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해, 새로운 시작
본문 : 요일 1:5-10
매년 사람들은 어느 정도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새해를 맞이 합니다 .. 그러나 몇 주 후, 많은 사람들은 낙담하고, 다시 옛 삶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를 경험 합니다. 시작은 야심찾는 데.. 끈기가 없거나, 옛 삶에 더욱 익숙해진 탓에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중요한 결단입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시작이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먼저 집고 넘어 가야 합니다. 그냥 무턱대고 새롭게 시작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시작하기 전에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단념할 것은 단념한 후에 시작 하는 겁니다.
영적으로 표현해 본다면 죄 지은 것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시작하는 겁니다. 요한은 새로움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첫째, 새로움의 시작은 죄의 고백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 합니다.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은 나의 죄를 먼저 고백하는 겁니다. 즉 자신의 삶에 대한 영적 고찰입니다.
내가 나를 잘 압니다. 나는 어떤 스타일인지.. 이기적인지.. 남에게 거들먹 거리며 사는 자 인지.. 손해는 결코 안보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지.. 교만이 철철 넘치는지.. 내가 나를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치지 못하고 삽니다. 물론 남들도 다 압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 속에 여전히 깔려있는 죄악들, 나쁜 습성들을 하나님께 간절하게 구하는 겁니다. 고쳐 달라고 말입니다. 죄악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 하는 겁니다 .
오랜 세월을 살아온 분들의 공통된 단어 한가지를 꼽는다면 믿음 입니다. 조금 다른 단어로 표현해 본다면 정직 신뢰 입니다. 사람이 이런 마음을 품고 살면.. 그 순간은 손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순간은 기분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천하가 다 알게 된다는 겁니다 .
그렇습니다. 뭐 큰 일을 해서 유명해 지는 게 아닙니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주어진 의무를 책임있게 잘 감당하는 겁니다. 내가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타인에게 유익이 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는 겁니다 .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죄악들 중에 하나가 바로 나쁜 습관입니다. 고질적인 습관이 성도의 길에서 이탈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삶이 즐겁게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면 사는 게 즐겁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은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치지 못한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손가락질 받기 쉽습니다. 새해에는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매년 새해가 되면 달라져야 한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런데 자꾸 미뤄 왔습니다. 자꾸 연기해 왔습니다. 어느새 나이의 숫자가 많아졌습니다. 어느 새 거동이 불편해졌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자기 정당성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과감하게 생활 태도를 바꾸는 겁니다. 물론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는 배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익숙치 못한 마음, 자기 밖에 모르던 자가 남의 유익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웬지 조금은 어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 시도하면 나중에는 좋은 습관으로 새롭게 자리매김을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시작이 좋다 할지라도 죄를 고백하지 않는 한 새로운 시작은 불가능 합니다. 내가 잘 아는 나쁜 습성들과 습관들을 버리고 새해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쁜 습성들이 나의 영적 성장을 가로 막는 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줍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를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 합니다.
새해에는 옛 삶의 방식의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방식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과감하게 뿌리를 잘라내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의 피로 깨끗해졌음을 다시 기억합시다
7절에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기도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는 말씀 입니다.
9절 하반절에 ..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 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깨끗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님의 피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도덕적 성품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새해가 되어 뭔가 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옛날이 달라진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직 명목상으로만 변화된 사람들이 일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근본적인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옛 생명’에 속해 있는데, 성령께서는 그들을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계 3:1)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이들은 삶의 뿌리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겉은 변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옛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은 뿌리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힘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가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속에 주홍같은 죄라 할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요한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영적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빛이신 그리스도와 끊임없는 사귐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주님과 사귐은 다른 말로 표현해 본다면 동행 입니다. 교제 입니다. 함께 하는 삶입니다.
왜 우리는 주님과 사귐을 한 순간도 놓쳐서는 안될까요? 그 분을 통해서 영적 파워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세상에 이길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많은 것 같지만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말고 새 부대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낡은 가죽 부대.. 라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닮고 닮은 내 모습 입니다. 내 멋대로 사는 데 익숙해진 스타일입니다. 낡은 가죽을 보세요..
흔히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저 황소 고집을 누가 꺾어.. 낡은 가죽 부대가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수도 없이 말했건만 듣지 않습니다. 자기 주장만 내세웁니다. 자기만 옳다는 겁니다 .찢으려고 해서 쉽게 찢어지지 않는 내 삶의 모습 입니다. 누가 감히 바늘로 찔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 내 삶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말고 새 부대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새 부대.. 우선 찢어지지는 않을까 의심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웬지 어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새 부대에 넣으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제공해 주시는 새 부대는 어떨까.. 사용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진가를 알 길이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 하시는 십자가의 길이 바로 이렇습니다. 가보지 않는 한, 걸어보지 않는 한 알 길이 없습니다 .막연한 추측뿐 무의미 합니다 .
마지막, 예수와 진정한 사귐 속에서 새해를 그려 갑시다
5절에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이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 라고 말씀 합니다.
지금까지는 어둠을 좋아하셨다면 이제부터는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어둠을 좋아했다는 것은 사실 하나님과 분리하며 살았다는 증거 입니다. . 나의 것을 위해서 빛을 감춰 두고 살았습니다.
새해에는 조금 달라진 삶을 추구하겠다는 결단이 필요 합니다.
새해는 자신의 삶을 괴롭게 하고 불안케 했던 깊은 뿌리에서 탈출하는 겁니다. 나쁜 습관이나 중독된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도덕적 어둠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기원 합니다. 성경은 자녀들이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로우니라 라고 말씀 합니다.
새로운 당신..
새로운 결단을 하고 시작한 믿음 생활은 결코 멈추거나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됩니다.
시작한 것이 잘 진행되려면 힘이 필요 합니다. 그 힘이 바로 믿음 입니다. 믿음은 존재 자체를 힘있게 합니다.
바울도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시작합니다. 그 힘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백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달려갈 길을 잘 마칠 수 있었던 비결도 믿음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믿음은 바로 예수님을 최전선에 두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길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인생길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믿음을 갖고 주님과 사귐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스스로 그리스도께 붙잡힌 바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삶입니다. 빛 가운데 걸어가는 삶입니다. 결코 세상의 길로 이탈하지 않았던 삶입니다.
바울은 조금이라도 유혹이 생길 때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습니다.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유혹이 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싸워 이겨 내야 합니다.
결코 쉽게 무너지는 자신이 되지 않기를 기대 합니다.
일단 내 안에 죄가 감지되면 다음 단계는 죄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냥 놔두면 그게 씨앗이 되어 버립니다.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내면을 계속 비취도록 하라.
그래서 내 안에 어둠이 없게 하는 겁니다. 내 안에 세상적인 것들이 조금도 틈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빛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제대로된 길을 추구해 갈 수 있습니다.
어떠한 삶의 현장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주님께 집중하는 겁니다.
늘 그리스도께서 계신 위엣 것을 찾는 삶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작을 결단하는 새로운 당신이 되는 첫 걸음입니다.
그리고 늘 잊지 말고 묵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묵상 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다고 합니다. 날마다 죽노라 고 했습니다. 그 만큼 자신이 누구인지를 묵상하니까.. 이런 결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끈기를 갖고 완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서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이것은 주님께서 이제까지의 삶을 종료하라..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명령이기도 하지만 신신 당부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의 삶에 주님께서 종료 라는 말로 다시 시작하라 하십니다.
여전히 빛 보다는 어둠을 사랑하며 살고 있나요?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마 23:37에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보호하듯 내가 몇 번이나 당신의 자녀를 모으려 하였으나 당신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에 함께 달렸던 강도는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눅 23:42). 그는 과거에 아주 악독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 죽기 직전에 있습니다. 그런데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겸손하게 부탁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3:43).
죄악 속에 살았던 자라 할지라도 돌아오는 자에게 주시는 은총 입니다.
지금까지는 말은 그리스도를 주장하지만 변화된 삶의 흔적을 보이지 않던 속이고 거짓말한다는 못된 습성들은 과감하게 던져 버여려야 합니다. 뭔가 구별된 새로움이 될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 욕심이 앞섰습니다. 내가 먼저였습니다. 내가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했습니다
자신만의 소위 comfort zone 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안주하려는 마음입니다. 이미 익숙해진 삶의 스타일을 바꾼다는 것은 그 만큼 불편함이 뒤따릅니다. 편안함에서 불편함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장하고 변화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익숙해져 있는 자신만의 컴포트 전에서 이탈해야 합니다 .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날은 참으로 우주에서 가장 슬픈 날이었습니다. 자기의 욕심 때문에 선택한 결정은 선을 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우리도 선을 넘을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슬픈 날을 만들지 않도록 힘쓰는 겁니다. 하루 하루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날을 만들며 사는 겁니다.
하나님은 빛입니다. 하나님이 비취는 빛을 통해 살아가야 합니다.
빛은 나를 드러나게 합니다.
하와가 슬쩍 했지만 빛은 하와를 드러나게 했습니다. 감출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빛 입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성도가 됩시다. 나의 드러난 삶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삽시다.그래서 마 5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 위하여 우리의 빛을 사람 앞에 비취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시대 속에서 우리 각자가 진리의 횃불이 되는 성도와 교회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 입니다.
빛은 드러내기도 하지만 측정하게도 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 나를 측정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빛은 나를 측정하는 잣대가 됩니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내가 똑바로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빛은 나를 측정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잣대가 되어 주시고 기준점이 되십니다. 믿는 자로서 우리는 더 이상 어두운 세상의 길을 걷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부패, 속임수 또는 부도덕의 어두운 방식으로 특징지어져서는 안됩니다. 그 대신 빛의 자녀 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간혹가다가 유혹이 내 안에 밀려 올때마다 하나님이 내 속에 개입하셔서 측정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빛은 에너지를 주기도 합니다.
그것은 생명을 부여하고 활성화하고 빠르게 합니다. 빛은 나의 삶을 부지런하게 할 것입니다. 빛은 나의 삶을 생명력 넘치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빛을 스스로 파괴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를 통해서 깨끗하게 청소했다면 이제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한 해를 달려가라.
롬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서로 사귐이 있는 삶을 살아가자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사귐을 가진 것같이 우리도 이웃과 아름다운 사귐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사귐은 예수님처럼 내가 먼저 낮아지는 삶입니다. 내가 먼저 남을 높이는 삶입니다. 우리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던 이유는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내가 남보다 높아지려고 했습니다. 내가 남보다 잘나야 했습니다. 내가 남보다 뒤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형제간에 이웃간에 너무 긴장이 많았습니다. 너무 낭비하는 인생을 살았음을 깨닫게 합니다.
새로 시작하기에 결코 늦은 시간은 없습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거나, 새로운 삶의 꿈을 꾸기 위해, 결코 늦은 때란 존재하지 않는다.” – C. S. 루이스가 말을 했습니다. 거북이처럼 느려 보인다 할지라도 결코 자신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잠 24;16에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새해에 굳은 결단을 내리지만 또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축복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운 시작의 길을 따라가는 여정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지도 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세상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내 안에서 우리의 살아있는 영이 “으르렁 거릴때”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잠 3:5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 고 하셨습니다.
고전 15:57에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 삶에는 늘 유혹이 뒤따릅니다. 늘 사탄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그럴때마다 늘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의 삶을 더욱더 알차게 할 것입니다. 내 힘으로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도전 하십시오 .. 새로운 시작이 마지막 달력을 접는 날까지 변함없이 달려가시는 주님의 종들이 되시길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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