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요한계시록 22장 1-5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복음뉴스 0 2023.01.17 08:47

제목 : 천국을 살자(1)-저주없는 삶

본문 : 계 22:1-5

 

2023년 새해에 우리 모두 오늘 말씀처럼 저주와 밤이 없는 삶을 사시게 되길 축원합니다. “생명수의 강”을 보게 되며, 생명 나무 실과와 잎을 먹으며, 왕으로서 자신과 세상을 통치하는 비전 가운데 천국을 살아가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천국을 누리며 사는 생활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삶입니까?

참고) 새예루살렘성, 즉 천국

3가지 없는 것 (3무): 저주와 밤, 등불과 햇빛과 같은 물리적 빛

3가지 있는 것 (3유): 생명수의 강과 생명 나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3가지 은총 (3은총): 생명수를 마심, 생명 나무 실과와 잎을 먹음,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섬기고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져 세세토록 통치함.

 

오늘은 이들 중에서 제일 먼저 저주가 없는 삶을 살펴 보겠습니다. 

본문3절 전반 “다시 저주가 없으며 ...” 

저주는 축복의 반대 현상입니다. 그리고 저주는 죄악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닙니다. 하나님께 축복받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저주받은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은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저주로 징벌하셨습니다. 즉 하와는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창 3:16), 남편에게 종속되어 평생 지배를 받아야 하고, 아담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갈'(창 3:19) 것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이같은 원초적인 고통에다 그  위에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존재가 겪어야 하는 온갖 저주 가운데 생활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신명기 28장은 일명 복장이라 불리워집니다. 그런데 복에 관한 언급은 1-14절까지로 1쪽 반도 채 안됩니다. 반면에 나머지 15절부터 68절 끝절까지는 거의 4쪽에 걸쳐 저주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복에 비해 무려 3배 정도의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주에 대해 항목별로 잘 열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축복보다 몇배 저주 가운데 지냄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끔찍하죠? 이런 저주들 가운데 어떻게 살까 걱정되죠? 그런데 이러한 모든 저주들이 없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요? 바로 천국! 영원한 새예루살렘성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저주가 사라진 영원한 안식의 처소입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거할 저주 없는 처소, 새 예루살렘을 세우시기로 이미 약속하셨었습니다 (슥 14:11). 할렐루야!

 

그렇다면 이 땅에서 아직 현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떠할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저주의 질곡 속에 마냥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저주를 없애고 축복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계시들이 구약에도 많이 있어 왔습니다.

 

야곱은 임종 전에 12지파에 대해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축복은 사실 저주였습니다 (창 49:5-7). 그럼에도 레위 지파의 경우는 모세를 통해 아버지 야곱의 저주가 벗겨졌습니다. 출애굽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먹고 마시며 춤추고 뛰놀았습니다. 그 때에 레위 지파는 모세의 명령을 받들어 하나님 편에서 행악자들을 3천명이나  처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세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출 32:26-29). 모세는 레위지파를 축복하며 성막에서 번제를 드리고 분향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지파가 되게 하였습니다 (신 33:10).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세겜이란 도시 옆에는 좌측(서쪽) 해발 890미터의 그리심산 (Mt. Gerizim) 과 우측(북쪽)의 해발 930미터의 에발산 (Mt. Ebal) 이 위치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실물 계시로 이스라엘에게 가르쳤습니다 (신11:13-3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둘로 나누어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신11:29). 이는 여호수아 때에 그대로 실행되었습니다 (수 8:30-35). 

또한 여호수아는 에발산에 철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새 돌로 단을 쌓아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나아가 그 돌들에 율법을 기록했습니다 (수 8:30-32). 그런데 왜 단을 그리심 축복의 산이 아닌, 에발 저주의 산에 쌓았을까요?

희생제물의 제사를 통해 저주를, 특히 율법의 저주를 없애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이는 신약의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처럼 어떠한 저주라도 하나님은 제거하신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제 신약에 들어가 하나님은 우리 저주 가운데 지내는 인생들에게 새롭고 확실한 소망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악의 대속물로 주어 인간이 죄악을 씻어버림으로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3).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값을 지불하여 죄의 노예인 우리를 사서 자유의 몸으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신앙의 출발 때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도 우리를 죄의 세력으로부터 속량해 주는 구원의 능력이 됩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저주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모든 죄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행한 것이 없을 지라도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우리 대신 저주 받으신 예수님께 나가면 주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저주에서 속량해 주십니다 (벧전 1:19).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이상 저주가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율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운명적인 생각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또 어리고 철모를 때 지은 죄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가계의 저주도 내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에 다 끊어진 것입니다. 조상들이 물려준 망령된 행실로 인해서 내가 불행해졌다는 생각도 온전히 버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2023년 새해에 우리의 모든 저주가 떨어져 나가는 축복된 삶을 사시게 되길 축원합니다. 장차 우리에게 영원히 도래할 천국을 이 땅에서도 누리며 살아가시길, 우리의 모든 저주를 속량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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