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사무엘상 11장 1-27절 말씀 묵상 [임근영 목사]

복음뉴스 0 2023.01.09 16:15

사무엘상 11:1-27절 말씀묵상

제목: 다윗, 밧세바 그리고 우리아 

 

1-2절: 다윗은 요압과 신복들이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데 집에 머물러 저녁 때(늦은 오후, 삼상 30;17)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신원한 바람을 쐬기 위해 지붕 위에 올라가 돌아다녔다. 

 

3절: 밧세바는 그녀의 부친인 엘리암이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이었다면, 밧세바는 아히도벨의 손녀가 된다. 우리아의 아내는 또한 예수님의 족보에도 언급되어 있다. 햇 사람 우리아는 삼십 인 용사(23:39) 중 한 명이었다. 

 

4-5절: 밧세바의 목욕 행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 때가 밧세바에게 임신의 적기였으며 특히 우리아가 결국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사건 이후에 밧세바는 집으로 돌아왔고, 다윗과의 관계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많은 인명의 손실을 가져오고 이스라엘 역사의 과정을 바꾼 엄청난 결과들이 발생하였다. 

 

6-10절: 다윗이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소환한 표면상의 이유는 암몸과의 전투 상황을 직접 전해 듣고 싶다는 것이었으나 실제적인 동기는 우리아를 속여 밧세바가 잉태한 아이가 그의 아이인 것처럼 꾸미기 위한 것이었다. 

 

7-10절: “발을 씻으라’는 말은 단순히 오랜 여행 후에 취하는 휴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11절에 암시된 성적 결합에 대한 완곡한 표현일 수 있다. 즉 당시 율법이 근무중인 군사들에게 성생활의 절제를 요구했다면(신 23:10, 삼상 21:5), 다윗의 제의에 대한 우리아의 복종은 의식적인 율법에 심각하게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즉 다윗은 우리아로 하여금 아이의 아버지가 되게 하고, 그와 동시에 율법의 올무에 걸리게 해서 그를 제거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윗은 밧세바의 뱃속에 들어 있는 자기 자식을 우리아의 자식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일선에서 우리아를 소환하여 밧세바와 동침하게 하려 하였으나 우리아는 자기 집에 가지 않고 왕궁문에서 잠을 잤다. 즉 왕궁 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숙소에서 침식을 함께 한 것이다. 

 

11-13절: 우리아가 자기 집에 가서 자지 않은 것은 자기 직무에 대한 충성심에서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군대 장관 요압과 왕의 신복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자기가 어찌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느냐는 우리아의 갸륵한 충성심은 그러나 다윗을 전혀 감동시키지 못하였다. 다윗은 우리아로 하여금 술에 취해 판단을 흐리게 하고 성적 충동을 유발시키려는 비열한 수단을 강구하지만 우리아는 끝내 집에 가지 않았다. 

 

14-17절: 다윗은 밧세바의 뱃속에 들어 있는 자기 씨를 우리아의 씨로 위장시키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전쟁에서 적의 손을 빌어 죽여 버리려는 지령이 담긴 편지를 우리아의 손에 들려 생질인 요압에게 전하였다. 즉 암몬의 용사들이 포진한 곳에 우리아를 선봉장으로 내세워 싸우다가 죽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압은 다윗의 지령을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보다 자기 출세를 앞세웠다. 

 

18-21절: 요압은 외삼촌인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전황을 보고하게 된다. 왕의 신복이 몇 사람 전사한 데 대해 왕이 문책하거든 우리아가 전사한 소식을 알려 왕의 분노를 풀라는 것이었다. 

 

22-26절: 요압이 신복 몇 사람이 전사하여 왕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까 걱정한 것은 하나의 기우에 불과했다. 다윗은 우리아가 죽었다는 보고에 몹시 흡족해했다. 그리하여 신복의 죽음에 대하여는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느니라”하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다윗은 우리아의 장례식에 후 밧세바를 아내로 삼았다. 밧세바는 아들을 낳았으나 얼마 못살고 죽었다. 그녀는 다윗 사이에 솔로몬, 시므아, 소밥, 나단의 네 아들을 낳았다(대상 3:5). 하나님은 다윗을 소행을 정죄하였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도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눈 밖에 나는 것이다. 

 

27절: 다윗은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는 자로 나타나며, 악을 행하는 자신의 행위의 참된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로 나타난다(14:14). 다윗의 눈은 도덕적으로 무감각하게 되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눈은 다윗의 눈보다 밝기 때문에, 다윗은 악을 행하고도 은근 슬쩍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눈에 악한 자로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그 길을 바꾸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잠 3:7). 

 

오늘의 기도: 지극히 하찮은 안목의 정욕(요일 2:16)이라도 미혹되어 다윗과 같은 엄청난 죄악에 빠져 들지 않도록 삼가 조심하게 하소서(욥 31:1; 시 119:9). 아멘. 

 

ⓒ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Category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