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은 지금 어떤 길로 가고 있나요
본문 : 마 7:13-14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결단케 합니다. 들은데서 멈추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적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다시 현장으로 뛰어가는 모습들을 봅니다. 무엇이 이런 삶을 결단케 했을까?깨달음입니다.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이 옳지 않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회개 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내용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입니다. 내용을 보면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크고 작은 일들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하며 대처해야 할지 알려 주십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헤매며 살 때가 너무 많습니다. 정작 필요한 때에 미지근 합니다. 주저 합니다 복음을 따라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합니다. 이런 습관적 삶에 익숙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들은 것을 현장에서 결단케 하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성숙과 성장은 듣고 실천에 옮길때에 증명이 됩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 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결단케 합니다. 그 내용이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는 말씀 입니다. 좁은 문..은 벌써 뭔가 긴장하게 합니다 .좁은 문은 쉽지 않은 길임을 연상하게 합니다 .
예수님은 좁은 문과 큰문에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려고 말씀 하시지 않습니다. 좁은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은 이 길만이 참된 길임을 강조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왜 예수님은 좁은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는 멸망으로 끝나는 문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끝이라면 사는 동안 즐기며 살다가 죽으면 됩니다. 그런데 육체적인 삶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의 특징을 보면 크다.넓다. 사람들이 많다.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들이 갖고 있는 소위 가치관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을 싫어 한다. 이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자아를 부둥켜 안고 산다. 자아를 사랑할 뿐 이들 안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있다고 한다면 가식과 위선적이기 쉽다.
성도는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항상 바른 길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예수님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 보다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들에게 지배를 받습니다.
우선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에는 누가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고 있나요?
말씀을 듣고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꼭 중간에 끼어드는 보이지 않는 실체들이 있습니다. 바로 마귀들입니다 .온갖 마귀들이 우리들 주변에 득실거립니다. 마귀들의 궤계가 성도들의 결단을 틀어버리게 합니다.
엡 6:11 에 “마귀의 궤계를(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있으라 고 말씀 합니다. 그러면 궤계란 무엇인가? 속임수나 올무 즉 함정을 말한다. 간교한 꾀나 생각을 통해서 함정으로 자연스럽게 빠져서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이다.
마귀들이 주는 특성들에 하나가 절대로 만족함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들은 인산들로 하여금 불만족상태를 유도 합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여기 멸망이라는 헬라어의 의미는 허비 혹은 탕진 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는 동안 끝없는 자기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살다가 인생을 허비하고 탕진했던 시간들이었음을 알 게 됩니다.
인간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육체적 욕망에 파묻혀 살다가 공허한 인생으로 마감한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시간이었음을 그 때서야 깨닫게 될 뿐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듣지 않고 여전히 자기 생각속에 파묻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을 좋아하면 결과를 분명하게 말씀 합니다. 그 말씀이 바로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라고 분명하게 말씀 합니다.
크고 넓고 사람들이 많아 안전해 보일 수 있습니다. ㅈ그런데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처럼 산다는 겁니다. 말씀이 없는 삶은 마치 기초가 허술 한 것과 같습니다 . 결국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이 부딪치매 무너져 버리는 데 그 무너짐이 심하다 는 것입니다 .
반면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은 구원의 문입니다. 거룩함을 느끼고 사는 길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바로 좁은문 이기도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승리하는 신앙입니다.
이 길은 좁습니다. 협착 합니다.. 숫자가 적다고 합니다. 적지만 이 길에서 사는 사람들은 멸망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그 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마지막까지 내다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좁은 시야를 갖고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최종적으로 얻게 될 마지막 결론에 주목하며 삽니다.
산상수훈의 팔목도 보면 지금 말씀대로 꾹 참고 견뎌내면 미래에 대한 보상이 있음을 말씀 합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지금 겪는 아픔과 슬픔과 고난들을 견뎌내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장차 올 결과들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삽니다.
그렇기에 하루살이 인생이 아닙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하나님 나라 인생관으로 무장한 사람만이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거룩함의 길은 참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성품을 본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참 하나님만이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영생에 이르는 길입니다.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을 인생의 가이드로 삼고 따라 가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이다.
마 16;24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예수를 따르려면 두 가지가 선결 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 부인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심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한다. 하나님 중심적 삶을 추구한다.
바울이 예수의 길로 들어선 후부터 바로 자기를 부인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산다. 그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말씀 합니다. 갈라디아서 5:23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고 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주어진 사명을 이루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자신의 은사를 따라 일하면 아무리 힘든 것이라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다. 이런 삶을 통해서 이웃에게 유익을 끼친다.
생명이라는 헬라어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자기 성장이다.이 길은 좁고 협착하지만 이 길을 따라 살면 요 10:10처럼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합니다 .
둘째, 당신은 다가올 미래를 향해 지금 어떤 문에 들어가 계십니까?
이 세상에는 실제로 죽음으로 인도하는 위조된 도로가 많다
13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길은 좁다고 했습니다 .협착하다고 했습니다. 잠 14;12 에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이나 그 끝은 사망의 길이니라.. 생명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이 길이 옳은 길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자신을 이끌고 가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요한도 요 6:44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
언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넓은 길을 더 좋아했다면 길을 변경해야 합니다.자신의 삶의 경로를 바꿔야 합니다 .
잠 16;17에서 정직한 자의 대로는 악에서 떠나는 것이니까 자기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지금이 자신의 길의 경로를 바꿔야 할 핀포인트 타이밍입니다 우리의 삶은 내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잠언 4;26-7에 네 발의 길을 숙고하라 그러면 당신의 모든 길은 확실할 것입니다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마십시오 네 발을 악에서 떠나니라
마지막, 나의 길을 떠나 새롭고 살아 있는 예수의 길로 들어서다
미혹과 불안의 시대에 어떻게 예수를 따를 것인가? 우리가 꼭 붙잡아야 할 것은 끝까지 예수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인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팬더믹으로 인한 어수선한 시대 한가운데서 예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 여기서 예수를 따르는 용기있는 한 걸음 이야 말로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예수의 길에 충실히 임할때에 이웃에 미치는 여파는 분명 큽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
핵심은 말씀에 대한 확신과 결단이 행동으로 연결하며 사는 삶입니다. 의심하면 옳은 길을 향해 걸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신은 익숙한 두려움에서 일어나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게 합니다 .
생명의 길로 살면서 결코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악인들입니다 우리 주변에 가면을 쓰고 삽니다. 한 순간도 영적으로 게를러지면 유혹과 욕심에 쉽게 물들게 됩니다
평소에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하면 말씀으로 나의 평소의 생각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근거가 희박하며 언제든지 무너지기 쉽습니다 .
그래서 오늘 본문 이후에 강조하는 내용 중에 하나가 바로 모래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근거가 희박하며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금방 무너지게 됩니다
스스로 늘 점검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속은 텅 비어 있는데 겉으로만 생색내고 하는 경우 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는 데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을 끝까지 신뢰할 때에 얻는 열매를 말씀 합니다.
마 7:24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라고 말씀 합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말씀으로 단단한 근거를 삼도록 힘써야 합니다 .
예를 들어 내가 골몰히 생각해 볼때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삶이 왜 힘든지, 부족한 부분이 뭔지 글로 써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일기를 쓰는 사람이 쓰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강력한 정신력을 갖고 산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 유혹과 욕심앞에 구멍이 뚫리는지. 알아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산상 수훈에서 분노 외식 간음 헛된 맹세..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내용들을 묵상해 보면서 노력해야 합니다.
생명의 길로 살지만 마귀의 궤계는 끊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유혹이 많다. 협착하여.. 라는 단어 입니다.협착하여 라는 의미는 짓눌림 당하는 상태입니다. 압력, 굴복케 하는 세력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선한 일을 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력들이 자꾸 유혹을 합니다
유혹, 비난 질시 이런 것들은 힘 빠지게 합니다. 열정을 식어 버리게 합니다 .
그럴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유혹하는 것들, 불신앙적인 생각들, 세상적인 생각들, 열 받게 하는 모든 일들을 다 용광로에 집어 넣는 겁니다. 거기서 빠져 나오는 지혜로운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고후 10:3-6에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모든 생각들..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갖고 비상식에서 버텨내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빠져 나오는 알맹들을 내 삶에 진정한 가치로 삼는 겁니다. 또한 현장에서 부닥치는 수 많은 일들.. 집에와서 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 하는 겁니다 .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에서 결코 이탈하지 말고 끝까지 가라. 우리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
히 13:5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사는 소수자들이여
히 10:20-24 말씀처럼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새로운 살 길을 열어 놓으셨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라 선행을 격려하며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아멘
결코 자신이 자신의 길을 설계하지 말라.
이미 먼저 걸어가신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살아가자.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라고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들어 놓으신 그 길은 그냥 말씀으로만 하신 길이 아닙니다 .
히 10:7에 보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 왔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몸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와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길이 왜 좁은길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왜 좁은 길이 협착한지.. 우리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은 실제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나를 재배하는 모든 것을 지금 내려 놓으라. 내가 주인이 되어 살지 말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가자.
마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오늘날.. 입은 살아 있다. 누가 들어봐도 믿음이 대단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입만 살아있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된다. 행함으로써 믿음을 보이며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
십자가 없는 신앙, 행함이 없는 믿음, 이런 가짜 신앙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
철저한 십자가 중심의 삶을 살 때입니다.
그리스도가 제시하시는 삶.. 온전하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시느니라..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 분노 보다는 이해하는 마음, 세상의 관점이 아니라 철저한 그리스도의 관점에 충실히 임하며 사는 삶..
매일 부르시는 주님.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위해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날마다 먹자.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위선과 가면으로 숨길 수 없습니다.
주님은 좁은문으로 들어가 사는 사람들의 열매를 굉장히 강조 합니다
이제 우리가 길에 들어섰으니 그 길을 걸어갈 차례다. 결코 좁은 길 걷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
결코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
주님은 이미 야고보서 1;12에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어느 길로 가느냐 정말 중요 합니다. 지금 당신은 어느 길에 서 계십니까? 믿음이 있다면서 하나님께 관심조차 없는 신앙은 이제 버려라.미지근한 상태로 살지 마라.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도 저것 도 아닌 신앙에 결코 머물러 있지 말라. 미지근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토하여 버리신다고 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에서 삽시다. 작은 믿음에 만족하며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갈망하는 믿음으로 전진하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 길 되시면
떨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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