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누가복음 2장 36-38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복음뉴스 0 2021.12.20 11:49

 

본문말씀: 눅2:36-38   
제   목: 성탄을 기다린 사람(2)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눅2:37-38)   

 Which departed not from the temple, but served God with fastings and prayers night and day. And she coming in that instant gave thanks likewise unto the Lord, and spake of him to all them that looked for redemption  in Jerusalem. (Luk2:37-38)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성경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교회를 욕하고 핍박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또 그 말씀에 순종하고 주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느라.(출20:6, 신7:9) 는 말씀처럼 천대까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귀한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 ‘성탄을 기다린 사람들(2)’ 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 시므온이 주님을 기다리다가, 성전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를 직접만나 감격했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지난주에 바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안나 할머니에 대한 말씀입니다. 

 

‘안나’ 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은혜” 라는 뜻입니다. 

 

안나는 평생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환경의 삶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혼하고 7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었고, 84세를 혼자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포로생활가운데 가장 고통 받은 사람들을 고아와 과부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고아와 과부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신10:18, 신24:21, 약1:27)

 

안나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였으나, 그런 삶 환경가운데서도, 그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다보니까. 그 이름대로 ‘하나님의 은혜’ 라고 고백하는 삶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탄절을 앞두고 대강절을 지내면서, 영안의 모든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 가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천대에 임하는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본문에 안나는 2천년이 지나오면서도 고귀한 신앙과, 그의 발자취가 우리 모든 성도들의 본이 되는 그런 신앙의 삶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트렸을 때,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저를 기념하리라.(마26:13, 막14:9)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앙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긴다는 것, 너무 소중한 부분입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안나도 주님을 기다렸던 그 아름다운 신앙이 100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 2천년이 지난 오늘도 모든 믿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델이 되어 있는 그런 신앙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안나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 영안의 가족들이 제2의 안나가 되고, 제3의 안나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영안의 가족들이 그런 안나의 신앙을 소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안나의 신앙은 어떤 신앙이었을까요? 

 

주님을 기다렸던 안나의 신앙은 

 

첫째는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성전을 중심했다는 말씀은 ‘교회를 중심했다’ 는 말씀입니다. 

 

과부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37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섬겼다는 것입니다.

 

성전은 주님의 몸, 노아의 방주와 같은 곳 입니다.(고전3:16)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이미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7:16)

 

신앙은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하고 말씀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성전중심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전중심의 신앙이 성장합니다.

 

성전에는 예배가 있습니다.

 

이 성전에서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인다. 고 하셨습니다.(대하7:14-15절)

 

예배는 영성이 회복되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안나는 하나님 중심의 삶이었고, 그 언약의 말씀을 믿고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말씀중심의 신앙생활을 했고, 또 교회중심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둘째로: 안나는 사명중심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오늘 영안의 가족들이 항상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되어야 하고, 교회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또 말씀중심이 되어야, 사명중심의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안나가 사역한 그 시대로 부터 2천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이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이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신앙이 바로 성전중심, 교회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일찍 결혼(조혼)하는 그런 풍습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남편과 7년 동안 살았습니다.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 남편이 일찍 돌아가셨고, 그리고 혼자가 되었습니다.

 

자식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시대적으로 보아 그가 당한 슬픔이나 아픔이나 고통은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평생을 성전에서 살았습니다.

 

늘 성전에 가서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였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교회중심, 성전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다가 사명을 깨닫고, 은혜를 받고 큰 복을 받았습니다.

 

1) 구약시대에 사무엘 선지자가 그러했습니다. 

 

한나가 성전중심의 신앙생활을 했고, 기도로 사무엘을 얻었는데 그는 사무엘도 어렸을 때부터 성전에 맡겼습니다.(삼상1:28)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사무엘은 성전에서 예배드리면서 말씀배우고, 성전에서 신앙생활하며 봉사하며 복된 자녀로 자랐습니다. 

 

그런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는 존귀한 선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삼상16:1)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한다(삼상12:23) 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나라가 어려울 때, 미스바 회개 기도운동으로 영적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삼상7:5-6)

 

2) 다윗이나 솔로몬 역시도 늘 성전중심이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 성전을 세우고 싶다는 아주 뜨거운 갈망이 있었습니다. (삼하7장)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은 큰 복을 내려 주셨고, 또 그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성전건축이었습니다. 

 

그가 일천번제도 드렸고,(왕상3:4) 성전을 건축하는 중에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말씀 해 주셨습니다.

 

그런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지혜도 주셨고,(왕상3:11-12) 그의 왕위 그의 나라를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솔로몬이 지었던 그 성전을 향해서 “내 마음과 내 눈이 항상 여기에 있다. 라고 하면서, 이곳에서 하는 기도를 들어 주시겠다.” (대하7:15-16) 하면서 그만큼 중요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그렇게 교회를 사랑하여 성전중심의 삶을 살다가 은혜 받고, 또 하나님의 사랑과 기적을 체험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간증을 많이 들어볼 수 있습니다.

 

지난주 말씀을 들었던 시므온 역시도, 성전을 사모하며 메시야를 기다리다가, 성령의 지시에 의해 성전에 들어갔다가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안나 역시도 그 삶 속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성전에 가서 위로를 받고, 성전에 가서 하나님의 은혜로 기도응답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암흑기에도 메시야 탄생을 기다리는 신앙이 오늘의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국가적 상황은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서 자유도 없는 그런 현실 속에 살고 있었고, 영적으로는 침체된 암흑시대라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안나는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만을 섬기며 영성이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그런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 영안의 공동체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중심, 말씀중심, 교회중심, 그리고 사명중심으로 살아가는 영성이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그런 삶이되시길 축복합니다.

 

셋째로 평생 노년이 되도록 하나님만을 섬겼던 사람입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36-37절)  

 

1) 안나는 건강관리를 잘하였습니다.

 

‘안나 선지자가 매우 나이가 많았더라.(36절)’ 

 

나이가 매우 많았다고 했습니다. 

 

안나는 7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84세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혁 개정판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해석하면서 지금 안나의 나이가 문자대로 84세가 되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개혁 한글판 성경에는 이 부분이 어떻게 되어 있냐면 “과부된 지 84년이 되었더라.” 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나이를 계산하면 결혼하고 7년 동안 남편과 살았고, 또 결혼하기 전의 나이가 있잖아요?

 

보통 일찍 조혼을 해도 한 14-15세, 그렇게 결혼을 하는 상황이니까 그렇게 나이를 계산하면 113-115세 정도 되는 그런 나이입니다. 

 

나이가 84세도 많고, 113세라 해도 많은 나이이고, 어쨌든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나이가 매우 많다는 것은 분명한 것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평생토록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씀을 합니다. 

 

오늘날 백세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장수시대 라고 합니다.

 

장수하는 시대가 되어서, 기대수명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에요. 

 

요즘 장례식장을 자주 갑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연세를 보면 보통 90세는 쉽게 넘는 것 갔습니다.

 

그런데 100세 시대는 분명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건강의 수명은 짧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은 길어졌는데 건강하게 사는 시간은 짧아졌다는 것이에요. 

 

여기 안나를 100세로 보았을 때, 100세가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건강하게 곱게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건강하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들은 이런 건강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100세 시대를 살아갈 때, 그냥 아파서 100세 살면 얼마나 고생이에요. 

 

무병장수(無病長壽), 건강하게 장수하시면서 사시길 축복합니다. 

 

만수무강(萬壽無疆), 수복강녕(壽福康寧) 오래살고 행복을 누리며 건강하고 평안한 인생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65세가 넘으면 어르신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 안에도 연세가 대부분 그 나이 넘으신 분들이에요. 

 

그런데 굉장히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정말 감사합니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 언제나 일찍 나오셔서, 기도하는 모습이나 교회를 섬기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작은 일에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기쁨으로 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아! 그런 분들이 시므온과 같은 분이십니다! 

 

안나와 같은 분이십니다. 

 

연세가 많으시지만 일찍 오셔서, 교회를 섬기시는 분들이 안나 같은 분들이세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우리가 평생토록 안나처럼, 시므온처럼 성전에서, 나이가 많아도 백발이 되어도 하나님이 주신 그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그 힘과 능력으로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나아간다면, 오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이 천대까지 은혜를 주신다고 했는데 그런 은혜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기도하면서 섬기고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37절)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와 교제하자.”와 “나와 만나자!” 라고 말씀하세요. 

 

성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바로 기도를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요,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의 줄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했다는 것이에요. 

 

...주야로(눅2:37) 낮에도 기도하고 밤에도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그렇게 기도의 삶을 평생 살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까! 

 

기도시간을 이어 나아가는 것, 기도의 불이 우리 삶 속에 활활 타오르는 것, 밤 시간이나 낮 시간에 또 새벽시간에 많은 성도들이 나와 기도하시지요.

 

안나처럼 지속적으로 기도하시는 많은 분들이 계셔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열방선교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는 그런 모습들이에요. 안나 선지자와 같은 그런 모습이에요. 

 

우리는 늘 깨어서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새벽에 멀리 나오시기가 힘드실 텐데, 새벽마다 새벽기도 하시는 것 보니까 참 너무 감사하다” 고 했더니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 기도의 불이 한번 꺼지면 다시 불붙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기도의 불이 한번 꺼져버리면, 그 불 다시 살리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기도의 불은 꺼져버리면 안됩니다. 

 

그 불을 다시 살리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불이 꺼지면 연기가 나고 냄새가 납니다.

 

사명의 불, 한번 꺼져버리면 회복이 쉽지 않습니다. 

 

사명을 잃었을 때 주님오시면 버림을 받습니다.

 

성령의 불이 꺼져버리면 안됩니다.

 

성령의 불이 꺼지면 사단마귀들이 득세를 합니다.

 

그래서 안나는 주야로, 성전에서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금식하면서 기도했어요. 

 

연세 많으신 선지자가 그렇게 기도하면서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강절을 통해서 그렇게 주님을 기다리시다, 성탄절에 다시 한 번 주님을 깊이 만날 수 있는 영안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안나의 이 아름다운 신앙은, 주님을 만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안나가 성전에 들어갔을 때, 마침 그 때에 성전에 오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38절) 아멘. 

 

마침 이 때에 아기예수님이 성전에 나오신 그 때였습니다. 

 

안나는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때 아기 예수에게 결례의식을 행하기 위해서, 그 성전에 부모와 함께 오셨던 것이지요.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성전에 들어갔다가 그 아이를 안았던 그 감동이,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던 안나에게도 감격이 온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설교를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는데,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았다. 라고 하는 그 말씀을 읽는데 너무 감동이 밀려오는 것이에요 

 

‘아! 시므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메시야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만왕의 왕이 되신 메시야! 

 

그리고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실 이스라엘의 회복자...

 

조상들의 구전으로 전해오던 그 구원자를 자신의 가슴에 안고 느꼈던 그 감격! 그 감동을 생각하니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막 하염없이 나오는 것이에요. 

 

그 감동이 막 느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평생 마음 고생했던 그 시므온이 “주재여!, 종을 이제 평안히 놓아주시는 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하면서 찬송하며 하나님을 경배했던 것입니다. (눅2:29-30)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바로 그 감격해 그 순간입니다.

 

마침내 안나도 아기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가운데 예수님을 만나는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합니다.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찬송)

 

이번 성탄절에, 꼭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또 이번 성탄계절에 다시 한 번 예수님을 만났던 첫 사랑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뜨겁게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왜! 우리가 교회를 나와야 됩니까?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생활에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고,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세미한 주의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했습니다.(요4:23)

 

그러기에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려져야 합니다.(24절)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묻어나는 말씀이 매 주일 강단에서 흘러나옵니다.

 

보혈의 찬송 속에, 감동이 흐르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다시 오시는 신랑예수를 맞을 기름 준비하는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잠자고 있는 신앙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초대교회같이 성령충만 한 예배로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꼭 예배의식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그 주님과 함께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안나의 신앙은 예수님을 전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그런 신앙이었습니다. 

 

기도가 사명이었는데, 그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대속함을 바라고 또 해방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했다는 것입니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 하니라.(38절) 

 

아기 예수님을 만난 그 감격! 그 감동을 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사람들에게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나라를 잃고 로마의 속국으로 살고 있는 현실 속에도, 말로만 듣고 오랫동안 기도하며 기다리던 메시야!

 

그분을 만나길 소원하며 지나온 삶 속에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일찍 돌아가신 것도 고난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것도 많은 고난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성전에 와서 기도하게 되고 그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그런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 믿음가지고 살다가 아기 예수 오셨을 때, 메시야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코로나로 교회들이 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매주 예배를 한 번도 안 빠진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오히려 코로나기간 동안 영안교회가 더 성장한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코로나로 한 사람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것도 감사합니다.

 

새벽예배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르짖었던 것이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 감사한 것입니다. 

 

힘에 겨웠던 지난 삶의 광야 같은 환난의 시간도 감사합니다. 

 

지나온 제 인생의 모든 일정가운데, 많은 고난의 삶도 있었지만 오직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감사만이 나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 만나는 기쁨과 함께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모든 사람과 함께 감사해야 합니다. 

 

일본에 저명한 분이 말기 암 환자가 되었습니다. 

 

시한부가 되었습니다. 

 

항암투여 하는 것을 중단하고, 모든 신문에 광고를 냈답니다.

 

저를 알고 계신 모든 지인들! 

 

모든 분들께서는 저의 친척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저를 알고 계신 분들은 ○○장소로 모여 주십시오. 

 

제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고 광고를 낸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이 천여 명 정도 왔답니다.

 

그런데 그분의 소원은 자신이 죽기 전에, “그동안에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빚을 지고 살아 왔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감사하다.” 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아는 분들을 한 번 보고 싶고, 내가 그 분들 손잡고 ‘감사합니다.’ 인사 한 번 드리고 싶어서 그리했다고 합니다. 

 

장례식에 초대하는 것보다도 미리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한 분 한분 손을 잡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나온 삶을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없어요. 

 

특별히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받은 이 사실을 생각하면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살아가는 아름다운 뉴욕에서 함께 영안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여러분들에게 감사한지 몰라요.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부족한 사람을 담임목사라고 세워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눈물 나도록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코로나 펜데믹 세상 속에서도 “한 분도 천국에 가지 않고,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그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다” 고 고백해 봅니다.

 

가족들에게, 그리고 이웃들에게 또 함께 교회를 섬겨온 신앙공동체 안에서 그런 감사의 고백이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감사하면서 안나가 했던 일은, 바로 메시야를 기다렸던, 그 많은 경건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라고 했습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서라면 생명조차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 바울의 고백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해야 될 일이 있다면 바로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아직도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번 성탄절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영안의 모든 가족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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