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팔이란 평범한 돌같이 보이는 보석이 있습니다. 소위 ‘교감의 보석’이라 불리워집니다. 따뜻한 손의 접촉이 있으면 자신의 멋진 색깔과 광채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따스하게 고요하게 불을 붙여 소리 없이 자신의 빛을 발합니다. 평범한 돌에 불과한 것 같았는데... 따뜻한 손에 쥐워지니... 아름답고 찬란한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또는 우리 앞에 이같이 별볼일 없는 평범한 돌처럼 보이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오팔보석처럼 멋진 색깔과 광채를 발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놀라운 일이 생길까요?
“그리스도의 법”으로 따뜻한 온기와 사랑을 채워 주면 됩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자신과 이웃이 작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보석이 되고 교회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1.형제자매를 비방하거나 판단치 마십시오
1)우리는 우리가 마치 훌륭한 신앙인인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 것도 되지 않았는데 마치 된 줄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고전 10:12). 스스로 속는 것이지요.
본문 3절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이처럼 교만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 남을 판단하고 비방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물론 남의 잘못이 명약관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것은 설령 그럴 지라도 비방하거나 정죄치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남의 허물이 명확하지 않음에도 추측과 짐작으로 정죄하고 비방해서는 안됨을 이미 전제함은 당연하고요). 사례) 아론과 미리암의 모세 비방 (민 12장)
우리 모두 결단코 형제자매 이웃을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않으시길 축원합니다.
(약 4:11-12) “...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2)우리 신앙인들은 남의 일을 살필 것이 아닙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을 지킬 것을 다른 사람에 대하여 적용하려고 하지 마셔야 합니다. 다만 각각 자기의 일만을 살피고 자신을 돌아 보아 각각 자기의 짐을 져야 합니다 (본문 4-5절). 5절에 ‘짐’load(적재량, 한 짐)으로 사용된 단어 <포르티온>은 한 사람이 질 수 있는 정도의 짐을 가리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자랑을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남에게 적용하지 말고 다만 자신에게만 적용시키시길 축원합니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지고 가시길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남을 공연히 살핌으로 남을 비방하거나 정죄치 않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죄악과 허물들이 보인다면,
2.온유한 마음을 품고 이웃을 대하시려 힘쓰십시오 (본문 1절). 사도 바울은 죄에 빠진 사람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로잡고'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의술 용어로서 골절된 뼈를 바로잡는 일을 가리킵니다. 곧 조정하고 수리한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죄에 빠진 자의 잘못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폭로하거나 무관심해서는 아니 되고 당사자를 권면하여 바로 서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감동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온유함이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고, 그 사람을 온전히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3.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려면, 서로 짐을 지고 함께 감당하십시오
본문 2절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짐'burden(운반하기 힘든 짐, 부담)은 헬라어 <바로스>로서 한 사람만으로는 운반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을 가리킵니다. ‘지라’carry는 일시적인 도움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관계성을 갖고 돕는 것입니다. 본 구절은 다른 그리스도인이 시험에 처했거나 인생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를 지속적으로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짐 없는 사람이 없고 혼자 짐을 처리할 만큼 충분한 힘과 지혜를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돕고 가르치며 서로를 권면하여야 합니다 (살전 5:14; 고전 12:25).
여기에서 바울은 사랑이 율법의 완성임을 재확인합니다. 이 구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의 법'은 단순히 제도화된 성문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는 것과 같은 행동으로도 부분적으로 성취될 수 있는 새 계명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즉 그것은 “사랑의 율법”입니다.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우리 모두 서로 상대방의 잘못과 허물을 덮어 주며, 상대방의 짐을 함께 져 주시길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성취하며 신앙생활하시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셨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짐load을 감당하심으로 다른 사람들의 짐burden을 짊어질 수 있으셨습니다. 바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히 5:7-9). 우리처럼 연약한 육신으로 오셨기에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고 죽음의 잔을 마심으로 감당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 2:18).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인류의 무거운 짐을 감당하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제는 온 인류를 보석화하시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인 짐인 포르티온과 함께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인 바로스를 잘 짊어지도록 하나님 우편에서 오늘도 간구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이미 예수님께서 감당하신 그리스도의 법, 진정한 사랑의 법, 새계명을 성취하기 위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1.이웃인 형제자매를 비방하거나 판단치 마십시오.
2.온유한 마음을 품고 이웃을 대하시려 힘쓰십시오
3.서로 무거운 부담의 짐을 지고 함께 감당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으로 따뜻한 온기와 사랑을 채워 주시어, 자신과 이웃이 함께 오팔보다 더욱 찬란하고 아름다운 보석이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