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10)
For I am with thee, and no man shall
set on thee to hurt thee: for I have
people in this city.(Acts 18:10)]
신문에 보면 무속인들의 광고가
많이 나옵니다.
어이없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운명과 팔자를 알아보기 위해
유능한 정치인 사업가들이 등에다 부적을
붙이고 다니고 심지어 지성의 첨단을 걷는
교수들 중에도 점쟁이나 무당,
운명철학원을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현대처럼 과학문명이 발달한 시대에도
우리나라에 무당이 무려 60만 명이 넘고
점쟁이가 2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장난으로라도 운명철학관이나
운세, 점쟁이에게 인생의 운명을 묻지 마세요.
귀신에게 속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곳을 찾아다니는 것은
마음이 불안하고 안식이 없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풍요한 것 같은데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불안을 느끼면서 쫓기듯 방황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마치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처럼
늘 삶의 만족이 없고 방황을 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붙잡혀 안식을 얻으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물질에 붙잡혀 만족을 추구하고
어떤 이는 쾌락에 붙잡혀 만족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소유하고도 만족이 없고
평안이 없고 방황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2017년 자살을 1,2463명이 했답니다.
하루 34,15명 꼴입니다.
과거보다 훨씬 풍요한 삶을 사는데
자살은 갈수록 늘어갑니다.
원인은 만족이 없고 왠지 삶이 불안하고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오셔야만
채워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마음 중심을 지배할 때까지는
진정한 평안이나 만족이 없습니다.
본문은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말기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고린도 지방에
복음이 전파된 과정입니다.
바울이 말씀에 붙잡힌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로 죄인 중에 괴수라던
바울은 예수를 만난 이후
행복을 찾았고, 사는 목적이 분명했고,
인생의 길을 찾았고 답을 알고 살았습니다.
복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백하는 평안과 행복은
오직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했고(갈 2:20)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죽으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노라고 했습니다.(고전 2:2)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고 했습니다.(롬 14:8)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붙잡혀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1.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습니다.(5절)
바울이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신앙의 깊이는 말씀에 붙잡히는 것입니다.
말씀에 붙잡힌 바울은 사는 목적이 다르고
추구하는 행복이 다릅니다.
바라보는 시선이 다릅니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요,
말씀은 다림줄이 되는 기준입니다.
말씀은 우리 인생길을 비춰주는 등불과 같다고 했고(시 119:105)
살아있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히 4:12)
눅 24장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길에서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시는데
그들의 눈이 가리어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께 예수님 소식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예수라고 하시지 않고
성경을 풀어 주셨습니다.
이때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았고(눅 24:31)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않더냐?(32절)
고 고백을 했습니다.
제자들은 주의 말씀을 떠나 어디로 가겠느냐고 했고
(1) 말씀을 듣기 위해 수많은 군중들이 모였고
(2) 말씀을 통해 귀신이 떠나가고
(3) 질병이 치료되고 (4) 파도가 잔잔케 되고
(5) 인생의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
즉 그리스도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야란 뜻입니다.
구약에서는 3종류의 직분의 사람들이
기름 부음받은 자입니다.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1)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대제사장이요,
(2)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선지자요,
(3) 백성을 보호하고 치리하시는 만왕의 왕이란 뜻입니다.
바울이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할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미쳤습니다.
복음 안에 생명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승천하시면서 공중권세 잡은 악한 영들을 정복하시고,
지금 하나님 보좌에 우편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시며,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동행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믿고 은혜가 깊어질 때
첫 번째 은혜가 바로 평안이 옵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와 함께 있으면 평안한 것처럼
임마누엘의 주님을 깨닫고 성령의 임재와
내주내재의 성령충만을 경험하면 평안해 집니다.
초막이나 궁권이나 내주 예수 모신 곳이
천국임을 느낍니다.
예수님도 평안을 주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요 14:27)
예수 믿으면 평안을 얻습니다.
평안이 없는 은혜는 은혜가 아닙니다.
두 마리의 쥐를 실험해 보았답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먹이를 주면서
한 마리 쥐에게는 평안하게 음악을 들려주면서
길렀는데 6개월 후 쥐털이 윤이 나고
건강하게 잘 자라더랍니다.
또 한 마리 쥐는 먹이를 줄 때마다 막대기로
머리를 톡톡 때려서 스트레스를 줬더니
6개월 만에 쥐털이 다 부스러지면서
온 몸에 암세포가 확 퍼져 있더랍니다.
미물의 짐승도 삶이 평안하지 못할 때
암세포가 퍼진다고 하는데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일본의 '하루야마 시게로'라는 작가는 건강에 관심이 많아
30년 동안 건강에 관한 책을 쓰면서
건강의 6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6가지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피곤하지 않게 하라. 적절한 잠을 자라.
식욕을 절제하라. 화를 내지 말라.
두뇌를 계속적으로 사용하라.
적당한 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후에 이 사람은
'뇌내혁명'이란 책을 쓰면서
정말 인간에게 필요한 한 가지를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이 건강에 차지하는
비율을 55%로 보았습니다.
다른 것 아무리 잘해도 마음의 평안을 잃으면
건강이 무너지더랍니다.
그렇습니다.
평안의 본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평화가 있습니다.
성도의 사명은 평화의 왕 예수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를 증거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증인의 삶입니다.
2. 환상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은
두려워말고 전하라는 말씀입니다.(9절)
주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환란과 핍박의 현장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1) 지금 당신의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진로에 대한 두려움, 사업에 두려움,
건강의 두려움, 자녀의 앞날에 대한 두려움
이나 죽음 등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 현실과 환경을 바라보면
이런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환상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은
바울에게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은 어디에서 올까요?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압박감이 먼저 오고 불안이 오고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살아가는데
우리도 혼자라고 생각할 때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동행자가 있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환상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이 바울을 향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주님이 책임지신다는 약속입니다.
2) 그러면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어디서 오나요?(요1서 5:4)
오직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담대함과 용기를 줍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을 보세요.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사울 왕과 이스라엘 백성
모두 두려워서 누구도 그 앞에 나서지 못하고 떨고 있는데
다윗은 골리앗 앞에 싸우겠다고 나섰습니다.
싸움을 잘하기 때문이 아니고 신무기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승리하는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답을 아는 사람은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싸우리라”고 외쳤습니다.
다윗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싸우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수없이
골리앗 같은 환경에 부딪칠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다윗과 같이 환경을 넘어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세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파도를 잠잠케 하고,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전지전능하신 주님을 바라보세요.
그분이 여러분의 아버지이심을 믿으시면
아멘입니다.
하나님은 무기나 군사력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승리를 주셨습니다.(삼상 17:47)
지금 여러분의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환상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은
바울에게도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3. 해답은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10절)
어린 아이가 부모와 함께 있는데 두려워하나요?
저는 성경 가운데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 나올 때
가장 든든하고 평안함을 누립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환상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이 함께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놓아도
주님은 지키고 계셨습니다.(눅 10:18)
2) 주님이 함께 하실 때 나타난 역사들을 보세요.
(1) 주님 앞에 귀신이 항복을 했습니다.
70인의 전도대원들이 기뻐서 보고하길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
예수님의 말씀이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고 있었다(눅10:18-19)
고 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능력을
너희에게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놓고 주님은
항상 그들과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결코 여러분을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할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이 시대에도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붙잡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명예도, 직위도, 소유도, 젊음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처럼 예수께 붙잡혀 사세요.
예수께 붙잡힐 때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은 결코 여러분을 떠나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보장을 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