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행16:16-34.
제 목 : 매인 것이 다 벗어집니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 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16:26) And suddenly there was a great earthquake, so that foundations of the prison were shaken : and immediately all the doors were opened, and every one’s bands loosed(Acts16:26)
요즘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중독이랍니다.
도박, 술, 마약, 게임, 섹스, 스포츠, 등 이런 중독에 빠진 사람이 900여만 명이 넘는 답니다.
이런 중독에 빠지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인생의 목적도, 방향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1) 안식이 없습니다. (2) 목적을 잃고 방황을 합니다..
(3) 쾌락을 즐기면서도 평안이 없습니다.
(4) 소유가 있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만족함이 없을 때, 불안, 두려움, 공허,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쉽게 빠지는 것이 중독입니다.
특히, 자녀나 어른들도 온 종일 스마트폰 중독이 되어있습니다.
요즘 자녀들이 자기방에 들어가면 컴퓨터에 빠져 꼼짝도 안 한답니다.
혼자의 공간에 갇혀 가족 간의 대화도 단절되어 있답니다.
청소년들은 게임중독에 빠지고, 엄마들은 쇼핑중독에 빠지고, 아빠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알콜 중독에 빠졌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마약에 빠지고, 어떤이들은 도박이나, 성 중독에 빠져 있습니다. 혹시 나도 어떤 것에 중독되어 있는가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다 보니, 육신에 문제가 생기고, 가정의 문제가 생기고, 인생에 문제가 생기고 영적인 문제가 끊임없이 생깁니다.
성경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마치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늘 삶의 만족이 없이 불안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에 붙잡혀 안식을 얻어 보려고 방황을 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붙잡혀서 삶의 목적을 잃고 살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어느 날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는 장소로 가다가 귀신에게 붙잡혀 점을 치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이 여자 속에 있는 귀신은, 과거를 알아맞히며 미래의 운명을 점치고 있었습니다.
귀신이 그 여자 속에서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장난으로라도 운명철학원이나 점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귀신에게 속는 일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니, 이 여자가 제 정신이 들었고 점 꿰가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귀신들린 여자를 통해서 돈 벌던 주인이 돈벌이가 되지 않자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여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원망하지 않고 옥중에서도 오히려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이들은 완전히 예수께 붙잡힌 사람들입니다.
옥중에 갇혀서 바울과 실라가 찬송하고 기도하던 시간에 옥문이 열렸고, 쇠사슬이 풀리고, 옥토가 움직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보고 놀란 간수가,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처벌 받을 것이 두려워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소리치면서 죽지마라. 우리가 다 지금 여기 있으니 안심하라고 하니, 간수는 놀랍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했을 것입니다.
자살은 어떤 이유에서는 하면 안 되는 죄악입니다.
우리민족이 부끄러운 것 중 하나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등입니다.
하루 평균 37.5명, 1년에 13,670명, 40분에 1명꼴로 자살합니다.
가족들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죽으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
내 생명의 주인은 본인도 부모님도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자살하면 바로 지옥직행입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 가지고 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수는 바울 앞에 엎드려 이렇게 고백합니다.
벌벌 떨면서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바울은“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31절) 이것이 이방인 구원역사의 시작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붙잡혀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 귀신에게 붙잡힌 자의 모습입니다.(16-18절)
1) 인생의 가치를 상실했습니다.(16절)
하나님께 붙잡혀 살아야 할 인생이, 귀신에게 붙잡혀 정체성을 상실하고 제멋대로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귀신이 이끄는 대로 살아갑니다.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악영에 이끌려 시키는 대로 합니다
내 인생이 파멸되는지 망가지는지, 분별하지 못하고, 귀신에게 이끌려 다닙니다.
눅8:27절 에는 귀신들린 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1) 오래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자기 관리를 상실한 것입니다.
(2) 집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이미 안식을 상실해 무질서하고 절제가 안 되는 삶입니다.
(3) 무덤가에 거처를 정했습니다.
무덤은 생명이 없는 곳입니다. 송장이 있는 곳, 부패한 곳입니다.
귀신에게 붙잡혀 가치를 상실한 자의 모습입니다.
귀신의 속성이 그대로 나타난 모습입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귀신에게 붙잡힌 자의 모습처럼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자기의 가치관이나 정체성도 잃고 살아갑니다.
요즘 아이들이나 청소년, 어른들 할 것 없이 중독에 빠져 있습니다.
게임중독, 섹스(n번방)중독, 스마트폰, 도박, 스포츠 알콜중독 등으로 자기를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빠져 있습니다.
중독에 빠지면 인생의 목적도 정체성, 방향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냥 폭력적이고 참지 못하도록 흥분합니다.
윗 층 주민의 조금만 소음도 못 참고, 이해를 안 합니다. 싸웁니다.
조금만 손해 보는 것 같으면 보복부터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번 실수로 평생을 후회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귀신에게 붙잡힌 자가 어떻게 제정신을 찾았나요?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령할 때 귀신이 즉시 나갔습니다.
예수이름이 살아있을 때 악령에 묶임을 받습니다.
제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회복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능력입니다.
(2) 예수의 이름 속에 권세가 있습니다.
(3) 예수의 이름이 구원의 길입니다.
(4) 예수의 이름이 인생의 해답입니다.
(5) 예수의 이름 속에 참 평안이 있습니다.
(6) 예수의 이름 속에 소망이 있고, 꿈이 있고 회복이 있습니다.
(7) 귀신들은 예수의 이름만 무서워합니다.
목사가 무섭고 여러분이 무서워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예수이름이 무섭고, 성령이 무서워 떠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붙잡혀 살고 있습니까?
예수께 붙잡혀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 붙잡히면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세요.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없습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주관하고 계십니다.
세포하나까지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주관하십니다.
인간의 생노병사 하나님 소관이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어디에서 와서,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 제정신이 돌아옵니다.
예수님만 계시면 됩니다.
예수이름 속엔 하나님의 모든 것이 숨겨져 있는 비밀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요14:6)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편이면 다 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들린 자가 제 정신으로 회복되었듯이, 예수님께 붙잡힌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2, 또 하나는 돈에만 붙잡힌 자의 모습입니다.(19절)
1) 물질은 악도 선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돈이 누구에게 들려 있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귀신들린 자를 이용해 돈벌이 하는 주인의 모습을 보세요.
내가 데리고 있던 종이 귀신이 떠나가서 제정신을 찾았다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함께 축하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 주인은 돈벌이가 안 된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분노하며, 귀신을 쫓아준 바울과 실라를 모함해서 억울한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된 물질 만능주의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물질자체는 악도 선도 아닙니다. 어떻게 소유했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악이 되기도 하고 선이 되기도 합니다.
돈의 노예가 되면 양심과 인격의 제어 장치가 작동을 하지 않습니다.
독 중에 가장 무서운 독이 돈독이랍니다.
돈독이 오르면 뵈는 게 없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돈독에 걸리면, 자기 상실로 정체성을 잃고, 눈에 보이는 게 없답니다.
자식이 부모를 돈 때문에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아내가 남편을 돈 때문에 죽입니다.
아내가 갑자기 큰 보험을 많이 들면 생각해 보아야 한 답니다.
솔로몬의 기도를 통해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를 보세요.
하나님이여 내게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릅니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 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라. (잠30:8-9)
얼마나 솔직하고 진실한 기도입니까?
내 인격, 내 신앙이 감당할 만큼, 그릇 만큼이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는 돈이 없었더라면 신앙이 망가지지 않고, 높은 자리가 아니었더라면 인생이 무너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좋은 분들이 돈 때문에 교만해 졌습니다.
물질관계의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물질을 바다의 배와 물의 관계로 생각해 봤습니다.
배는 물이 있어야 움직입니다. 그러나 배안에 물이 들어가면 침몰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물질은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물질이 많이 있어야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소유가 많은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그 소유가 양심과, 인격과, 신앙을 지배하는 시간부터 침몰하는 배와 같이 모든 것을 파괴시킵니다.
유산 더 받으려고 혈육이 다투는 꼴사나운 모습도 많이 봅니다.
진정한 축복은 억만금이 주어져도 신앙과 인격이 흔들리지 않을 때, 그 소유가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돈에만 붙잡혀 인간의 가치를 잃은 주인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물질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관리할 줄 아는 청지기의 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3, 오직 예수께 붙잡힌 바울과 실라를 보세요.(25-26절)
1),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있습니다.(25절)
예수께 완전히 붙잡힌 사람은 사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느 환경에 있든지 찬송과 기도가 우선순위가 되었습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감사했고, 쇠사슬에 묶여서도 찬송과 기도를 했습니다.
여러분도 찬송이 나올만한 기분이 아닐지라도, 기도할 만큼 좋은 환경이 아닐지라도 바울과 실라처럼, 억지로라도 찬송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과 기도가 만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찬송과 기도가 만나 예배가 되어 지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기도의 능력을 잘 믿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은 경험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보다 중요한 것이 없음을 절실하게 느껴야 합니다.
기도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살다보면 힘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삶이 지치고 힘겨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 때가 하나님께서 시작할 때 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긴장하고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고 하셨습니다.(빌4:6)
바울과 실라가 처한 환경이 기도할 만큼 편안한 환경이 아닙니다.
찬송이 할 만큼 기분 좋은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도 찬송과 기도가 만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예배드릴 환경이 아닐지라도 기도와 찬송으로 예수께 붙잡히시길 바랍니다.
예수께 붙잡히면 삽니다. 됩니다.
사도행전 3장에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니 금과 은은 네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이름으로 걸으라. 할 때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다고 했습니다.
요즘 코로나19로 SNS를 통한 예배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지만 예배에 대한 갈급함이 더욱 심해졌다는 고백입니다.
예배를 마음껏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다시한번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찬송을 회복해야 하고,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요, 예배할 때 성령의 임재를 느낄 수 있으며. 성령 충만을 경험할 수 있는 때입니다.
코로나로 2020년 전반기를 억울하게 다 빼앗겼습니다.
앞으로도 언제 끝날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며, 코로나 끝날 때를 기다린다고 하지만, 영적인 침체 뿐 아니라 거룩한 믿음의 습관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건강이 약하거나 연세가 있는 분들은 당연히 그렇게 하도록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도 공 예배가 무너지고, 거룩한 습관이 무너지고, 영적인 무질서가 생기면 마귀가 거침없이 틈을 타고 공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귀들을 대적하고 싸워야 합니다.(약4:7)
마귀는 하나님의 적이요 우리의 적입니다.
전쟁 중에도 예배를 드렸는데 코로나를 핑계로 사상 초유의 교회 문이 닫혔습니다. 그러는 순간 거룩한 습관들이 다 무너집니다.
굉장히 무서운 일입니다.
교회가 문이 닫혔고 기도모임이 사라졌습니다.
영성이 무너졌습니다. 큰일입니다.
코로나로 많은 교회들이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WCC 다원종교 동성애 차별금지 공수처법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깨어서 기름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천사장의 나팔을 울리며 신랑 예수 곧 재림 하시는 날에, 새마포 입고 신랑 맞을 기름준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기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역사하십니다.
2) 기도하던 밤에 일어난 기적을 보세요.(26절)
(1) 옥 터가 움직였습니다.
기도하던 밤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움직일 수 없는 옥 터를 움직였습니다.
우리는 못하지만 하나님은 하십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시면 움직입니다.
(2) 옥 문이 열렸습니다.
감옥 문은 밖에서 빗장으로 잠근 철문입니다.
안에서는 도저히 열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이 찬송하고 기도하던 시간에 활짝 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열어주시면 열립니다.
여러분의 앞길도 주님이 열어 주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셔야 육안, 지안, 영안이 열립니다.
(3) 묶인 사슬이 벗어 졌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장애물들이 묶일 때도 있습니다. (질병. 사업. 자녀)
이런 장애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가 기도와 찬송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께 해답을 찾으세요.
하나님께서 사업장도, 인생길도 풀어주시길 축복합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기적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문이 열렸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있으니, 간수가 놀랐습니다. 또 고맙기도 했을 것입니다.
간수는 바울 앞에 엎드려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들처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바울과 실라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31절)
예배의 제단이 무너지지 않게 하세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하나님 보다 무섭지 않아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내 인생이 끊난 다 할지라도 예배의 단은 끄지 마세요. 너희 몸으로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롬12:2)
엘리야는 무너진 단을 수축하고 부르짖을 때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왕상18:38)
간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속에 있는 결핍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채워 질수 있습니다.
공허함도 예수님만 채울 수가 있습니다.
불속에 던져질지라도, 사자굴속에 빠졌을지라도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보호해 주십니다.
무슨 중독에 빠져있든 하나님을 만나면 벗어날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예수 만나는 길을 안내 잘 합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나 오직 나의 신으로 된다고 했습니다.(슥4:6)
무서운 악습관에 빠져 있는 분이 있습니까?
예수께 붙잡히면 해결됩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 앞으로 나올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만나 주시고 모든 무거운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읽으신 모든 분들에게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