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베드로전서 5장 1-4절

복음뉴스 0 2021.12.26 18:14

 

본문말씀: 벧전5:1-4. 

제  목: 양무리에 본이 되세요.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에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5:3-4) Neither as being lords over God's heritage, but being ensarmples to the flock. And when the chief Shepherd shall appear, ye shall receive a crown of glory that fadeth not away(1 pe 5:3-4) 

 

한 해를 정리하면서 그동안 기억나는 사람들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한해였지만 그중에도 잊지 못할 고마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아픔과 상처를 준 안타까운 사람도 있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쓴 기억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1)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남에게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고,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사람입니다. 

 

2) 또 하나는 있으나 마나한 사람으로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도 않지만 유익도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3) 세 번째 사람은 꼭 없어야 할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고 이 사회에 악을 끼치고, 사람들을 황폐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세 번째 사람들이 인류를 병들게 하는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곳에 있든지 조직 공동체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누구에게나 그리운 사람, 보고 싶은 사람, 기억에 남는 사람 되시길 축복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받는 상처 중에 제일 큰 상처가 배신이라고 합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배신하고,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부모를 배신하고,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할 때, 기대한 것만큼,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받게 됩니다. 

 

세상에 사람이 개만도 못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는 주인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는 답니다. 

 

스코틀랜드에 가면 ‘보비’ 라는 개동상이 있답니다. 

 

교통사고로 주인이 죽었는데, 개는 주인의 무덤 곁을 14년간이나 떠나지 않고 지키다가 주인의 무덤 곁에서 죽었답니다. 

 

사람들이 감동하여 충견을 기념하여 동상을 세웠답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북 오수에 있습니다.

 

주인이 시장 갔다가 오는 길에 술에 만취하여 산기슭에서 잠이 들었는데 불이 나서 능선을 타고 오니까, 웅덩이에 가서 온몸에 물을 적셔 주인을 구해 주고 결국 개는 불에 타 죽었다는 석비가 있습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닙니다.

 

더불어 살아야 행복한 것입니다.

 

주위를 돌아보아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목회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역자, 직분자, 협력자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훌륭한 목회자였습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울 곁에 좋은 협력자들이 많았습니다. 

 

바나바나 디모데같은 협력자가 없었다면 과연 그렇게 훌륭한 사역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1) 마음으로 협력한 오네시모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내 심복이며 내 마음을 시원케 한 자라고 했습니다. (몬1:12) 

 

(2) 몸으로 협력했던 디모데, 잊을 수 없는 동역자 부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부부가 있었습니다.(롬16:3-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 놓을 사람들이라(4)

   

(3) 선교하는데 물질로 협력했던 자주장사 루디아, 뵈뵈 같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행16:14-15)

 

바울 곁에서 좋은 동역자들이 물심양면 협력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선교에 큰 일 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에 손발이 되어준 그들을 통해 주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교회도 잊지 못할 많은 분들이 함께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고 인도하셨습니다.(삼상7:12)

 

그리고 아낌없이 헌신 봉사 충성하신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러분의 수고를 하나님이 다 갚아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삶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지도자를 감동시키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한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킬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만일 정의를 구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용서하리라.(렘5:1)

 

다수가 아닙니다. 한사람입니다. 

 

조직공동체에서 한사람이 중요합니다.

 

한사람이 믿음으로 바로 설 때, 세상은 바뀌고 역사가 바뀝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청지기라고 합니다. 

 

청지기란 소유권자가 아니라, 관리자입니다. 

 

소유권자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들입니다. 

 

시간도, 생명도, 물질도, 재능까지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제직들이 어떻게 일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훈련된 제직들이 요소요소에서 소금처럼 녹아지고 빛을 발하면서 일하는 청지기가 될 때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모두가 일하는 것 아닙니다. 

 

파레토의 법칙처럼 20%가 80%를 리드합니다. 

 

교회의 창조적 소수 20%가 바로 제직입니다. 

 

좋은 제직 (제자)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훈련은 알고 있는 것의 반복입니다. 

 

반복을 통해 좋은 습관이 되고, 좋은 습관은 좋은 인격을 만들고, 좋은 인격은 좋은 체질로 변합니다.

 

좋은 인격은, 좋은 성품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체질화됩니다.

 

훈련은 단순, 반복, 지속입니다. 

 

반복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훈련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이 다듬어지고 삶이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공동체가 생겨나고, 비전을 공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훈련되지 않은 병사들은 전쟁에서 희생이 많습니다. 

 

군인은 훈련된 것만큼 희생되지 않습니다.

 

수 천 년의 역사 속에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지는 지혜서, ‘탈무드’에 보면 유대인들의 교육과 훈련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그들은 자녀에게 돈을 주지 않고, 돈 버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면 생선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가로 데리고 가서 그물이든 낚시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답니다. 

 

유대인들은 공동체 삶에 의식이 매우 강합니다. 

 

공동체에서 실패를 하면 열사람이 돈을 모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왜 실패했는지,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장사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답니다. 

 

그리고 후에 돈을 지원해 준답니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훈련하는 것이 유대인의 지혜입니다. 

 

유대인들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어도 가난한 자가 없답니다. 

 

본국에 700만 여명, 디아스포라로 800여만으로 1,500만 밖에 안 되는 소수민족이 세계를 움직입니다. 

 

미국인구의 0.2% 밖에 안 되는데 미국을 움직입니다.

 

하버드대학에 동양(한국 일본 중국) 학생이 4.3%인데 유대인들은 34%가 되고, 노벨상의 30%정도가 유대인들이 수상을 합니다.

 

아랍과의 전쟁에서 1/300 의 전쟁에서도 6일 만에 승리를 했습니다. (1967년6월 5일-10일)

 

이게 유대인들의 지혜입니다.

 

제직들도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육이 중요합니다.

 

오순절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불을 받고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뭘 더 배울게 있겠어요?

 

그런데도 끊임없이 ‘사도들의 가르침’ 을 받았다고 했습니다.(행2:42)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하나님 나라의 충성된 청지기가 되는 것 입니다.

 

한해의 결산이 왔듯이, 반드시 인생의 결산하는 날이 옵니다. 

 

주인이 결산하는 날, 착하고 ‘충성된 제직’ 이라고 칭찬듣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제직으로 세웠을까요?

 

1. 제직을 세우는 목적이 있습니다.

 

 1) 일하라고 세우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는 직분은 가치가 없습니다. 

 

(1) 고여 있는 물은 썩습니다. 

(2) 구르지 않는 돌은 이끼가 낍니다. 

(3) 게으른 종은 주인의 책망을 받고,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4) 사용하지 않는 칼은 부식됩니다. 

 

그래서 리빙스톤은 “나는 녹이 슬어 없어지기보다, 쓰임 받다가 달아 없어지길 원한다” 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2) 또한, 왜 직분을 주느냐? 

 

하나님의 일을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는 동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장정만도 60만입니다. 전체 약 200여 만 명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광야 길을 가는데 진전이 없습니다.

 

전달도 안 되고, 통제도 되지 않습니다, 

 

싸움 갈등으로 문제가 자주 일어나 자꾸 분쟁이 생깁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탈진을 합니다. 

 

이때 장인 이드로가 지혜를 줍니다.(출18:19-26, 신1:9-18)

 

모세여! 이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광야를 가면 지칩니다.

 

그러니 인격과 능력에 따라, 조직공동체를 만들고, 그들에게 문제를 맡기세요. 

 

그래서 모세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조직공동체를 만들고 이들에게 맡겼습니다. 

 

중요한 일만 모세가 해결해 주고 능력대로 맡겼더니, 광야 길을 잘 전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에게 조직공동체 일을 맡은 직분은 일하라고 주셨음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비젼과 철학이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일감을 맡겨야 합니다.

 

혼자하면 영세업자요, 구멍가게 밖에 안 됩니다.

 

3) 청지기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1) 시간이 많아서 주의 일 하는 게 아닙니다. 

 

    주의 일하라고 하나님이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2) 건강해서 주의일 하는 게 아닙니다. 

 

    주의 일 하라고 건강주신 것입니다.

 

 (3) 소유가 많아서 드리는 것 아닙니다. 

 

    주의 일 하라고 소유 주셨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4) 재능이 뛰어나서 봉사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라고 재능 주셨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주신 목적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한해를 결산하고, 새해를 향한 사명을 맡게 됩니다.

 

한 헤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달란트를 어떻게 썼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내년도 나의 사명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자신에게 맡겨주신 임무에 대해서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우리는 각자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 속에는 사명의 원리가 있습니다. 

 

땅은 지리가 있고, 물질에는 물리가 있습니다. 

 

몸에는 생리가 있고, 마음에는 심리가 있듯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원리가 있습니다.

 

원리를 벗어날 때 무질서하고, 질서가 파괴되고 균형을 잃게 됩니다. 

 

자연원리를 벗어날 때 인류의 재앙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수년 전 미국 플로리다에 과일나무에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자파 때문에 꿀벌들이 정신을 잃고 방향을 잃었답니다.

 

코로나가 우연이 아닙니다. 

 

창조의 섭리, 자연의 원리가 혼돈에 빠져 듭니다.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사명입니다. 

 

2. 그러면, 청지기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요? 

 

1) 자원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에 본이 되라.(벧전5:2-3)

 

억지로 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라.(2절) 

 

‘같은 일을 해도 억지로 하면 노동이 되고, 우러나와서 기뻐서 즐겁게 하면 사명이 됩니다.’

 

맡은 일에 사리사욕이 개입되면 문제가 됩니다.

 

이익 때문에 일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주인과 종(머슴)은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은 노동자가 되지 말고, 사명 자되시길 축복합니다.

 

강철 왕 카네기가 후계자를 지명할 때,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카네기는 후계자로 의외의 인물인 Mr.쉬브 라는 사람을 임명했습니다. 

 

그는 회사에 청소부로 입사한 사람이라 모두가 더 놀랐습니다.

 

그가 카네기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는 어떤 사람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본인도 예상을 못했습니다.

 

카네기는 쉬브를 후계자로 지명한 이유로 성실성과 책임감을 들었답니다.

 

“카네기는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쉬브씨는 청소부였네, 정원을 청소하라고 하면 항상 그 주변까지 즐겁게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곤 했지.”

 

나는 쉬브의 책임감을 보고 비서로 채용했네.

 

내 비서로 일을 할 때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공부하며 기록하더군.

 

업무 시간이 끝나도 내가 퇴근을 하기 전까지 항상 자리를 지켰네.

 

이런 사람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으면 어떤 사람에게 물려주겠나?

 

그러면서 쉬브에게 “경영이 필요하면 유능한 경영인을 채용하면 되고, 전략이 필요하면 유능한 전략가를 자네 수하에 두면 되네. 

 

자네는 지금까지 살아온 근면하고 성실한 책임감 있는 바탕위에 이 회사를 이끌어 가길 바라네.” 하면서 물려 줬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무질서 한 것 같아도, 사회에서도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주의 일도 우러나와서 해야 은혜가 되고 행복해집니다.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억지로 하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라고 권면했습니다.(벧전5:1)

 

교회는 해야 할 사역들이 많습니다. 

 

모든 일을 자원함으로 우러나와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 

 

2) 또한, 청지기는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에 본이 되라.(3절)

 

주의 일할 때 고집을 내세우고, 자기주장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양무리 (성도) 들의 본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주장은 자기생각, 자기 고집대로를 말합니다.

 

성도들의 본이란 ‘모델’ 이 되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본 받고 싶은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직분은 섬김의 리더쉽, 종의 리더쉽입니다. 

 

군림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무엇에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까? 

 

(1) 무엇보다, 예배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형식적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네게 무엇이 유익하냐?(사1:11)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13절) 

 

너희가 손을 펼지라도 내가 눈을 가리 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 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 하리니.(사1:15) 

 

중심이 없는 예배를 거부하셨습니다.

 

형식적인 예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배의 실패는, 신앙의 실패가 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진정과 진정으로 예배할 찌니라.’(요4:24)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요4:23)

 

(2) 또한, 헌금(십일조) 생활에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드리는 제사는 통으로 드리지 않고 각을 떠서 드렸습니다.

 

각을 뜬다는 말은 ‘구별하여’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십일조는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말3:7-10) 

 

사람이 어찌하여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3:8)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보라(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과일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11절)

 

소유도 구별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입니다. 

 

십일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받아 더 드리기를 기도하세요. 

 

한국에 선교하는 기업 이랜드(사장 박성철 장로)는 1년 선교비로 60억 정도로 2,300여 곳을 선교하며 선교 지를 돕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소유를 인정하고 구별할 수 있을 때, 믿음이 되고 은혜가 됩니다.

 

더욱 신앙이 성숙해 집니다.

 

맹인목사 윤인수의 가슴 저린 간증을 들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북에서 내려와 남한에 정착하여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중병으로 앓고 있는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어린 소년시절부터, 그는 길거리에 나가 신문을 팔고 구두 닦기를 시작했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년이 열심히 번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았습니다. 

 

돈을 받아 든 어머니는, 내 아들! 고생했다며 등을 두들겨 줍니다.

 

그러면서 인수야! 하나님께 “십일조를 먼저 드리자” 라고 합니다. 

 

어머니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버럭 화를 냈답니다. 

 

“십일조는 무슨 놈의 십일조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해준 것이 뭐가 있단 말입니까? 

 

(1) 내 눈은 멀게 되었고. (2) 엄마는 병들었고, (3) 공산당에게 쫓겨 피난민 신세가 되게 했고. (4) 재산도 다 빼앗기게 한 그런 하나님께 무슨 놈의 십일조를 내라는 것입니까. 하며 항변했답니다. 

 

그런데 병든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손을 꼬옥 잡고, ‘인수야 !

 

(1) 고향 잃어버린 것도 한스럽고. (2) 집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고. (3) 건강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4) 하나님까지 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우리에게 뭐가 남겠느냐?

 

어린 장애아들이 구두닦기로 벌어온 돈에서 십일조를 구별하더랍니다. 

 

이런 어머니의 믿음을 보며, 오늘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켰다고 하는 고백입니다.

 

믿음은 이런 것입니다.

 

이게 신앙의 유산입니다.

 

자녀들의 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렵다고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으면 뭐가 남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들을 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하나님까지 잃어버리면 무엇이 남겠느냐?’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환경일 때에도, 마른 뼈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게 신앙입니다. 

 

(3) 또한, 제직은 순종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마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 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 하나님 경외하는 줄 아노라.(창22:12)

 

순종은 내 생각에 맞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드리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은 이삭이나, 사라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고집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 절대자의 명령 앞에 의논의 대상이나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음성만 듣고,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내가 믿음으로, 동의를 했으니까,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았습니다. 

 

믿음의 결과가 순종이고, 순종의 열매가 축복입니다.

 

우리 제직들은 양무리의 본이 되길 축복합니다.

 

3. 그러면 목자장이 반드시 보상해 주십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4절)

 

1)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수고와 헌신에 대한 보장 약속입니다. 

 

그리하면 시들지 아니한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4절)

 

목자장이 누구인가요?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나타나실 때가 언제입니까? 

 

(1) 주님 재림 하실 때입니다. 

(2)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입니다. 

 

이 땅에 삶이 영원한 것 아닙니다. 

 

그때가 어느 때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결산의 시간이 옵니다.

 

언제인지 모르나 반드시 그 날이 있습니다. 

 

그때 목자 장 되시는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보상은 하나님께 받습니다.

 

세상에서 받는 박수나 보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보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충성스럽게 하다가 서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늙는 것이 아니라, 잘 익어 가는 것입니다.

 

2) 주님은 일한대로 갚아주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계22:13) 말씀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세상에서는 죽도록 수고하고도 헛수고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의 이름으로 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명을 위해 생명까지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행20:24)

 

바울이 하나 밖에 없는 목숨까지도 걸 만한 사명이 무엇이었습니까?

 

복음이었습니다. 

 

십자가에 피 묻은 복음을 깨달은 이후 이것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예수만이 생명이고, 예수만이 구원이요, 예수만이 평안입니다, 

 

예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임을 다메섹 도상에서 체험 한 이후,  예수님만을 전하는 것이 사명임을 깨닫고 이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인생을 행복하게 삽니다.

 

3) 청지기는 소속감이 분명해야 합니다.

 

떠돌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뿌리를 깊이 내려야,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 나무가 됩니다.

 

얼마 전 동남아를 국적없이 떠돌던, 장기덕씨 이야기를 아십니까? 

 

그는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음식도 잘 만듭니다. 

 

그는 베트남에서 살다가 인도로 갔습니다. 그런데 국적이 없습니다.

 

인도 한국대사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했답니다.

 

“나를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그러나 국적이 없어서 갈수가 없습니다. 

 

매일같이 목사님을 찾아가 나 한국에 보내달라고 호소를 했답니다. 

 

그때 캄보디아에서 살던 훈이라는 할머니가 KBS방송에 나와 소개되면서 국민청원이 일어나서 국적을 얻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장기덕 씨도 시도를 했답니다. 

 

그래서 국민청원으로 그 대상이 되었습니다.

 

국적을 취득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국민 여론을 얻는 동안 소원이 뭐냐? 

 

오토바이를 갖고 싶습니다. 

 

이유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인도거리를 달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인도는 거의 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한이 되었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뽐내면서 인도시내를 달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나서 죽고 말았습니다. 

 

끝내, 고국엘 못 돌아오고 동남아를 떠돌다 불운한 인생을 마쳤습니다.

 

국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소속이 있어야 합니다.

 

나라 없는 설움이 얼마나 비참한줄 아세요? 

 

내 나라, 내 조국이 있어야 합니다.

 

날이 저물면 돌아갈 내 가정이 있어야 하고, 내가 섬기는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데나 예배드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떠돌이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직은 죽어 관에 들어갈 때 까지, 내 교회를 지킨다는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애착이 생기고 헌신하고 싶고, 더 큰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 억지로 하면 노동이고, 은혜로 하면 사명입니다.

 

본이 되는 신앙생활하면 장차 목자장이 오셔서 시들지 않은 영광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특히 제직은 내 교회관, 내 목자관, 내 사명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충성된 영안교회 청지기로 사시길 축복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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