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얕은 묵상 - 시편 57편 10절

Caleb 0 2017.03.29 17:20

얕은 묵상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 For your unfailing love is as high as the heavens. Your faithfulness reaches to the clouds.” (시편 57:10)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속에 숨어 지내던 때에 지은 시라고 부제가 달려있는 시편 57편을 읽으며 전에는 이 시에서 가지지 못하였던 새로운 교훈을 얻었다. 물론 수없이 들어오고 여러 번 경험한 것의 소치로서 고난 가운데서 주님을 찾게 되고, 계속 주님께 구하여도 고난이 여전히 상존하더라도 그 고난이 있으므로 인하여 더욱 주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고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속마음은 어찌하던지 고난은 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가정하여 나에게 고난이나 괴로운 문제가 없는 인생여정이 이어진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될까하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 있다. 고난이라 할 만한 상황을 간간히 맞닥뜨릴 때마다 화들짝 정신을 차려 가다듬고 주님께 다가가 기도하는 자세로 나를 되돌리며 살아가는데도 교만과 나태함과 엉뚱한 것에 마음이 끌리는 유혹이 끊임없이 나를 끌어당기건만 만약 평안한 세월이 이어진다면 얼마나 더 이것들이 기승을 부릴까에 대하여는 자명하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믿음까지도 잠시 한쪽 구석에 밀쳐놓고 이래도 아무 상관없다고 여기게 될 것이라 짐작이 된다.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다윗은 굴속에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 고난의 계곡에서 집필한 다윗의 시는 대단한 기도문이다. 좁고 습하고 빛도 없는 굴속에서 드린 기도이지만 그 영혼은 오히려 우주에까지 다다르고 있음을 본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영혼의 웅장한 고백은 나의 가슴에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심장을 두드린다. 그리고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구하고 있는 다윗을 대할 때 하나님을 믿는 성도에게 있어서는 비록 제한된 공간에서 육신이 자유롭지 못하다하여도 오히려 영혼은 날개를 펴고 비상하여 더 넓은 우주공간을 날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실제로 고난의 굴속에 숨어 지내는 동안 다윗은 지금까지 잠자던 영혼을 일제히 일깨워 날마다 새벽을 밝혀 기도하는 영적 부흥을 경험하고 있는 것을 본다. 다윗의 인생 여정을 보건데 그가 왕궁에서 안락한 삶을 누릴 때는 그렇지 못하였다는 것을 성경에서 대조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위대한 다윗도 넓고 안락한 공간, 그리고 무엇이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지내면서는 영적 부흥은커녕 오히려 그는 휘하 장군의 아내를 보고 욕정이 동하여 그녀를 불러들여 왕권으로 거부 못하게 하여 음란죄를 범하였던 것을 본다.

 

고난과 영적 부흥, 평안과 믿음의 탈선에는 상관관계가 분명히 있다는 것은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익히 아는 교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기도하며 바라기는 고난당하지 않고 항상 주님의 보호 아래서 평안하기를 구하며 사는 어리석은 인생의 모습이다. 물론 그 어리석은 인생 중에는 내가 포함된다. 태평의 때가 한동안 이어진다면 고난의 광풍이 다가올 것을 자각하라는 신호이고, 경성하고 깨어 이를 대비하여야 하는 영적 경종임을 눈치 채야 할진대 이를 망각하고 잔잔한 호수같은 평안의 세월을 그저 누리며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인생이다. 이렇듯 인생의 본능적 목마름이 보호받으며 안락하게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라면 쉽사리 이런 생각의 태도를 바꾸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한 가지 해결 방법은 복과 평안의 정의를 평소 잘못 알고 있는 것에서 어떤 상태가 진정한 복과 평안인지를 다시 진지하게 묵상하여 생각의 전환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진정한 평안의 의미는 무엇일까? 위험과 질병과 사고와 다툼과 갈등, 재난 등을 당하지 않는 것만이 진정한 평안 혹은 주님이 주시는 은총과 복인가? 이것을 올바로 정리하는 것은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 된 성도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결부하여 문득 생각나는 말들이 있다. 내가 가난하여 감사드립니다. 내가 이렇게 투병하며 병마와 함께 살아가야 함으로 인해 주님 앞으로 더욱 가까이 가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수입이 우리가족의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큼만, 때로는 필요보다 부족하게 주셔서 오히려 감사합니다. 자녀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저희 온 가족이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등등...

이런 고백들은 이미 들어본바 있는 성도들의 주옥같은 간증의 고백들이다. 이러한 유의 고백적 간증은 물론 나에게도 있다. 그 중에서 흔한 간증의 하나로서, 만약 나에게 물질적 풍요가 주어졌다면 나는 더욱 타락하였을 것이다. 만약 내가 나의 재력으로 복음사역을 하였다면 나는 더욱 교만에 빠져 나의 의를 내세웠을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면에서 최소한의 필요만 채워주신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복이다.

주님, 주기적으로 고난을 경험하게 하시는 섬세한 주님의 배려에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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