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행7:17-36
제 목: 이런 지도가가 그립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신자요.(신34:10) And there arose not a prophet since in Israel like unto Moses, whom the LORD knew face to face. (Exo 34:10)
오늘은 8.15 광복 76주년입니다.
저는 우리 고국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사랑합니다.
대한민국의 국호를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외국에 살면서 태극기만 봐도 가슴이 뭉클하고, 애국가만 들어도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일반 광고에 우리나라 상품, 자동차만 봐도 가슴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많이 못 땄지만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는 엄청 많은 횟수의 외세 침입을 받았고, 지금도 지구촌에 국토가 분열된 유일한 나라입니다.
광복절! 그 날, 그 감격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합니다.
우리는 나라 잃은 서러움이 얼마나 컸을지 간접적으로 깨닫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애굽 앗수르 바벨론 등 많은 나라에 지배를 받으며 살던 때, 우리선조들이 외세에 당했던 고난을 생각해 봅니다.
또 하나, 가슴 아픈 일은 우리나라 건국일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그리 많치 않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건국일이 언제인지 물어보면 가관입니다.
10월 3일 개천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일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하였다고 그날이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 정부에서 1919년 상해 임시 정부를 기점으로 삼는다고 하는 말도 있었는데, 이는 무리가 따릅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웠듯이 나라 구성에 세 가지가 요건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국토가 있어야 하고 국민이 있고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1919년은 국토를 잃고 상해임시정부라고 남의 나라에서, 그 때는 주권도 완전이 일본이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저는 1948년 8월 15일을 지지하는 견해입니다.
상해임시정부는 국가의 요건(영토 주권지배권)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1919년의 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정부’ 라 해야 합니다.
만약 1919년에 건국이 되었다면, 당시의 정부를 ‘임시정부’ 라고 부르는 것은 또 다른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 나라가 국가인지 여부는 자국민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의해 판정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1919년에 수립된 임시정부는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새로운 독립 국가가 탄생했음을 전 세계에 선포한 후에, 다른 나라와 수교함으로써 국가승인을 받았습니다,
제 3 차 파리 유엔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1948,12,12)
1948년의 정부는 그 임시정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엄밀한 의미에서의 국가를 탄생시켰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현 정부에 와서 건국일을 1919년 3월 1일로 한다고 하니까, 국민들이 우왕좌왕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 한사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1년 반 동안 코로나와 무서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 정신적 고통과 어려움 속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위치에서 힘겹게 버티고 가는 모습들이, 대견하고 처절하기조차 합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코로나 4단계라고 비대면 예배를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았고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폐쇄하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교회를 유흥업소와 같은 위험시설로 분류하여 과도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찬양대 금지, 통성기도금지 등, 예배의 본질과 형식 방법까지 제한하는 조치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폐쇄시킨다고 으름장을 놓고, 행정명령 위반으로 300만원 벌금을 물겠다고 합니다.
유흥업소등 마스크를 벗고 음식물을 섭취하는 3밀(밀접, 밀집, 밀폐) 시설에서 집단 감염사태가 발생하고 있는데, 교회가 3밀 시설인가요?
묻고 싶습니다.
백화점에는 열 체크만 하고 사람들이 거리 뛰기가 어디 있습니까?
정부의 4단계 조치의 기준이 뭔지 전혀 형평성에 맞지 않는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힘없는 소상공인들만 당하는 것입니다
철저히 거리를 띄우고 마스크 쓰고 1시간 동안 앞만 보고 예배드리는 교회가 위험하다고 20명만 드리라고 한답니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몰리는 지하철, 버스, 백화점, 마트, 극장 모두 문을 닫아야 합니다.
얼마 전 대구에서 나훈아씨 콘서트엔 4천여 명이 몰렸다고 합니다.
지하철 버스는 콩나물시루도 괜찮은데 교회는 면적과 수용 인원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비 대면으로 예배드리라고 하는 것이 상식적이고, 타당한지 방역당국에 묻고 싶습니다.
이제는 종교의 존엄과 헌법적 가치마저 무너졌습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의 통제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배를 멈출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70년 동안 포로생활에서도 성일이 되면 바벨론 강가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하며 찬양하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모두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신앙도 일어나고, 교회도 일어나고, 나라도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히브리 백성이 애굽의 바로 밑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위대한 지도자 한사람을 세웠습니다.
그가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고, 광야 40년을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광야 길을 인도한 지도자였습니다.
신34;10절에 그 후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성경 역사에 가장 위대한 지도자가 모세라고 생각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한 자였습니다.
모세는 결단력이 강한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바로왕을 꺾은 지도자였습니다.
철저히 훈련되고 준비된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의욕만 가진 자가 아니라, 준비된 자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우리를 훈련하시고 준비하셔서 쓰십니다.
준비하는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모세의 생애 120년을 보면, 40년 사역을 위해 80년을 준비하셨습니다.
준비하는 시간이 실제 사용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중요했고 길었습니다.
모세의 생애를 셋으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애굽의 왕자로서의 리더십입니다.(행7:22)
애굽왕궁에서 학술, 언어, 지도력, 예의 이런 것들을 훈련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미디안 광야생활입니다.(출4:1-31)
화려한 왕자의 자리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많은 원망 불평을 이끌고 광야 길을 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로 보냈습니다.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보내서 40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고난으로 자아를 깨트리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세 번째는 80세에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셔서 지도자로 세우시고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출6:1-32)
그런데 모세는 120년을 살면서도 기력이 쇠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흐리지 않는 복을 누렸습니다.(신34:7)
마지막까지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여러분도 모세와 같은 은혜를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믿음으로 인내하고 일어서시길 축복합니다.
1. 애굽의 왕자로 40년간 학술, 언어, 지도력, 훈련을 하셨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 하더라.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행7:22-23절)
1) 모세의 훈련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당시 애굽은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였습니다.
오늘날 미국정도의 나라가 아닙니다.
애굽의 왕자로서 무술을 배우고, 학술과 언어를 배우고, 예절과 지도력을 배우게 했습니다.
애굽에서 40년이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때에도 이렇게 훈련하고 준비되어야 쓰십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훈련받는 시간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세요.
제대로 훈련된 용사들은 전쟁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고 했습니다.
지금 애굽에 있든, 광야에서 훈련을 받든 훈련 중이라, 생각 든다면 최선을 다해 훈련받으세요.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귀하게 쓰십니다.
2)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그릇으로 비유하셨습니다.
(1)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큰 집에는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그 중에 주인이 원하는 것은 금이나 은그릇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이라고 했습니다.(딤후2:20-21)
어떤 그릇이든 부족한 그릇이라도 깨끗해야 하나님이 쓰십니다.
금 그릇이든, 질그릇이든 더러우면 버림받습니다.
그렇습니다. 더러우면 버립니다.
사람도 버리고 나라도 버리고, 사회도 버립니다.
더러우면 쓸 수가 없습니다.
(2) 또 하나, 그릇의 크기만큼 쓰임 받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몇 천 명 부흥을 하더니 멈추더랍니다.
아무리 금식을 하고 철야를 하고 기도를 해도 교회가 더 이상 부흥되지를 않더랍니다.
그때 누구하고 일해야 하나? 제직들을 당회원들을 하나 하나 보니까
한심하긴, 한사람도 자기 마음 같은 사람이 없더랍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양파 까듯 안 된다고 도려냈답니다.
고민을 하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네가 만 명을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네 인격과 신앙과 마음이 만 명을 담을 그릇을 만들라. 고 하더랍니다.
그 때 회개하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고백입니다.
만 명을 달라고 하기 전에, 네 마음에 만 명을 담을 만한 그릇, 포용성, 인격, 용서하는 마음이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그때부터 자기 마음속에 저 사람은 안 돼, 저 인간은 안 돼 이랬던 모든 걸 자기 마음에서 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회개하고 칭찬하면서 사랑하며 담기를 시작했답니다.
장점을 보면서 축복기도를 하며 성령님께 도움을 구했답니다.
회개의 영이 임하여 미워한 모든 죄를 사함 받았다고 합니다.
종제기 만한 그릇을 대접같이 키우기를 시작했답니다.
그렇습니다. 만 명을 담을 만한 그릇이 준비해야 합니다.
그릇만큼 채워 주시고, 쓰임 받습니다.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주의 일을 하든지. 마음의 그릇, 인격의 그릇을 키우고, 생각의 그릇을 키워야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준비된 자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축복합니다.
2. 모세는 40-80세까지 미디안 광야에서 혹독한 훈련받았습니다.(행7:29-30절)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29-30절)
모세는 태어나서 숨겨서 3개월을 키웠습니다.
아이가 커지면서 울음소리도 커지고 숨길 수 없어 갈대상자를 만들어 강에 띠워 보냈습니다.
그 누나가 상자를 따라 강둑을 걷습니다.
마침 바로의 공주가 목욕을 하러 강에 나왔다가 아기가 든 상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히브리 남자아이가 상자 속에서 방긋 웃는 모습을 보고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나가 바로의 공주에게 유모를 소개 하겠다고 하고, 자기 엄마를 데리고 왔습니다.
유모가 필요했는데,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그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민족정신을 심어 줬습니다.
네가 애굽 왕자지만 히브리 민족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어머니로부터 들으면서 살아왔습니다.
커서 고통당하는 히브리 민족을 구원해야 한다. 고 가르쳤습니다.
어느 날 애굽 사람과 히브리 사람이 싸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애굽의 왕자임에도 불구하고 애굽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이 일로 인해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갔습니다.
이게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움직이시는 손입니다.
1) 미디안 광야는 고달픈 훈련의 때입니다.
화려하던 애굽 왕자 자리에서 하루 아침에 광야생활 장인의 양무리를 치는 머슴이 되었습니다.
미디안 광야 생활은 애굽의 화려한 생활을 다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모세를 깨트리는 시간입니다.
철저하게 깨트리고 훈련을 하였습니다.
애굽에 왕자의 화려함을 가지고는 원망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 길을 갈수가 없습니다.
금방 저것들을 쓸어버리겠다. 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의 고난과 시련을 40년 동안 겪으면서, 인내를 배웠고, 백성들을 품을 수 있는 인격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혈질적인 모세의 성격을 다듬으셨습니다.
미디안 광야는 모세의 자아를 깨뜨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잘 살다가 무너지면 감당하기 힘든 시간입니다.
처가살이를 하면서 눈물의 빵을 먹으며 완전히 모세를 낮추셨습니다.
하나님은 깨뜨리는 일부터 하셨습니다.
깨뜨려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들어 쓰십니다.
하나님 앞에 부서지고 깨어질 때, 하나님의 손으로 다시 우리를 빚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그릇으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2) 미디안 광야 40년은 하나님이 정한 시간입니다.(30절)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행7:30)
“40년이 차매”... 여기에 ‘차매’ 라는 말씀을 잘 주목하세요.
미디안 광야 40년은 하나님이 모세를 훈련하는 하나님의 시간표였습니다.
애굽의 왕자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훈련하시고, 80세에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정한 시간이 있습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조급해 하지 마세요.
곡식을 조금씩 잡아 뽑는다고 빨리 거두는 것 아닙니다.
농부는 가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정해놓고 계십니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만 아시는 시간입니다.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시간은 40년이 차야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임계점입니다.
우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도 이 광야 같은 시간을 보내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광야, 건강의 광야, 가정의 광야도 있습니다.
자식의 광야 사업의 광야도 있습니다.
모세처럼 자아가 깨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들어 지길 기도하세요.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광야가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낙심하고 절망하지 마세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은 하나님이 모세를 훈련시킨 시간표입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고르는 시간입니다.
코로나 펜데믹 타임은 하나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고르는 시간인 줄도 모릅니다.
이 역경의 시간이 지나면 정금같이 쓰임 받을 것입니다.
신앙의 미디안 광야의 시간을 잘 보내야 합니다.
3. 하나님은 80세에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 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34절)
왜 부르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 보낸 시간입니다.
연세가 60-70세 됐다고요,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일 하는데 나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음가짐과 정신과 분명한 목표의식이 중요합니다.
독실한 크리스챤인 102세 김형석 교수는 건강을 위해 운동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건강해야 하고, 건강하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치관이 다릅니다.
무의미하게 산다면 산다는게, 살아 있다는게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모세는 80세에 사명을 받았습니다.
40년을 왕궁에서 애굽의 무술과 모든 걸 배우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깨뜨리고 낮추시고, 80세가 되어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과거 역사속에 그런 지도자가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1) 120세에 죽을 때까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 하였더라.(신 34:7)
사람은 사는 것도 복이지만 죽는 것도 복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죽을 때까지 눈이 흐리지 않았습니다.(신34:7)
육신의 눈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보는 신앙의 눈이 흐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강조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늘의 소망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신앙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7절下)
하나님의 일을 끝까지 완수 했습니다.
기력이 쇠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셨습니다.
이게 얼마나 큰 은혜이고 축복입니까?
우리도 중간 결산 하지 않기를 기도하세요.
사명도 직분도 중간 결산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2)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34:10)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이런 지도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또 한,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한 자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주님의 얼굴을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주님의 얼굴을 맞대면하고 보리라.(고전13;12)
그때가 언제 일까요?
지금은 믿음으로만 바라보고 살지만, 육신의 장막을 벗는 그 날에 주의 얼굴을 맞대면하고 보리라.
우리의 신앙은, 천국의 소망이 마음을 지배해야 합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성공을 꿈꿀 때 무너지지 않는 기초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8.15 광복절인 동시에 대한민국 건국일입니다.
왜! 우리는 광복절은 잘 아는데, 건국일은 중시 여기지 않을까요?
정치적 이념으로 국민들을 속이고 있었기에, 어느 것보다 중요한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잊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비극적인 말로가 왠 말입니까?
정치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모세와 같이 철저하게 준비된 하나님과 국민들 앞에 인정받는 영혼을 사랑하는 지도자가 그립습니다.
모세는 마지막까지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해 보았던 영적인 사람, 신령한 사람,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을 우리가 다시 한 번 거울로 삼으면서,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더욱 승리하는 생활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