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마태복음 13장 18-23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복음뉴스 0 2021.03.16 09:23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본문: 마 13:18-23

 

예수님은 본문에서 4가지 마음밭을 비유로 소개합니다: 길가 the path, 돌밭 rocky places, 가시떨기밭 the thorns, 좋은 땅(옥토) good soils. 길가와 같은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며 귀중히 여기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돌밭은 말씀에 대해 기쁨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심령입니다. 감화도 쉽게 받지만 죄도 빠르게 짓습니다. 자신에게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즉각 버리는 자들입니다. 더우기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곧 넘어집니다. 

세 번째 가시떨기밭은 세상에 대한 염려, 즉 생활이나 사람에 대한 걱정과 근심에 쌓여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재리의 유혹에 쉽게 빠져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나아가 세상 일락을 온전히 버리지 못해 거룩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도 있습니다. 순종의 삶도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 말씀에 의해 주도된 삶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두 다리를 걸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단히 신앙이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언급한 데마와 같은 사람입니다 (골 4:14; 빌 1:24).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 (딤후 4:10).  

좋은 땅, 옥토는 어떤 사람인가요? 오직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는 사람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으로 그의 삶을 주도토록 힘쓰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 좋은 땅, 옥토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한편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깨닫다understand”라는 단어입니다.

본문 19절 “아무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이라고 부정적인 경우에 한번 사용되었고, 본문 23절 “...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고 긍정적으로 또 한번 사용되었습니다. 

길가와 돌밭, 그리고 가시떨기밭은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결국 깨닫지 못해 열매를 결실하지 못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에 좋은 땅만은 30, 60, 100배의 많은 결실을 맺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엔 그래도 길가보다는 돌밭이, 돌밭보다는 가시떨기밭이 낫지 않냐? 고 자위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데 길가보다는 돌밭이, 돌밭보다는 가시떨기밭이, 그만큼 시간과 수고, 물질을 많이 투자하지 않았겠냐? 고 보다 나은 점수를 주려 합니다. 그러나 형편이 달라지며 옥토로 바뀌기 전에는, 하나님의 눈에 결국 앞의 3가지 마음밭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원하고 인정하는 밭이 아니게 됩니다. 오직 마지막 좋은 땅만이 하나님이 원하는 밭입니다. 크레딧을 주는 밭입니다.

 

즉 “열매의 유무” 즉 “씨로 뿌려진 하나님 말씀의 결실”여부가 관건입니다. 그런데 누가 열매를 결실해요? 

본문 23절 중반 “...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입니다.  

“깨닫다”는 동사의 헬라어는 “쉬니에미”입니다. “쉬니에미”는 “쉰”(함께) 과 “히에미” (보내다)의 합성어로 “함께 보내다, 함께 가다”는 뜻입니다. 마치 두 개의 강줄기가 만나 한 줄기가 되는 것과 같이 서로 다른 생각이 하나가 되어 함께 인식하고, 함께 해석한다는 것이 바로 “쉬니에미”(깨닫다)의 의미입니다. (마태 13장에서만 6번 사용됨) 비유하자면 땅에 있던 우리의 생각과 길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생각과 길에 합치되어 함께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 55:8-9). 이걸 보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이 정말 엄청난 사건이 되는 거죠? 땅이 갑자기 치솟아 하늘에 닿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런데 왜 이같은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갖는 권위와 능력이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요 10:35).

그러면 과연 하나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이 무엇일까요?

 

1.말씀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말씀의 권위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비유: 저자author 와 권위 authority는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딤후 3:16 전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 어떤 특정한 성경만이 아니라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씌여졌습니다 (벧후 1:20-21).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헛될 수가 없습니다 (사 55:11). 

 

2. 말씀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딤후 3:15).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요 5:39).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의 구원주이십니다 (요 14:6; 행 4:12; 20:31).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온전케 할 뿐만 아니라 선한 일을 행하는 데에도 온전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딤후 3:16 후반-17). 

 

그렇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신적인 권위를 갖게 됩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갖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보다 심령과 인격이 온전케 되며 온전한 선한 사역을 하게 되는 능력을 부여받게 됩니다. 갈수록 성령님의 열매들을 맺어 가며 성령님의 은사들을 통한 능력의 사역을 하게 됩니다. 때문에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자신에게 뿐만이 아닙니다. 나아가 이웃들에게 말씀을 전함으로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렘 23: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눅 24:32). 

초대교회의 신실한 말씀 전도의 결과는?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즉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얻음으로 흥왕하여 점점 세력을 얻었습니다 (행 6:7; 12:24; 13:49; 19:20). 

 

오늘날 우리 각 개인들과 교회공동체들도 이와 같은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같은 초대교회와 같은 은혜와 은총, 말씀의 권위와 능력이 차고 넘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우리 모두 각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옥토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귀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길가밭에서 벗어나는 자세). 

-말씀을 받아 뿌리를 내려 환난이나 핍박을 넉넉히 이기시기에 힘쓰시길 소망합니다 (돌밭에서 나오는 방법).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세상의 일락을 뿌리치시길 간구합니다 (가시떨기밭에서 헤쳐 나와 옥토로 기경되는 길).

-말씀을 듣고 깨달아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받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신적 권위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구원을 이루고 온전한 사람과 사역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맺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함으로 동일한 말씀의 생명의 역사가 가정과 친지, 이웃들에게도 나타나게 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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