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이사야 60장 1-5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복음뉴스 0 2021.01.17 17:54

본문말씀 : 사60;1-5.

제   목 :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Arise, shine; for thy light is come, and the glory of the LORD is risen upon thee. (Isalah60:1) 

 

1938년 9월 9일부터 평양 서문 밖 교회에서 장로교 27개 노회, 193명의 총대들이 장로교 제 27차 총회가 열렸습니다.

 

총회장 홍택기 목사를 선출하여, 이곳에서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민의례 라고 결의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정회를 한 후, 바로 심사참배를 하고 한국교회 역사에 죄인들로 오늘날까지 장로교회의 수치로 남아있습니다.

 

한경직 목사께서, 저는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하고 눈물 흘리며 사죄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저는 코로라로 교회가 큰 핍박을 받고, 생명같이 여기던 성전예배가 중단되어, 닫혀있는 교회를 보면서, 침묵하는 교회들이 시대적 요청에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역사 앞에 비겁하게 숨어 있는, 주의 종들에게 다윗을 책망한 나단 선지자의 책망이 들려지길 바랍니다. (삼하12:7-10)

 

나귀의 책망을 받은 발람선지에게 주신 주님의 음성이, 양심의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민22:21-30) 

 

이런 씁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교회 초창기 때 교회 사람이 뭘 잘못하면, 그 사람들 그런 사람들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두둔하며, 설마 그럴 리가 없어요. 라고 했답니다.

 

성도들이 많아지고 그 후에 시대는,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여, 로 바뀌었습니다.

 

요즘엔 그들이, 더 한다고 한답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세상을 염려 했는데, 요즘엔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염려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코로나로 어렵고 힘들지만, 더욱 힘내시길 축복합니다. 

              

김형석(연세대 명예)교수가 100세를 살면서, 이럴 때가 행복했답니다.

 

소중한 일을 찾았을 때, 돈보다 가치 있는 일을 찾았을 때, 행복했다고 하는 말에 감동이 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1) 쉬운 길이 아닌 바른길을 갈 때입니다. 

 

(2) 편한 길이 아닌 옳은 길을 가고, 진리의 길을 갈 때입니다.

 

(3) 갈림길에서 양심과 믿음을 따라 선택할 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창문이 열리고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스데반은 돌무더기 속에 묻혀 죽어가면서도, 하늘이 열리고 보좌 우편에 서신 주님을 보는 순간,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매를 맞고, 고난의 길을 가면서도 나는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라고 당당히 고백을 했습니다., 

 

당연히, 이런 고난을 그리스도의 흔적이라고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편안 길을 택했다면, 왜 순교를 했겠습니까?

 

지금 한국교회의 큰 위기는 야성을 잃고, 십자가 없는 영광에 취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에는 핍박이 많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얼마 않 되었기 때문에, 신앙생활도 쉽지 않았습니다. 

 

제사 문제나, 사회적 문제와, 많이 충돌하기도 하고, 외세 종교라는 오해로 핍박도 많았습니다. 

 

그러할 때는 오히려 신앙에 야성은 살아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것 때문에, 매 맞는 것은 예사고, 때로 집에서 쫓겨날 각오를 하면서, 죽어도 믿겠다는 고집과 당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숫자가 늘어나고, 사회적으로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신앙에 어느 정도의 보호막이 쳐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야성을 잃었습니다. 

 

야성을 잃어버리면, 타락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배부르고 등 따습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낄 때,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어둠의 영과 싸워야 할,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고 했습니다.(엡6:12)

 

싸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군인은, 군인이 아닙니다. 

 

싸움을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영성과 야성을 키워야 합니다.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살아나야 영성이 회복됩니다.

 

영성이 회복되어야, 야성도 살아납니다.

 

우리 교회의 정체성은 개혁주의 신학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개혁주의자들이 선포한 5대 솔라(Five Solas) 입니다.

 

(1) 오직 성경, (2) 오직 그리스도, (3) 오직 믿음, (4) 오직 은혜, (5)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이것을 삶으로 실천해 가며,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운동입니다.

 

이런 실천 운동은 교회와 세상을 변화 시키는 마중물이 됩니다.

 

걷잡을 수 없이 세속화 되어 가는 이 시대에, 개혁주의 신학은 한국교회 본질을 회복시키고, 세계화를 이루는 개혁운동입니다. 

 

오늘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희망을 잃고, 주저앉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왜 이런 고난을 당하는지 조차,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고 버렸다고, 낙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에게 민족을 구원할 메시야가 온다는 희망의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1) 무거운 멍에를 꺾어 버리고,

(2)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고, 

(3)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한다는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 이란 말이 구약성경에 40 여 회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영적의미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부함, 하나님이 주시는 부와 영예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다는 말씀은, 인간에게 주실 풍성함과 부와 승리와 축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위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임할 때,

 

1. 하나님은 일어나는 힘을 주십니다.

 

1) 일어나 빛을 발하라.(사60:1)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생활에 지치고, 영적 무감각으로 인해, 사명도 잃고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이렇지 않습니까? 

 

이럴 때 하나님은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일어나 빛을 발하라. 고 힘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1) 건강도 일어나고, 가정도 일어나고, 신앙도 일어나야 합니다. 

(2) 나라도 일어나고, 국력도 일어나야 정상입니다. 

 

문제는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힘이 없으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나 노인 어른들이 왜 잘 넘지는 줄 아세요? 

 

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힘이 있어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어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무엇입니까? 

 

2) 시대마다 힘의 기준이 있습니다.

 

(1) 원시시대의 힘은- 물리적인 힘이었습니다.

 

(2) 농경시대의 힘은- 경험이었습니다. -경험 있는 자가 앞서갑니다.

 

(3) 산업시대의 힘은- 기술입니다. -기술이 지배했습니다.

 

(4) 자본시대의 힘은 경영입니다. -어떻게 상대의 돈을 합법적으로 내게 어떻게 옮길까? 이것이 경영의 힘입니다.

 

(5) 인터넷 시대의 힘은 정보입니다. -지금은 정보 싸움입니다. 

   누가 정보를 빠르고 많이 공유 하느냐가 힘이 됩니다.

 

(6)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힘은 변화라고 합니다. 

   누가 더 빨리 변화를 대처하느냐가 힘의 구조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모든 힘의 원천이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힘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이 힘주셔야 일어 날수 있습니다. 

 

이사야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 하리로다.(사40:31) 

 

이것을 새 힘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힘을 말합니다. 

 

여러분! 이 힘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한국교회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 하루빨리 일어나야 합니다.

 

언제부터 인가 한국교회는 야성을 잃었습니다. 

 

이기적인 사회가 되어, 자기교회만 보호하려고 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큰 힘의 구심점이 없어졌습니다.

영적 전투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풍산개과 세퍼트가 싸우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풍산개와 세퍼트는 덩치가 1.5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처음에는 세퍼트가 공격을 계속하면, 풍산개는 이리저리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잠시 세퍼트가 집중력이 흐려진 틈을 타서, 한 번에 목덜미를 물고, 놓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이겼습니다.

 

덩치가 큰 세퍼트가, 작은 풍산개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길들여짐이 달랐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세퍼트는 집을 지키거나 수색 견으로 사용되어 집니다. 

 

그러나 풍산개는 사냥견입니다. 

 

세퍼트는 집이나 지키다 보니, 야성을 잃었고, 풍산개는 사냥을 위한 훈련으로 야성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신앙의 본질인 성전예배가 무너졌습니다.

 

예배는 신앙의 본질이요, 생명이요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전쟁 중에도 예배를 드렸고, 나라를 빼앗겼을 때도 예배는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전 문이 닫혔습니다. 

 

강제로 폐쇄된 교회도 생겼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교회들이, 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며, 텅빈 예배당을 바라보는 종들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니, 예루살렘 성전과 시온의 대로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며 바벨론 강가에 울부짖음이 들려옵니다.

 

중국교회들처럼 십자가를 떨어지고, 교회가 무너지는 모습을 상상해보셨나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사회주의 국가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말은 하지만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예배를 드릴 수 없도록, 교묘하게 방해하면서, 패쇠되어 지는 모습들을 보세요.

 

코로나를 빙자한 교회탄압, 종교탄압입니다.

 

형평성도 없고 일관성이 없습니다, 

 

교회의 예배공간과 관계없이 20명만 예배를 드리라고 하니, 이게 말입니까? 

 

시온의 대로에,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는 날, 바벨론 강가에서 울고 있던 성도들의 모습이 보여 지시길 바랍니다.

 

어떤 권사님이 예배드리고 싶어 성전 문 앞에서 엉엉 울었다는 말씀에 가슴이 미이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 살고 있으며, 그것도 기독교만 이렇게 교묘하게 박해를 합니다.

 

진짜 방역을 위한 조치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오히려 국가적으로 이렇게 어려우니, 종교단체에 기도를 요청해야 하는데, 교회의 생명인 예배를 못 드리게 하며 목조여 옵니다.

 

행정명령이라는 지침으로 예배를 닫았다 열었다 하며, 예배를 봉쇄한다니 분명 무슨 생각이 있는 듯합니다.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이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이해하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종교 탄압입니다.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백화점이나, 마트, 하루에도 수백만이 이용하는 전철이나 관공서에 거리 띠기는, 제대로 되고 있습니까? 

 

교회는 정부지침을 따라 철저한 마스크, 거리 띠기, 음식물 금지, 방역 소독 등 교회보다 모범적으로 잘하는 데가 어디 또 있습니까? 

 

그런데, 사회적인 조치와 형평성도 없고, 일관성 없이 일방적으로 예배를 봉쇄하는 것은 중국 같은 사회주의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의 탄압입니다. 

 

한국교회 연합기관이나 총회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교파를 초월한 전국6만5천 교회, 1천만 성도가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한 의분이 일어나야 합니다.

 

역사는 냉혹합니다.

신사참배로 부끄럼 당하는 선배들의, 신앙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 엄청난 교회가, 이미 문을 닫거나 멈추고 있습니다. 

 

다음세대, 신앙이 다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예배는 생명이기에 예배를 봉쇄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예배는 타협할 내용이 아닙니다. 

 

피가 모자란다고 물을 섞을 수는 없습니다. 

 

얼마 전 교회서 코로나에 감염됐다고, 소방관 2명을 직위 해제 시켰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코로나에 걸리면 다 사퇴해야 합니까? 

 

나라가 왜 이렇게 갈등을 일으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예배공간의 20%씩 거리 띠기와 방역수칙을 잘 지키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으로 여기는 예배를 드려지길 원할 뿐입니다”. 

 

예배드리겠다고 울면서, 성전을 들어오는 성도들을 못 들어오게 되돌려 보내는 목사가 성직자입니까? 

 

예배당은 텅텅 비어있는데 20명만 드리라고 하는 게 진정한 국민을 위한 방역입니까? 

 

기준도 없고, 형평성도 없이 교회를 억압하는 것, 동의 할수 없습니다.

 

요즘 교회들이 서서히 생명 살리는 목소리들을 내서 희망이 보입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주인공 안이숙 여사는 1908년 평북 출생으로 교편생활을 하였습니다.

 

전 교생이 신사 앞에 머리 숙이는 가운데서도 믿음의 절개를 보이며, 신사참배를 거부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린학생들 조차, 신사 앞에 머리 숙여 참배하는 모습에 분하고 억울해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그는 일본 제74회 국회 때 의사당에 들어가 ‘일본은 유황불로 망한다.’ 란 현수막을 던지고, 체포되어 투옥 6년 동안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했으며, 사행집행을 몇 시간 앞두고, 해방되어 순교의 기회를 놓쳤다는 이야기가 ‘죽으면 죽으리라’ 입니다. 

 

에스더에게 ‘이 때를 위함이라’ 했던 모르드개의 음성이 예배가 중단되고, 사회주의로 물들어 가는 우리 현실에 메아리가 되어 울림이 있기를 바랍니다.

 

2. 여호와의 영광이 임할 때, 모든 어둠을 빛으로 몰아내 주셨습니다. 

 

1) 어둠이 땅을 덮을지라도, 빛 가운데로 나오리라.(사60:2-3)

 

여기서 어둠은 시대적인 어둠도 되고, 영적인 어둠이기도 합니다. 

 

어둠속에 사탄이 역사합니다. 

사탄의 속성이 어둠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둠은 우리 힘으로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빛이 오면 한순간 어둠은 물러갑니다.

 

성도의 삶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세상을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혼돈하고 공허한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나누셨습니다.

(창1:2-3)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고 했습니다.(요1서1:5)

 

만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6절)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서로 사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7절) 

 

그러므로 빛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임할 때, 어둠은 물러가고 빛 가운데로 나오게 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빚의 갑옷을 입자. 라고 했습니다. (롬13:12)

 

빛의 갑옷은 예수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이 빛 입니다 (시119:105) 

 

진정한 은혜는 말씀이 내 영혼을 비출 때, 심령의 어둠을 몰아내고, 환경에서도 어둠이 물러가고 빛 가운데로 걸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등불로 삼고 걸어갈 때, 천국까지 길을 잃지 않습니다. 

 

3, 여호와의 영광이 임할 때, 다시 회복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는 회복입니다.(4-5절) 

 

포로생활에서 나라가 다 망하고 갈기갈기 찢어지고, 흐트러졌던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4절)

 

뿔뿔이 흩어졌던 자녀들이 돌아왔습니다. 

즉, 다시 회복되는 은혜를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시면 됩니다. 

 

찢어졌어도 하나님이 회복 시켜 주시면 치료가 됩니다. 

무너졌어도 하나님이 회복 시켜 주시면 일어납니다.

 

2) 은혜가 회복된 결과를 보세요. (5절)

 

그때에.....(5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할 때.

 

(1) 기쁜 빛을 찾고, 마음이 화창하리라 (5절 상)

 

포로생활에서 지쳐있던 삶이 빛을 찾았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회복한 것입니다. 

 

(2) 또한 재물이 돌아왔습니다.

 

바다의 부가 돌아오며 이방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5절 하)

 

놀라운 회복의 은혜입니다. 

빼앗겼던 재물이 다시 돌아오리라. 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시면 떠났던 건강도 돌아오고, 떠났던 물질도 돌아옵니다. 이것이 은혜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모든 게 회복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의 영광이 임할 때, 일어날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고. 신앙도 일어나고, 건강도 일어나고, 가정도 일어나고, 우리 민족도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또한, 여호와의 영광이 임할 때, 모든 어둠이 물러갑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비취이시리라 (엡5:14)  

 

역사는 현실이고, 냉혹합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어둠이 물러가고, 우리 민족의 어둠도 물러가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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