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2018
묵상말씀 : 눅 2:41-48
제목 : 착각하지 마세요
김경열 목사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
And when they saw Him, they were astonished:
and His mother said to Him “Son, why have
You treated us this way? Bchold, Your father and
I have been anxiously looking for You.”(Luke2:48)]
사람이 꿈을 품고 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꿈은 그 사람의 비전이요,
건물의 설계와 같습니다. 목표가 됩니다.
성경에 꿈이 있는 백성이 흥한다고 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소경이요, 벙어리요,
귀머거리로 살아간 사람입니다.
이런 3중고의 인생을 살면서도
항상 꿈을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헬렌 켈러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앞 못보는 맹인과 듣지 못하는 농인,
말 못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불쌍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녀는 “시력을 잃어 맹인이 되었거나,
청력을 잃어 농인이 된 사람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두 눈을 가지고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력을 가지고도
세상 것을 다 표현할 수 있는 입을 가지고도
꿈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어려서부터 꿈을 가지고 사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청소년들을 만나면 무엇보다
꿈을 물어보고 칭찬을 해줍니다.
어릴 때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면
큰 인물 되겠다고 하며 기뻐합니다.
그러나 커갈수록 꿈은 현실화 되어야 합니다.
50대가 넘은 사람에게 당신의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대통령이라고 하면 좀 달라집니다.
이상과 현실을 착각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착각은 현실과 다른 것을 말합니다.
한번은 청년들과 비전을 나누면서
각자의 꿈을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한 청년이 나는 빌게이츠 같은 재벌이 되는 게 꿈이랍니다.
전용기를 타고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들고
그 궁전에서 사랑하는 이와 휴가를 즐기는 것이랍니다.
지금은 무엇을 하느냐? 물었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꿈이 아니라
현실을 착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현실을 착각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신념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 자랑을 하면서 간증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방종을 자유라고 착각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술을 먹고 시끄럽게 너무 떠들어서
경찰관이 조용히 하라고 하니까
내 자유라고 경찰관에게 덤벼듭니다.
이것이 무슨 자유입니까? 이것은 방종입니다.
우리나라는 공권력이 너무 약합니다.
경찰관이 오히려 시민에게 멱살 잡히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요즘 강력 범죄자들을 '소시오 패스'라고 합니다.
'싸이코 패스'는 죄인 줄 깨닫지 못하고
무서운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러나 '소시오 패스'는 죄인 줄 알면서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말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유도 없이
흉기를 휘둘러 해치는 자가 이런 유형입니다.
자기가 하는 짓이 죄인 줄은 알지만
죄책감은 없습니다. 굉장히 무서운 착각입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의 부모들이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갔다 나사렛으로 돌아오는 하룻길을 오다가
살펴보니 예수가 없었습니다.
근심을 하면서 3일 길을 되돌아와서
예수님을 찾은 사건입니다.
하루 동안 잃어버린 예수를 다시 찾는데
3일이나 고생을 했습니다.
잃어버리기는 쉬워도 다시 회복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신앙도 내려가기는 쉬운데 다시 회복하기는 몇 배 어렵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를 잃어버렸나요?
원인이 있습니다.
1.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착각을 했습니다.(44절)
하룻길을 가면서도 주님이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착각을 했습니다.
왜 착각을 했을까요?
1) 착각은 주님께 마음이 집중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룻길을 가면서도 예수가 곁에 없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막연히 동행 중에 있는 줄 착각했습니다.
여러분도 신앙을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제주도에 가면 도깨비 도로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경사가 낮은 내리막길인데
영락없이 오르막길로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자동차 시동을 끄고 있으면 실제로는 내려가는데
꼭 올라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착각을 일으키는 소위 ‘착시현상’ 입니다.
때로는 신앙도 이런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도 안하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서도
영성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성경에 삼손이 나실인으로
남다른 힘을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을 방탕하여
들릴라의 무릎에서 잠이 들었다가
머리털을 깎이고 힘을 잃고 결국 나실인의 복을 빼앗기고
모든 힘은 떠나갔고 두 눈은 불 꼬챙이로
빼버렸습니다.(삿16:20-21)
그런데 삿 16:20 하반절에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직도 자기 몸에 힘이 있는 줄로 착각을 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착각을 하며 삼손처럼 힘도 잃고
눈도 어두우면서 하나님과 동행 중에 있거니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또한 착각은 무관심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관심이 집중됐다면
수시로 곁에 있는지 확인했을 것입니다.
동행 중에 있거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은
무관심의 모습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 합니다.
가정의 무관심, 이웃의 무관심,
내 조국에 대한 무관심은 무서운 것입니다.
전에 '38인의 목격자'란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파트 입구에서 여인이 강도에게 살해를 당했습니다.
경찰조사 결과 이 여인이 살해되어 죽기까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은
목격자들이 38명이나 되었답니다.
어떤 이는 베란다에서 듣고 어떤 이는 거실에서 듣고
어떤 이는 방에서 들었다고 진술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누구도 비명 소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을 기자가 38인의 목격자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주님도 이 시대가 이런 시대라고 탄식하셨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는 무감각하고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시대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주님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강도 만나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 곁을
제사장이 지나갔고 레위인도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세 번째 지나가던 사마리아 사람이 그것을 보고
주막으로 데려다가 상처를 싸매주고
주막에 비용까지 지불해줬습니다.
이 세 사람 중에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냐?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말로만 하지 말고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미국에 한 교회에 목사님이 청빙을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실천하는가를 보려고 그 목사님은
남루한 옷을 입고 주일날 예배드리러 가는 성도들에게
구걸을 했으나 누구하나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기대를 하며 목사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나타난 목사님은
바로 교회 앞에서 손을 내밀던 노숙자였습니다.
청빙받은 목사님은 그 모습 그대로 강단에 올라
오늘 겪은 이야기를 눈물로 설교할 때
온 성도들이 함께 눈물로 회개를 하였다고 합니다.
주님이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마 25장에 주님은 우편에 있는 자들을 향해
복 받을 자들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을 이렇게 대접한 적이 있느냐고 반문할 때
마 25:40에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지금 우리 눈에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여러분은 주님을 만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신앙도 예수님의 부모들처럼
동행 중에 있겠지하며 착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왜 예수님을 잃어버릴까요?
(돈 때문에, 신경 쓸 일 많아서 등등)
2. 착각의 결과를 보세요.(46절)
1) 3일 길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하룻길 잃은 예수님을 3일 만에 찾았습니다.
다시 찾기 위해서는 3배의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정신적인 고통을 당했습니다.
잃어버리기는 쉬워도
다시 찾기는 몇 배나 더 어려운 것입니다.
내려가기는 쉬운데 다시 올라가기는
3배가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무너지기는 쉬운데
다시 회복하기는 몇 배 어려운 것입니다.
죄를 짖기는 쉬워도 은혜를 회복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잠시 죄의 낙을 누린 것에
평생을 회개하면서 살았고 죄값으로 자식이
죽는 무서운 댓가도 혹독하게 치루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과 불신 가운데
그 대가는 11일이면 가나안을 들어 갈 수 있는 것을
40년 동안이나 같은 길을 맴돌았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하룻길을 잃어버리고
사흘 길을 찾아 헤매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2) 착각의 결과는 근심이 찾아 왔습니다.(48절)
① 신앙인에게 찾아오는 근심은 잘못 살았을 때 찾아옵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불안하고 두려워서 에덴동산에 숨었습니다.
가인은 동생을 죽이고 나서 근심과 불안에 떨면서
누군가 나를 만나는 사람이 나를 죽일 것만 같다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살지 않으면 근심이 많아집니다.
② 신앙인에게 찾아오는 근심은 주님과 멀어질 때
세상 근심이 찾아옵니다.(48하)
예수의 부모들은 예수를 잃어버리고 얼마나 근심이 많았는지
예수의 부모는 예수를 만난 후 고백이
48하에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주님과의 동행을 매일 점검해야 합니다.
주님보다 앞서가면 교만해지고
뒤에서면 떨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 늘 동행해야 합니다.
예수의 부모들처럼 동행 중에 있는 줄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인생을 착각하며
세상에 너무 취하여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술에 만취가 된 40대 남자가 병에 든 농약을
소주로 착각해 마시고 숨졌습니다.
친구와 술을 마신 뒤 만취된 상태에서 집에 돌아와
평소 베란다에 소주 박스와 함께 보관하던 제초제를
잘못 마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 취하면
분별없이 착각 속에서 살게 됩니다.
신앙을 확인하고 주님과 동행하시길
축복합니다.
평생감사
뉴욕영안교회 제공
(917-963-9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