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18-25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제목: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노라
본문:마태복음 1:18-25
크리스마스는 왕이신 하나님이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의미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을 보여준다.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야 했을까? 오늘 성경은 그 이유를 말해 준다. 22절에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라고 말씀한다.
여기 선지자로 하신 말씀은 구체적으로 이사야 선지자다. 당시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어진 상태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남 유다 아하스 왕때에 강대국 앗수르의 침범으로 북 이스라엘이 망한다. 아하스 왕은 앗수르가 으름장을 놓자..눈치만 살살 살핀다. 그리고 자기 살겠다고 앗수르의 억압에 못 이겨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범죄를 일삼고 살았다.
조금더 살겠다고 세상과 타협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결국 패망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사야 선지자는 패역한 왕과 백성들을 향해 다시 하나님앞에서 올바르게 살 도록 강력한 선포를 멈추지 않는다. 이사야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이 구원자 이시다” 라는 의미다. 백성들은 멸망이 임박했고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그의 백성과 함께 계시며 희망을 잃지 않기를 강조한다. 그 말씀이 바로 사 7:14 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유일한 소망인 빛으로 오신 예수님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이 세상에 빚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 빛으로 오신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너무 눈멀어 있어 스스로는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 구원의 사명을 이뤄 가실 것인지 또 하나의 이름을 제시 한다. 그 이름이 바로 임마누엘 이다.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와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예수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시다. 임마누엘은 완벽한 구원자 이신 예수께서 마지막 한 명까지 구원을 위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선포 한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임마누엘이시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는 의미다.
이 의미 속에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한다.하나님이라는 신성이다. 그리고 우리와 는 인성을 나타낸다. 임마누엘은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늘 함께 계신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이 분이 바로 예수님이요 임마누엘이시다.
임마누엘 이 가르쳐 주는 놀라운 신비는
첫째, 창조자요 구원자시며 기묘자 이시다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은 창조자시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 그 누구도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오직 창조자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창조자는 불가능을 가능케 상황을 바꾸신다.
임마누엘은 구원자시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분명하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들어오셨다.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라”(눅 2:11)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변화를 만들어 내신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변화의 시간들은 보라. 친밀감 속에서 이뤄지는 영적 회심은 놀랍기만 하다.
삶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라
예수의 족보에 보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외에 네 명의 여인들이 더 등장한다. 다말,라합,룻,우리아의 아내.. 하나같이 흠 투성이다. 허점이 많고 부끄러움이 많은 인생이다. 공통점이라면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살아왔던 여인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 의 족보를 이룬다. 무엇이 이들의 삶을 역전시켰을까? 하나님이 주신 구원이다. 이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이다. 주홍같이 붉은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를 제대로 만나라
그 분을 만나면 한 순간에 변화된다. 눈이 뜨인다. 귀가 열린다. 진리가 한 영혼을 담대하게 한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은 기묘자시다.
기묘자란 영어로 카운셀러다. 상담자시다. 요셉은 정혼한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충격이다.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을까? 모든 사랑의 감정이 다 사라졌다. 그런데 요셉은 주의 사자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알고 쉽게 받아 들인다.
우리 삶은 늘 두려움과 불안케 하는 현실 속에서 산다.
상황에 따라 우리의 신앙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우리 곁에는 기묘자이신 예수님이 계신다. 세상 일에 결코 겁낼일이 없다. 결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에게는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통해서 지혜를 얻으라. 세상의 지혜와 맞서 싸우라.
둘째,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신뢰하라
왜 하필이면 임마누엘 일까?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 없다. 감히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수 없다. 하나님은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멀게만 느껴지는 대상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살던 이들에게 임마누엘은 파격적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고 우리 가운데 사시기 위해 내려오셨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에게 대리자를 보내지 않으셨다. 하나님 스스로 인간이 되셔서 마굿간에 오셨다. 누구나 아무 부담없이 만날 수 있는 분이다.
함께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매우 가까운 관계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때는 우리가 죄로 인해 하나님 없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탄생은 끊어졌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이제는 더 이상 떨어져 있는 상태가 되지 않도록 임마누엘로 매순간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시간적 개념에서 성경은 말한다.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그 분께 내 삶을 전폭적으로 위탁해 보라. 내 안에 가득차 있는 근심거리들.. 늘 내 안에 도사리는 마귀가 주는 생각들에 번민하는 연약한 자신을 맡겨 보라. 위로의 하나님이 내게 평안한 은혜를 주실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끝나는 그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마 28:20 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이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시다. 함께 하심은 우리 생이 다하는 날까지다.
그리고 영생의 자리에도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계 21:3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만큼 보장된 삶은 없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동행하신다 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
임마누엘을 향한 믿음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신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고 사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
믿음이 가장 필요 할때는 가장 힘든때다.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 함으로
사라는 자신이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아브람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하나님이 인간에게 기대하시는 믿음은 힘을 빼는 일이다. 의심의 힘을 빼라. 불안의 힘을 빼라. 두려움의 힘을 빼라. 의심이 강하고 불안이 강하고 두려움이 강하면 믿음은 사라지게 된다.
마지막, 구호로만 살지 말고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능력
ⓒ 복음뉴스(BogEu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