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얕은 묵상 - 에스라 9장 6절

Caleb 0 2017.02.08 07:4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 I prayed, "O my God, I am utterly ashamed; I blush to lift up my face to you. For our sins are piled higher than our heads, and our guilt has reached to the heavens.”” (에스라 9: 6)

모세의 율법에 해박한 학자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와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기도의 한 구절이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언약하신대로 때가되매 이방나라 바사 왕 고레스까지 다스리시사 사로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려보내는 조서를 내리도록 하셨다.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가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재건하라며 모든 건축비용까지 바사국 국고에서 부담한다고 하였다. 50년간 잡혀 지내야 했던 포로에서 풀려나 1차, 2차, 3차, 4차에 걸쳐 순차적으로 잡혀간 민족이 이스라엘로 돌아왔는데 에스라가 인솔하여 돌아온 팀이 마지막 이었다. 돌아온 에스라 선지자는 그동안 이스라엘 지도자급들이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여부스, 암몬, 모압, 애굽,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의 딸들을 며느리로 맞이하여 피를 섞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혀서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기도를 하며 부르짖었다.

에스라는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라고 외치며 죄악으로 한없이 여호와께 실망을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쏟아주신 크신 사랑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린다. 에스라가 이렇게 전심으로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참 회개의 기도를 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들도 크게 통곡하며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에스라의 기도하는 주변에 모여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도자의 회개기도, 그를 따라 온 국민이 모여 각자 자기를 돌아보며 저지른 개인과 가문과 민족의 죄악을 토설하며 회개하고 지체치 않고 돌이키는 대 영적부흥을 경험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서 이것이 오늘날 4분 5열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큰 교훈으로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지금 우리나라에는 회개하는 지도자가 없다. 자기의 태만과 직무유기로 야기된 각종 부실에 대한 죄를 시인하고 책임지는 지도자가 없다. 공적이든 개인적이든 부정을 저질러 잡혀가면서도 일단은 범죄 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모면할 기회를 보자는 속셈이다. 국민 수백 명이 일시에 수장되어 죽는 재난이 일어나도 정부 요직의 모두가 자기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나라이다. 장관도 정당도 공무원도 위기 앞에서는 각자 빠져나갈 길을 모색 할뿐 나는 모르겠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말 그대로 한 몸 희생하는 지도자는 없다. 선거에서 표를 의식하는 입장에서는 온갖 약속을 다한다. 국민의 마음을 속이는 사탕발림의 공약을 눈앞에 내밀며 택하여 세워만 준다면 민족의 번영을 위하여 한몸 바치겠다고 말하지만 일단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권력의 묘미를 즐길 지언정 소소히 일어나는 재난에도 얼굴을 돌리는 행태를 보면서 국민은 배신감에 오늘도 탄식을 한다.

종교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교회 규모가 아담할 때는 사랑으로 목회를 하는 듯 한다. 그러다가 열심히 재촉하여 부흥을 외치며 전도현장으로 내 몰지만, 이 모두가 한사람의 큰 교회를 꿈꾸는 야망을 이루기 위한 재촉이요 동원인 경우가 많다. 주님의 지상 대명령은 명분으로 써먹는 슬로건일 뿐 일단 목적한 대형교회가 되면 담임 목회자는 일약 대기업 회장이 된다. 막대한 예산을 자기 멋대로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마음이 내키거나 잘만 보이면 선교지에든 시골 교회에든 군부대에든 어디나 자기 이름을 금박으로 크게 새겨 기초석을 박고 막대한 건축비를 일시불로 부담하여 예수님의 성호가 아니라 목사의 이름을 후대에 남기는 교회당이나 센터 건물을 우뚝 세워준다. 성전건축이라는 미명을 내세워 방만하고 화려한 교회당 건축을 하면서 불투명한 자금 집행으로 막대한 헌금이 사라져도 이에 대하여 아무도 회개하거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허비하여도 또 들어오는 헌금, 설교에서 조금만 축복과 연결하여 물질 헌금에 대하여 언급하면 앞 다투어 들어오는 것이 헌금이다. 미안해하거나 아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도가 헌금하였으면 그 다음은 그 물질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으니 이름 하여 자칭 제사장인 목사 마음대로 집행하여도 그 내역에 대하여 알려고 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누구나 책임져서 자기를 희생하는데는 인색하고, 권세를 누리는데는 담대하다. 흔히 위기 앞에서는 우선 살고보자는 비겁한 유혹에 쉬 넘어가 거짓말로 일관한다. 나에게도 그런 비겁함의 요소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를 찾아 하나하나 평소에 정리하여 없애고 위기의 때에 마땅히 담대히 행할 의연한 희생적 모습을 에스라에게서 배워서 내가 실제로 행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같은 혼돈의 상황에서 에스라 선지자를 대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하시는 진정한 회개의 표준을 발견한다. 말로만, 외양만, 보이기 위한 악어눈물의 회개가 아니라, 나와 공동체의 죄를 생각하면 기가 막혀 마음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어가며 두 손을 들고 울부짖지 않고는 배기길 수 없는 지도자가 그립다. “내가 죄인입니다. 내 탓입니다. 우리의 죄악이 이처럼 정수리에 미치고 하늘에 다았습니다.” 고 부르짖는 에스라처럼 기도하는 진정한 회개가 지도자들에게서, 또한 국민과 성도 각자에게서 일어나지 않는 한, 하나님으로부터의 회복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없을 것이라는 강한 생각이 내 머리를 덮는다. 주여 살려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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