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마14:22-32
제 목: 풍랑을 두려워 마세요.
제자들이 그가 바다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말라.(마14:26~27) And when the disciples saw him walking on the sea, they were troubled, saying, it is spirit, and they cried out for fear But straightway Jesus spake unto, saying Be of good cheer, it is l; be not afraid (Matthew 14:17)
바람은 쉬지 않고 불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크든 작든 언제나 풍랑이 찾아옵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사공이 바람 한 점 없는 날을 기다린 다면 평생을 항해하지 못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풍랑이나 천재지변이 피해가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다니면 모든 풍랑이 피해 가고, 모든 우환 질고가 피해 다니고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특별 은총 가운데 그런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만 일반적 은총을 피해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늘 다니던 갈릴리 바다에도 예상치 못한 풍랑이 일어났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크고 작은 풍랑은 언제라도 일어날수있습니다
환경에만 풍랑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도 풍랑이 있고, 정신세계에도 있고, 영적세계에도 있습니다.
보이는 풍랑도 있고, 보이지 않는 풍랑도 있습니다.
사실 인생을 사는 동안에 풍랑이 문제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평안은 폭풍 없는 평안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누리는 평안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선지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난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선지자 요나가 사마리아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을 가다가 바다 한 가운데 풍랑을 만나는데 이것은 불순종이 원인이었습니다.
반면에 오늘 말씀은 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만난 사건입니다.
이 말씀 바로 전에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예수님의 소문이 온 이스라엘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고저 했습니다.
제자들 생각도 다르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좋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을 은근히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해서 풍랑을 만났던 불순종해서 만났던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풍랑을 통해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십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풍랑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시고 무리를 떠나 산에 오르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풍랑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롬8:34)
이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항상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
예수님은 우리의 형편과 상황을 너무 잘 아십니다.
그러기에 풍랑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찾아오셨습니다.
산에서 기도하고 내려 오셔서, 바다 위를 걸어 풍랑으로 고통 받는 제자들을 구하러 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주제입니다.
성경은 죄와 죽음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자식이 없어 근심과 슬픔에 잠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하늘의 별을 가르치며 네 자손이 이와 같을 것 이라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어려운 문제를 질병을 가지고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찾아가셔서 해결해 주시길 축복합니다.
또 예수님은 풍랑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십니다.
우리에게 휘몰아치는 풍랑을 통해 훈련과 연단으로 신앙을 성장시켜 주십니다.
어느 화가가 그림을 그렸는데, 풍랑 속에서 위험에 처해 있는 배를 그렸습니다.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항해하다가 배가 풍랑을 만나 침몰직전에 있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그 안에 탄 승객들이 다 웃음을 잃지않고 행복이 충만한 찬양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도대체 배가 침몰하는데 어떻게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겠습니까?
자세히 보니 그림 속에“키를 잡고 항해하는 선장이 바로 주님이셨기 때문에, 풍랑 속에서 배가 기울어져도 사람들은 불안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키를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에 인생 항로에서도 주님을 선장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 어떠한 풍랑 속에서도 평안과 행복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엄마와 함께 있어야 안전하듯 성도는 주님과 함께 있어야 평안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말씀에 주님은 육지에 계시고, 자기들 끼리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풍랑이 심해지니 집 더미 만한 파도에 제자들은 불안이 밀려왔습니다.
칠흑 같은 밤에 침몰직전의 배는 두려움의 공포가 휩싸였습니다.
풍랑을 만나 떨고 있을 때, 희미한 물체가 보였다 없어졌다 를 반복하니 유령인가 더 무서웠습니다.
자세히 보니 유령이 아닌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기쁘고 이제는 살았구나!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께서“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7절)
베드로는 너무 기뻐서“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주님께서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만 바라보고 거침없이 물위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런데 30절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주님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베드로를 건지시며,‘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면서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습니다.
(31절)
예수님은 믿음 없는 자라고 하지 않고, 믿음이 적은자라고 하셨습니다.
바람이 불든 태풍이 일든 주님만 바라보고 가면 되는데 바람을 보았을때 빠졌다고 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깨닫는 것은 풍랑이 문제가 아닙니다.
바람은 언제라도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믿음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환경에 있든지, 어떤 모습이든지 주님과 함께 계시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임마누엘 하시면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풍랑을 만날 때도 문제가 안 됩니다.
그 사납던 풍랑이 예수님이 배에 타시니 잔잔해졌습니다.(32절)
제자들이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힘들어 하고 불안해 하십니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1.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없는 환경이 문제입니다. (22-24절)
1) 주님과 함께 있지 않은 시간에 풍랑을 만났습니다(24절)
주님은 육지에 계셨고, 제자들 끼리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풍랑을만났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이 떨어져 있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시간에, 예수님이 없는 장소에서 풍랑을 만날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풍랑은 언제라도 일어납니다.
언제나 주님과 떨어져 있는 환경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항상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약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하나님도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하셨습니다.(시73:28)
우리는 언제 어느 때 풍랑이 불어올지 모르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예상치 못했던 큰 풍랑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럼 미리 대비하고 준비했겠지요?
코로나19 같은 이런 고통이 전 세계에 올 줄 누가 알았습니까?
교회는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너희도 거룩하라. (레11:44~45)
주님은 거룩한 분이기에, 거룩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조차 거룩이란 단어가 낯설고, 거룩이란 단어가 자꾸 메말라 가고 있잖습니까?
그러나 거룩속에 함께 주님께서 임마누엘하시면 두려울 것 없습니다.
천재지변도 무서워 할 이유 없고,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안심입니다. 평안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거룩하신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고난을 당하고 있을때 찾아 오셨습니다.
2) 주님이 찾아오시는 두 가지 방법입니다. (25-27절)
하나는, 주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풍랑에 시달리며 고난당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갈릴리 바다에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25절)
주님은 병든 자를 찾아 오셨고, 울고 있는 마리아를 찾아 오셨습니다.
빈 그물만 끌어올리고 있는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불안해 떨고 있는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셨습니다.
제사를 실패한 가인에게도 찾아오셔서 네가 분노함은 어찜이냐.? 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내가 먼저 찾아간 것이 아니라, 주님은 항상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충성할 때도 찾아오시고, 잘못 살았을 때도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에도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롬5:8)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여러분! 왜 찾아오십니까?
위로해 주시려고, 고쳐 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영원한 천국백성 삼으려고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할 일은 찾아오신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숨지 말아야 합니다.
찾아오신 주님을 향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용서해주옵소서,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만나는 길이요. 주님과 교제하는 방법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주님은 밤 4경에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25절)
유대인 시간으로 밤 4경은, 새벽3-6시를 말합니다.
(1) 아직 먼동이 터오지 않은 캄캄한 밤입니다.
(2)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고난을 당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3) 가장 힘들고 지쳐 불안에 떨고 있을 때였습니다.
(4) 이럴 때 주님은 제자들을 홀로두지 않으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도 지치고 힘들고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주님이 함께 하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은 풍랑을 타고서라도 찾아오십니다.
너무 힘든 삶이지만, 꿈속에서 늘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두 발자욱을 보았답니다.
그런데 정말 너무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 뒤돌아보니 발 자욱이 하나밖에 없었답니다. 울면서 주님께 물었답니다.
나와 늘 함께 있을 때 두 발자국이었는데, 내가 가장 힘들고 어렵고 지쳐 있을 때, 왜 나를 버렸습니까?
주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주님 말씀이“네가 너무 지쳐 있기에 너를 업고 걸어갔단다.
한 발자욱은 너의 발자욱이 아니라, 너를 업고 간 내 발자국 이라고 하셨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고 지칠 때 주님은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있을 때,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께 부르짖으면 해결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항상 주님과 동행하시길 축복합니다.
2. 풍랑을 만날 때 바람을 보면 빠집니다. (30절)
1) 주님께 시선을 집중하세요.
베드로는 주님께 향하던 시선이 바람을 보는 순간 두려움이 찾아왔고, 순간 믿음을 잃고 말았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 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주님께로 시선을 집중해야 합니다.
용인 민속촌에서 외줄 타는 문화재 선생께서 줄을 타는데 무섭지 않느냐고 물으니 항상 떨리지만 위를 보고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환경에 있든지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가면 됩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곤경에 처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하늘 문은 열려있습니다.
바람을 보면 빠집니다. 환경을 보면 그 환경에 동화되어 버립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히12;2)
바라보는 것을 통해 생각이 지배되고, 생각은 마음을 지배하고, 마음은 행동을 지배합니다. 바라봄이 중요합니다.
바람은 언제나 불어옵니다.
그러나 어떤 바람과 풍랑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라본다고 하는 것이 우리인생의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라보면서 인생은 닮아가게 되고 행동을 만들어 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송을 부르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섬기는 삶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2) 신앙도 주님을 바라볼 때 바람을 이 길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희랍사람들은 인간을‘안드로 포스’라고 했습니다.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 고 했습니다.(골3:2)
위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하세요. 하나님을 바라볼 때 평안을 얻고, 지혜를 얻고, 풍랑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게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파도를 보고 두려워 할 때, 그리스도인은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환경인데 그 속에서 지혜와 안식을 얻습니다. 평안을 얻습니다.
베드로가 주님만 똑바로 바라보고 걸어갔다면 파도가 문제 아닙니다.
파도 위를 걸어갔을 것입니다. 바람을 보았기 때문에 빠졌습니다.
여러분은 시선을 어디에 두고 사십니까? 얼마나 어렵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지금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바람을 바라봅니까? 주님을 바라봅니까?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목회하면서 환경과 현실만 보면 정신병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가정이 애급에 갔을 때 고센 땅을 주셨습니다.
엘리야에게 도단 성을 도피성으로 주셨습니다.
불말과 불 병거로 하나님의 천군천사들로 지금도 지켜주십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어주듯이 주날개 아래 평안한 안식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파도를 이깁니다.
성령을 통해, 세상 이길 힘을 얻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 31)
여기에‘앙망하는 자’는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주를 바라보는 사람은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고, 어떤 환경에도 곤비치 않고,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할렐루야!
위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이라크 전투 때 제퍼 패튼이란 중령이 전투기 편대를 이끌고 이라크 국경을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제트기가 미사일 레이더망에 걸렸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몸부림치듯 제트기를 조작해서 레이더망을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순간 너무 긴장하다가 그만 귓속에 달팽이관에 이상에 생겨 평형감각을 잃었습니다.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자신은 제트기가 상승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계기판을 보니까 땅을 향해 60도로 곤두박질을 치면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바깥은 칠 흙 같이 어두웠습니다.
패튼 중령은 제트기가 상승하고 있으니 기수를 더 올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계기판은 정반대였습니다.
이때에 자신의 생각을 신뢰할 것이냐? 계기판을 더 신뢰할 것이냐를 선택을 하지 않으면 죽음이 오는 순간입니다.
패튼 중령은 자기의 경험 지식과 생각을 다 내려놓고 정확한 계기판을 보았답니다. 그리고 제트기를 올렸습니다.
700미터 고지를 그대로 추락하는 순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환경과 조건을 넘어 하나님께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생각과 정 반대 라 할지라도, 계기판을 선택한 조종사처럼, 내 생각 내 방법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계기판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앙은 하나님 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3, 주님은 신앙의 본질이 믿음과 직결되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31-32절)
1) 믿음이 적은 게 문제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주제는 풍랑이 아닙니다. 풍랑은 언제나 불어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31절)
믿음이 없는 자라고 하지 않고, 적은 자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믿음이 없는 게 아니라, 적은 자라고 했습니다.
환경 조건에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문제는 적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의 임계점을 넘어서야 합니다.
물은 100도에서 끓습니다.
물이 끊기 시작하는 순간을 임계점이라고 합니다.
기도의 임계점, 충성봉사의 임계점을 넘어서야 역사가 시작됩니다.
여러분들도 믿음이 없는 게 아니라 믿음이 적은 게 문제입니다.
모두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믿음의 성도되시길 축복합니다.
(1) 믿음이 작다는 말은 믿음이 가볍다는 말입니다.
가벼우니까 잘 흔들립니다. 기분에 흔들리고, 감정에 흔들리고, 환경에 흔들립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잘 흔들립니까?
임계점을 넘어 서세요
주님은 오늘도 큰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백부장을 향해 큰 믿음이라고 하셨고, 가나안 여인을 향해 네 믿음이크도다. 라고 칭찬 하시며 네 소원대로 되라고 하셨습니다.
적은 믿음이 큰 믿음되시길 바랍니다.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동하라. 믿음대로 됩니다.
2) 또한, 주님과 한배를 타야 안전합니다.
“주님과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더라.”(32절)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 모든 바람이 그쳤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자리. 이곳이 평안한 자리요. 안전한 자리요.
축복의 자리요. 행복한 자리입니다.
지금 온 세상이 코로나로 요동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큰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신앙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