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 5:14-21
제목:새로운 인생
나는 내 주변 사람들과 어떤 상태로 살아가고 있나요? 불편한 관계, 꼴도 보기 싫은 관계, 좋은 관계..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다양한 관계 속에 살고 있다. 왜 불편한 관계가 될까? 불편한 관계를 왜 먼저 해결할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많은 이유들이 있다. 당했다는 생각만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손을 내민다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죄로 인해서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통해서 지혜를 얻고, 담대하게 행동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즐기고 탐닉하고 살지만 의미 없는 인생을 살 뿐입니다.
하나님은 단절된 인간과 먼저 화해를 시도하셨습니다.
롬 5:10-11을 보세요..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회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엄청난 일입니다. 여기 보니까 원수 되었을 때에 먼저 그리스도께서 화해를 위해서 예수님을 죽게 하셨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하는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을 바울은 오늘 본문 고후 5:17에서 새로운 피조물 이라 고백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주도적인 화해 임무는 믿는 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이 되도록 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사는 자는 어떤 삶을 사는 자들일까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인생입니다.
15절에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이전 인생의 목표는 오직 자기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주장이 강했습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는 일에 온통 관심만 갖고 삽니다. 그러니 화목할 수 없죠..
새 것 인생은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자기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삶을 향해 도전 ,끈기 갖고 살아간다.
둘째,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신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라
18절에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가 깨져 버렸다. 회복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가 피의 제물이 되어 죽는 것 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로 인해서 우리가 새 것이 되었습니다.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화목관계가 되었다.. 이것이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희생조차도 즐겁고 기쁘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을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우리에게 주신 기회는 그리스도의 희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4절에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새로운 인생의 토대는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여기 모든 사람에는 각자가 포함됩니다. 어느 누구도 빠진 자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2:2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온 세상을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 들일 때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을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롬 3:25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을 세우셨으니
이 말은 믿음으로 받아들였을때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화목제물로 인해 내가 완전히 변경되었다는 확신입니다. 내가 더 이상 예전에 내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 새로운 인생은 그스도의 사신으로서 사는 자다.
20절에 .. 하나님의 사신..
새로운 인생으로서 맡겨진 사명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살라고 말씀 합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신으로서 화목을 전파하라
20절에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사신은 명을 받고 파견되어 맡겨진 책임을 감당하는 자 이다.
늘 사신의 자세는 보낸 자의 특명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 하나의 소명과 행동을 요구하는 단어가 나오는 데 바로 직분이라는 단어 입니다. 18절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사신으로 화목을 증거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신으로서 부여받은 사명, 직분이 바로 화목이다
다시 질문 합니다. 왜 불화할까..왜 화목하지 못할까.
우리 안에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텅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껍데기 인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 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신은 내 생각을 갖고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생각과 계획을 증거 하고 실천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
툭하면 화목을 깨트리는 습관적 신앙에서 벗어나자.
화목할 여건이 안된다. 너무 상처를 받았다.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너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롬 12:18-21에 보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여기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는 말은 숯불을 쏟아 붓듯이 사랑의 감동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서 수치심을 느끼고 회개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가 지배적이다. 그 만큼 진한 감동이 원수의 잔인한 마음에 회개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
이젠 사신으로서, 직분자로서 좀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먼저 그리스도처럼 이웃과 화목을 만드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는 인생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화목을 방해할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던 화목의 마인드가 자신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지혜를 얻게 할 것입니다.
마가는 이런 영적 인식을 위해서 소금 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막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은 간을 맞추는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스스로의 형체를 잃어버리지만 맛을 냅니다.
성도간에도 이런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소금처럼 서로 녹아짐으로 평화를 가져 옵니다. 서로 형체를 잃어버리면서 맛을 내는 관계를 만들어라.서로 자기 주장하는 것은 소금처럼 살지 않겠다는 각오다. 늘 기억해요.. 난 소금이다..소금으로 삶에 호기심을 가지라
성령의 9가지 열매에도 보면 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새로운 피조물로서 화목케 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주의 종들이 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