴시켰고, 수많은 알콜 중독으로 페인을 만들었습니다. 그 벌을 받고 있다고 고백을 했답니다.  

 

무엇을 하든지 원칙과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선택의 기준이 불분명하면 방향을 잃게 되고, 표류하며 가치관이 무너지게 됩니다. 

 

빌라도는 기준과 원칙을 버린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 가장 불행한 이름으로 오늘도 성도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원칙과 기준이 분명한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3, 빌라도는 양심을 버린 불행한 선택을 했습니다.

 

1)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한 자입니다.(24절) 

 

군중들을 두려워하여 손을 씻으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피 값에 대하여, 자기는 책임이 없다고 떠넘기는 비열하고 비양심적인 지도자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군중들이 십자가에 죽이라고 외칠지라도 아닙니다, NO, NO, 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예수를 죽인 죄에 책임이 없다고 하며 손을 씻고  있었습니다. 

 

손을 씻는다고 죄가 지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2) 빌라도는 자기 양심을 속인자입니다.

 

양심을 속이면서 무슨 평안이 있겠습니까?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양심은 인간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양심은 선악을 알게 해 주며, 하나님을 찾아가는 나침판과 같습니다. 

 

양심을 따라 살면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양심이란? 

‘인간의 내면 속에 존재하는 신의 목소리’ 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신이주신 목소리, 즉 ‘예수는 아무 죄가 없다.’ 라는 양심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외면한 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재판한 이후, 총독의 자리에서 파면되어 멀리 유배를 갔다고 합니다.. 

 

말년에는 정신에 이상이 생겨 대야에 물을 떠놓고 늘 손을 씻으며 “내 손에 왠 피가 이렇게 묻었느냐?” 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양심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선택에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입니까, 바나바 입니까?

 

예수를 선택하면 찬국 백성이 되지만 바나바를 선택하면 지옥입니다.

 

이번 주 2021년 17일부터 사순절 기간 시작입니다.

 

사순절 특별새벽기도를 시작하려 합니다. 

 

코로나로 성도들의 삶이 힘들어 졌고, 직장이 잃었습니다.

 

젊은이들이 3포, 5포 하잖아요? 

 

다음세대들이 다른 세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차세대들 신앙의 뿌리가 다 썩었습니다.

 

교회들도 엄청 힘겨워 합니다.

 

임대 개척교회들이 임대료 때문에 문 닫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영성마저도 깨져서 코로나를 하나님보다 더 무서워합니다.

 

국가가 공산주의로 물 들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패쇠되고, 십자가가 내동이 쳐 질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거룩한 기간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물과 피를 쏟으시는 주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 특별새벽기도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에게 기적을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십자가에 일곱 번째 외침속에 마지막 “다 이루었다”는 외침이 모든 문제 질병과 비전도 “다 이루었다” 하시는 음성으로 들려지길 바랍니다.

 

이번 특별새벽기간동안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시길 바랍니다.

 

가룟유다는 물질의 욕심으로 스승을 판 죄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마24:24)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마6:24)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쉬운 길이 아닌 바른길을 가야 합니다.

 

편한 길 보다는, 옳은 길 진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넓은 길이 아닌, 주님이 가신 길, 가시밭 좁은 길을 걷는 것입니다.

 

양탄자가 아닌,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로 가는 길입니다.

 

바울과 같이 십자가 밖에 자랑할 것이 없는 순교의 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가는 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매를 맞고 고난의 길을 가면서도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라고 당당히 고백했습니다.

 

이런 고난을 그리스도의 흔적이라고 영광스럽게 자랑했습니다.

 

바라바와 예수님,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나바는 출세같이 보여 졌을지 모르나, 멸망의 길입니다.

 

작은 이익을 위해, 빌라도와 같이 정의를 버리고, 양심을 버리고 선택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해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신 주님을 바라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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