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본문은 요한복음에 소개된 일곱가지 표적 중의 하나인 베데스다 못가에 누워 있는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이름은 '집이라는 히브리어 '벧'과 '자비'의 의미인 헤세드'로 합치면 '자비의 집'입니다. 그런데 이 연못에는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가끔 천사가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려도 낫게 된다는 전설입니다. 그래서 그 연못 가에는 낫고자 하는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서 연못의 물이 동하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인 38년 중풍병자가 찾아온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았다는 내용이 오늘의 본문 줄거리입니다.
이처럼 ‘자비의 집'에서 낫기를 원하며 모여드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 만을 구하며 해결함 받기를 원하는 여러 문제들을 가지고 교회로 모이는 우리의 모습을 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자비의 집'에서 낫기를 원하며 모여드는 모든 사람들은 구원을 바라며 늘 기다림 가운데 있었으나 그 구원은 가장 먼저 들어가는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병 낫기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은 더 큰 상실감과 절망감에 쌓일 수 밖에 없는, 세상의 치열한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장소가 바로 '베데스다' '자비의 집'이라 이름하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리 이름이 '자비의 집'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자비의 집'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자비의 집’에 있는 38년된 병자가 말한 것처럼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즉,나를 도와서 낫게 해줄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즉,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우리가 당한 문제의 해결자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영적인 소경들이 찾아 옵니다. 영적인 절름발이,영적인 귀머거리, 영적으로 오랜 고질병자, 영적인 중풍병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고자 모여드는 교회는 '베데스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에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의 교제로 끝난다면,사람들과의 경쟁과 같은 세속의 논리로 치우친다면 때로는 세상에서 보다 더 큰 상실감과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갖고 있는 이러한 질병들은 결코 치유되며 회복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랜 신앙생활에 젖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며 38년된 중풍병자의 모습이 내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행여라도 아직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구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 논리의 잣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은 아닌지 돌아보며 오직 길과 진리가 되신 주님 만을 구하기를 원합니다. 마침내 나를 찾아오신 주님을 뵙고 우리의 모든 질병들이 고침을 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므로 진정한 ‘자비의 집’에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