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으로 인도받아라
본문: 행 16:6-15
하나님은 비전을 이상 중이나 꿈에서, 또는 환상으로 계시하여 주십니다. 비전은 우리 믿는 자에게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꿈이자 청사진입니다.
비고) 비전은 일개인의 세상에 대한 스스로의 꿈, 즉 청운의 꿈이나 야망(ambition)이 아닙니다. 즉 비전은 우리 스스로 찾거나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소위 비전 메이커 (vision-maker)란 단어는 적절한 어휘가 아닙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청종함으로 복받음은 물론이고요 (잠 29:18). 야곱의 ‘하늘 사닥다리 꿈’이나 요셉의 ‘곡식단과 별 꿈’과 같은 꿈은 어떻겠습니까? 다니엘이나 에스겔, 스가랴 선지자 등의 이상들, 베드로의 ‘보자기’환상,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예수님에 대한 이상과 같은 비전은 어떻겠습니까?
비전이 없는 크리스천은 몸은 있되 눈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비전을 하늘로부터 받으십시오. 우리 모두 비전을 사모하며 비전을 보여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우리가 비전으로 인도받을 때, 우리의 삶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1.삶의 바른 방향과 목표가 정해집니다
본문 9절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비전을 받으면 희미했던 인생의 방향이 선명해집니다. 비전을 통해 앞으로 나의 인생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본문 6-8절에서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이를 허락지 않음으로 인해 그 땅의 도시들(브루기아, 갈라디아, 무시아)을 지나치며 드로아로 내려 갔습니다. 낙심하여 밤잠을 자고 있지 못했을 바울에게 하나님은 환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에 그는 하나님이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뜻으로 알고 목적지를 아시아의 비두니아에서 바꿔 마게도냐로 정했습니다 (9절).
사실 사도 바울은 확실한 인생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부활의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빌 3:10-14). 이 목표는 하늘에서 보여준 비전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행 26: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이처럼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비전을 이루어 드리고자 험난하고 고통스런 일평생을 자기 사명에 집중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아무리 확실한 방향이 잡혀졌다 하여도 항상 그 목표만을 향해 살아가지 못합니다. 때로는 목표가 흐려지고 때로는 빗나간 방향으로 표류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령님의 움직임과 다른 계획과 실행을 할 때가 종종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자신의 현재 방향을 하나님께로 바로잡는 트림탭 trim tap같은 방향조정(alignment)이 필요합니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또 다른 비전입니다.
우리 자신의 계획이 내 뜻보다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시도하려는 것을 저지한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따라야 하며 또한 그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사람들이 곧잘 인생에서 실패하는 것은 이러한 성령님의 명령보다는 육신의 생각을 좇아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롬 8:5-8, 13-14).
우리 모두 사도 바울이 하늘로부터 받은 비전에 따라 사역의 방향이 정해지고 조정되어졌듯이, 하늘로부터 비전을 받아 인생이 움직이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2.비전으로 인도받으면 열정과 힘이 얻어집니다 (본문 10-12절).
10절에 사도 바울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 했습니다. 그리고 11-12절에 즉각적으로 배를 타고 마게도니아 지경 첫 성인 빌립보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비전이 보이니까 열정이 생겼던 것입니다. 즉각적으로 실행했습니다. 그리고 수일을 기다릴 수도 있었습니다.
혹자는 열정과 힘을 돈, 권력, 사랑하는 어느 대상을 통해 얻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질투나 자존심, 복수심, 알콜이나 마약을 통해 얻기도 합니다. 어느 시인은 늘 술에 취했을 때 시상을 얻어 시를 쓴다 합니다. 마돈나라는 유명한 미국 여가수는 주체할 수 없는 열등감 때문에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공연한다 합니다. 그러나 이 어느 것도 긍적적이며 진정한 열정과 힘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온전한 열정을 만들어 내는 미래의 그림입니다. 비전과 열정은 서로 촘촘하게 얽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수반된 강력한 감정은 절대 숨겨질 수 없습니다. (참고: 열정 “enthusiasm” en Theos 하나님 안에서)
성공이란 한 가지 일에 힘을 다해 초점을 맞춘 결과입니다. 인생의 비전을 품고 사는 사람은 삶을 주도적 (proactive)으로 대합니다. 반면에 삶의 목적의식이 없는 사람은 그저 끌려가기만 (reactive) 합니다. 그러다 보니 비전이 없는 사람일수록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받은 비전으로 삶과 신앙생활에 열정과 힘을 얻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비전에 이끌림 받을 때 열매가 맺어집니다 (본문 13-15절).
바울과 일행은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아 나섰다가 문밖 강가에 모인 여자들에게 복음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루디아라는 한 여자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후 바로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그 집에 유하도록 강권함을 받았습니다. 이 루디아의 집을 통해 유럽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던 사실을 우리들은 주목해야 합니다. 이 유럽 최초의 교회가 어떤 연유로 세워졌습니까? 바로 사도 바울이 받았던 마게도니아 사람에 대한 비전을 통해서 이처럼 놀라운 열매가 맺어졌던 것입니다.
나아가 간수와 그 가족들 모두를 구원시키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바로 이후의 사건).
사도 바울은 이처럼 비전으로 인도받으며, 그에 맞는 사역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축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비전에 이끌림 받을 때 열매들이 맺어집니다. 우리는 “영혼구원과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함께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 비전으로 인도받음으로 열매를 맺으시는 복된 그리스도인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꿈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바로 이 하나님의 비전을 바라보며 이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늘의 비전을 사모하십시다. 그리하여 비전으로 이끌림 받는 삶을 사십시다!
1.비전으로 우리의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잡히는 삶!
2.비전으로 열정과 힘을 받는 우리 인생 여정!
3.비전으로 삶의 열매가 맺어져 가는 축복된 삶!
우리 모두 이같이 살아 가게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