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말씀 : 호세아 6:1-3
제목 : 여호와께 돌아가야 합니다
김경열 목사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Come, and let us retum unto the LORD:
for he hath torn, and he will heal us;
he hath smitten, and he will bind us up.(Hosea6:1)]
얼마 전, '명량'이란 영화가
관객 수 1700만 명을 돌파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생각하는 충신으로서
임진왜란 때 배 12척을 가지고 왜군 330척을
물리치는 지략과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가 순간 순간 고뇌하며 하는 말들은
관객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의 리더쉽이 관객을 감동시켰다는 평가입니다.
요즘같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시대에
이순신이 그 아들과 나누던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아버지는 싸워도 왜군에게 죽을 것이고, 이긴다고 해도 왕으로부터 버림을 받을텐데 왜 싸우려고 합니까? 하며
차라리 포기하라고 할 때, 이순신 장군이
"신은 충을 위해 산다. 충은 바로 백성이라.
나는 지금 백성을 위해 싸우고 있다."라고 말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DNA 속에
이런 지도자가 있다는 것이 자부심을 갖게 합니다.
난세에 충신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충신은 난국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나라뿐 아니라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 속에도
어려운 일을 당해 보면 진짜 충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도 애국심이 되살아나고 민족을 사랑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라도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 벌을 내리시고
믿음이 좋은 선지자나 왕이 나타나면
회복시키고 복 주시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본문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며 죄악으로 빠져갈 때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탄식하며
아파하시는 마음을 보여 줍니다.
호세아는 고멜의 음란하고 방탕한 행동에
몹시 분노하면서 버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다시 데려오라고 하시면서
네 마음의 괴로운 심정이 내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수없이 범죄 하였으나
버릴 수 없는 내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식이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버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나실인은 구별된 자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택한 선민이요, 하나님이 쓰시는 자를 말합니다.
나실인은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특별한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성도가 바로 나실인입니다.
나실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목사는 목사답게 살아야 하고, 장로는
장로답게, 집사는 집사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나실인의 삶입니다.
오늘 말씀은 나실인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를
3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1절)
1) 그러면 하나님은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돌아가자는 말은 '회복하자'라는 뜻입니다.
호세아 당시는 말할 수 없이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영적으로 예배가 무너졌고 도덕적으로 음행에 빠져
타락할대로 타락한 시대에 하나님은 호세아의
아내 고멜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아내 고멜이 집을 떠나 외도를 하고
임신을 하고 돌아오자 버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책망하시면서 다시 데려오라고 합니다.
나의 심정이 네 마음과 같다고 하시면서
고멜의 모습이 곧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용서해 주신다는 메시지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호 4:15에 북이스라엘이 행음한다 할지라도
유다야, 너만이라도 죄를 짖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고
북이스라엘은 반복된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권면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한다 할지라도
유다 족속인 너희만이라도 범죄치 말라.
즉, 세상이 다 타락한다 할지라도 너만이라도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타락한다 할지라도
너 혼자만이라도 신앙을 지키라.
유다 족속답게 살라.
유다 족속은 택한 선민이요, 나실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어떤 목사가 타락한다 할지라도
나만큼은 신앙을 지키리라.
어떤 장로 권사가 타락한다 할지라도
나 만큼은 믿음대로 살리라.
이것이 나실인의 삶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한다 할지라도
유다야, 너만큼은 범죄치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타락해도 나만은 성경대로 살리라.
나만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할 때,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엘리아는 그 시대가 다 아합 왕 앞에
무릎을 꿇을 때에도 홀로 남았습니다.
이런 엘리야를 통해
민족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랬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백성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애굽에서 섬기던 신이든
광야에서 섬기던 신이든 너희 섬길 자를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리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나실인의 삶입니다.
2) 나실인답게 살 때 하나님이 치료해 주십니다.
① 찢었으나 도로 낫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에서
흐트러지고 다 찢어졌습니다.
포로 생활이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숨은 손이었습니다.
이것을 찢는다고 표현했습니다.
'찢는다'에는 '잡아채다'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건강을 잡아채면
하루 아침에 찢어집니다.
사업을 잡아채면 한순간 찢어집니다.
가정도 나라도 하나님이 잡아채면 다 찢어집니다.
찢는다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치료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회복입니다.
찢었지만 다시 낫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치료하시면 못 고칠 것이 없습니다.
영혼과 육체만 치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나실인답게 살 때,
② 치셨으나 다시 싸매 주십니다.
백성들이 범죄할 때 바벨론과 앗수르를 통해
채찍의 몽둥이로 치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싸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찢으셨으나 치료하시고 치셨으나 싸매시는
사랑의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이 일으켜 주십니다.(2절)
1) 짧은 시간에 일으키십니다.
2, 3일이란 짧은 시간을 말합니다.
찢어졌을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 살아서 매를 맞았을지라도
낙심하지 마세요.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일으켜 주시면 삽니다.
사업도 건강도 가정도 나라도
하나님이 일으켜 주시면 일어난다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나실인답게 살면 됩니다.
2) 나실인으로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호 4:15하에 2가지를 제시했습니다.
① 길갈로 가지 말라.
본래 길갈은 이스라엘의 성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을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만들었고(호 9:15, 암 4:4)
타락한 길갈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속화된 길갈로 가지 말라.
즉, 세상으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길갈을 떠나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다시 일으켜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②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라(호 4:15하)고 하셨습니다.
벧아웬은 '허무한 집'이란 뜻입니다.
왜 허무한가요?
하나님이 없는 곳이 허무한 곳입니다.
이런 곳으로 가지 마라.
본래 벧아웬은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란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날 때
허무한 집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삶이 허무해 집니다.
지금 우울증 환자가 60만 명이 넘고
치료 비용이 1년에 10조가 들어가고 있답니다.
허무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 우울증입니다.
여러분들은 나실인입니다.
그러기에 타락한 길갈로 가지 말고
하나님을 떠난 허무한 벧아웬으로 가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3. 나실인으로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3절)
1)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은 제사보다 인애를 원하십니다.(6절)
형식적인 제사를 거부하셨습니다.
인애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헌신과 충성이요,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형식과 거짓입니다.
거짓의 뿌리는 마귀로부터 시작됩니다.
진실을 가장한 거짓과 위선,
거룩을 가장한 세속을 거부하셨습니다.
②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적인 바리세인들의 기도를 듣지 않았고
오히려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세리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③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들이 쩔렁거리면서 헌금통에 넣었으나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렙다 과부가
동전 두닢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 사람들 중에 가장 많이 드렸다고 하셨다.
양이 아니라 질을 보셨습니다.
2)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알 때
이른 비와 늦은 비같이 임하시리라 하셨습니다.(3하)
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을 상징했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시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이른 비는 12-2월 사이에 내리는 비로
파종하는데 꼭 필요한 비를 말합니다.
늦은 비는 3-4월에 내리는 비로 곡식을 여물게 하는데
꼭 필요한 비로써 모두 축복을 상징합니다.
여기에서 늦은 비를 내려주신다는 말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힘써 알 때
늦은 비처럼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나실인입니다.
나실인답게 살 때,
축복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찢어졌지만 낫게 하시고 치셨으나 싸매주셨습니다.
나실인답게 살 때 넘어진 우리를
다시 일으켜 회복시켜 주시고 살려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세상이 다 길갈로 내려간다 할찌라도
나 만큼은 여호와께로 돌아가리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이것이 나실인이 일어나는 길이요,
사는 길이요,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평생감사
뉴욕영안교회 제공
(917-963-9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