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 자기가 창조한 세상과 피조물, 특히 인류가 자신을 대적하고 거스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합니다. 마땅하고 당연하게 인간은 멸망하고 죽음에 처해져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멸망하고 죽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이, 긍휼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죄인들이 멸망하고 죽는 것을 그냥 넘겨볼 수가 없었습니다.
2.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여기서 강조적으로 표현하는 말은 바로 “이처럼”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어지는 표현에서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바로 아들을 주실만큼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뜻입니다. 태초부터 아버지와 독특한 관계를 갖고 계신 그 아들을, 아무도 본적이 없는 하나님을 유일하게 보시는 그 아들을, 독생하사 아버지 품에 계신 그 아들을, 아버지와 가장 깊은 교제를 누리는 그 아들을,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의 대상인 그 아들을 주실만큼 세상//죄인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더욱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죽도록 내어주심으로써,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3. 당연한 멸망과 죽음의 대상자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음과 심판에 처해지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십니다. 여기에 적극적인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나타납니다. 비록 그들이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비웃고 대적하며 반역하는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죄 가운데 멸망하기를 바라지 않고 오히려 살기를 바라십니다. 단순히 무의미하게 생존만을 이어가는 그런 차원의 삶이 아닙니다. 바로 참 생명(=true life)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그 사람이 하나님 안에, 동거하고 동행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복된 생명을 영원토록 누리기를 기뻐하십니다.
••• 얼마나 더 이런 죽음과 사망의 소리들이 계속 이어질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4월까지 아니면 6월까지 또 아니면 계속해서 이런 세상이 될런지... 이제 성도들은 더욱 생명에 대한 말씀을 붙드시길 축복합니다. 참 생명과 영생에 대한 말씀이 여러분께 충만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