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과 결과를 헤아리는 접근과 해석보다는 먼저 남은 자(=유가족)에 대한 관심을”(룻기 1:1~5)
룻기 1:1~5, 처음 다섯 구절에서 우리 독자들은 급작스러운 3차례의 비극을 만나게 됩니다.
• 첫 번째 비극(1절)은 흉년(=양식결핍) 때문에, 엘리멜렉 가정이 가나안 땅 유다 ‘베들레헴’(house of food=place of bread)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엘리멜렉 가정이 맞이한 첫 번째 비극은 바로 국가적 차원(=하나님 나라)에서의 비극입니다. 특별히 베들레헴(떡집=양식을 주는 집=place of bread) 고향을 떠나야만 하였다는 것은 너무나 아이러니 합니다. 전통적으로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양식을 제공하시는 곳이란 이름을 붙였던 그 ‘베들레헴’을 엘리멜렉 가정이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흉년(=양식결핍) 때문에, 하나님 나라(베들레헴 고향)를 떠나야 했던 비극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흉년(양식결핍)이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민을 시작하였으니, 이방 나라에서 정착과 안녕과 행복을 소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 그런데 급작스럽게 두 번째 비극(3절)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나오미의 남편(엘리멜렉=God is king)의 죽음입니다. 이 두 번째 비극은 사회적 차원에서의 비극입니다. 가장(남편)은 한 가정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동체 내에서 그 가정을 대표하기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는 것은 지역 공동체에서 그 가정의 결원(텅 빔)을 뜻합니다. 이렇게 나오미는 (일찍) 남편을 잃었지만, 그래도 남은 두 아들을 통하여, 더욱 그들의 결혼을 통하여, 이민의 정착과 안정과 행복을 꿈꾸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아들의 결혼생활 10년(4절)을 지날지라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초조한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 그런데 이런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보다 더욱 청천벽력 같은 세 번째 비극이 다가옵니다. 바로 두 아들까지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이제는 가정의 차원에서 비극입니다. 나오미는 완전히 텅 비어버리게(emptiness) 되었습니다. 이렇게 룻기는 시작하자마자 5구절에서 급작스러운 3차례의 비극을 보여줍니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비극(유다 ‘베들레헴’=양식의 집을 떠남), 사회적 차원에서의 비극(남편의 죽음), 가정적 차원에서의 비극(두 아들의 죽음)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들은 이 5구절의 성경본문에서 어떤 실마리를 찾아야 하며, 어떤 메시지를 발견합니까? 우선적으로 우리들은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 자체에 대하여 질문하고 해답을 찾아야 할까요? 그래서 흔히들 말하는대로, 이 가정은 가나안(=약속의 땅)을 떠났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였다. 또는 이방여인 모압여자와 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아이가 없었고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까요? 이런 접근과 해석을 소위 ‘인과응보(=원인/결과)’적인 해석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본문 3절과 5절에서 “뒤에 남았다”는 표현이 2차례 등장하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나오미와 두 아들이 (뒤에) 남았으며”(3절)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5절)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본문 자체는 우리들에게 이런 결과(죽음과 불행)에 대한 원인과 불행의 이유보다는 불행과 재난과 고통 가운데서도 살아남은 자(소위 ‘유가족’)가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행 가운데서 살아남은 자(유가족=나오미)에 대한 것입니다. 불행을 당하여 죽은 사람도 불행의 이유도 아닌 것입니다. 이 여인, 홀로 남겨진 여인에게 이제부터 누가 인애(=헤세드)를 베풀 것인가? 여기에 우리의 관심을 가지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