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우물에서 생수로, 생수에서 성령으로”(요 4:10, 7:37~39)
유대인들이 유대(예루살렘)와 갈릴리 사이를 왕래할 때 통상적으로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고 우회로를 선택하였지만, 예수님은 매우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를 반드시 통과하시려고 하셨습니다(4:4).
1. 유대-> 사마리아-> 갈릴리 행로에 지치고 목마르신 예수님은 낮 12시경에(=제자들은 음식을 구하러 동네에 들어갔고), 수가라는 동네에 그것도 “야곱의 우물가에” 도착하셨다. 이곳은 거주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 조차도 자연히 이스라엘의 먼 과거역사를 떠올리면서, 물 한모금으로 피로를 회복하는 곳이었다. 먼 과거에 야곱의 우물로 말미암아, 그 지역의 이방인들과 짐승 들까지도 필요한 물을 공급받았던 것처럼, 예수님도 행로에 지치고 갈하여 물 한모금을 마시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때마침 물 길러나온 사마리아의 한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청하였다. 그렇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그 사람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서 냉정하게 반응을 하였고,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수백 년간 계속 있어왔던 뿌리 깊은 갈등을 가지고서 증오심을 불태우고 싸움을 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이런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오히려) 그에게 간청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living water)를 너에게 주었으리라.”(3:10)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사마리아 여인에게 누구이신지 알리려는 강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선물은 무엇이며 내가 누구인줄 네가 알기를 원한다”는 강력한 호소입니다. 물을 좀 달라고 하신 것은 단순히 목을 축이려고 하는 의도만으로 청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 같지 않은 이방 여인에게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인 메시아와 그의 나라를 알리고자 하는 뜻과 바람을 담아서 물을 좀 달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생수’는 성경에서 2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고여 있지 않고 흐르는 물”과 “생명을 주는 물”이란 뜻으로 사용됩니다. 하나의 말이 이처럼 2가지 뜻을 갖게 된 이유는 (1)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물은 썩어서 사람을 죽이는 독수(killing water)가 되는 반면에, (2) 샘에서 항상 새로 솟아나서 흐르는 물은 마시는 자로 하여금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생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3. 요한복음은 다른 곳에서 성령과 관련하여 이 2가지 의미를 다 같이 적용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9) 우리의 가장 깊은 속에서(=심령에서) 샘물과 같이 항상 새로 솟아나서 우리 메마른 영혼을 적셔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성령님을 가리켜 생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범죄하여 죽음의 저주와 형벌 아래 처한 인류에게 가장 복되고 귀중한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 형제자매 여러분, 무더운 한여름 입니다. 시원한 물이 많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네 인생들은 단지 물리적인 물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수(=생명을 주는 물)을 필요로 합니다. 더 나아가서 성경은 이 생수가 가리키는 것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받아야할 성령을 가리킵니다. 오늘도 참되고 진정한 생명수를 날마다 마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