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얕은 묵상 - 사도행전 1장 5절

Caleb 0 2017.02.25 20:04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 John baptized with water, but in just a few days you will be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 (사도행전 1: 5)

성경을 여러 번 통독하였으나 이 부분 간과하고 지나간 대목이다. 그냥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더 이상 깊은 묵상이 필요하지 않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의 차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못하였다.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았다기 보다는 어렸을 적부터 장로교회에서 가르침을 받아온 나로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물로 세례를 받았으면 동시에 성령세례도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막연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다시 읽는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께서 승천 직전에 친히 말씀하시기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것을 읽을 때 시간적으로도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물로 세례를 받는 것으로는 충족되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면서 더욱 의문이 일어난다. 성도라면 반드시 성령세례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가 되면서 어떻게 보면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세례는 성령세례라는 것을 시사하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주님이 승천하신 이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쓰고 있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말씀대로 성령세례가 주어진 것을 확인하면서 성령세례는 부지불식간에 슬그머니 물세례와 동시에 주어지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특징적인 양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로 세례(침례)를 받을 때는 특별한 절차에 따라 그 세례를 집례 하는 독특한 양상이 있다. 집례자가 피 세례자를 물속으로 몸이 완전히 잠길 때까지 넣었다가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식이다. 오늘날 장로교회와 여타 몇몇 교파에서는 약식이라 할 정도로 손으로 물을 머리에 끼얹은 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다. 물로 세례를 베풀 때가 이렇듯 성령으로 세례가 임할 때에도 어떤 독특한 절차와 양상이 있지 않겠나 하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 사료된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성령이 임하실 때 특별한 현상이 일어났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첫 성령세례의 현장인 오순절 다락방의 사건은 교회 역사상 전후후무한 몇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첫째는 이미 요엘 선지자를 통해, 세례 요한을 통해, 그리고 주님을 통해 예언한 바에 따라 이루어진 점이다. 두 번째는 성령세례가 치르지는 시점에 일어난 특수한 상황이다.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 번째는 15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온 순례객이 저마다 자기 나라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으며 이를 다들 알아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진 베드로의 설교로 일시에 그 자리에서 3,000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렇다면 성령세례의 양상은 오순절 다락방 사건 때와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양태로도 성령세례가 임할 수도 있는가 하는 것이 매우 궁금하다. 다시 돌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보아도 성령세례는 물로 세례를 받을 때와 확연히 다르고, 그 담긴 의미와 목적도 다르기 때문에 물세례를 받은 제자들이 다시 성령세례를 받게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된다. 보다 놀라운 것은 성령세례를 받기 전과 받은 후의 성도의 인격과 삶이 확연히 다르게 바뀌는 것이다. 오순절 다락방 성령을 체험한 성도들은 전에는 그렇게도 두려움이 많았던 그들이어서 십자가 사건을 인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었는데 이제는 박해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환경을 극복하며 담대히 전하는 사역을 하였다는 것이다. 수많은 돌을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하늘을 우러러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외치며 순교한 스데반 집사를 시작으로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고통처럼 고난을 겪어가며 각자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열방으로 흩어져 주님이 주신 사명을 수행하였다.

이런 일연의 다른 점들을 가지고 묵상을 할 때 한 가지 고민은 그러면 나는 과연 성령세례를 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받았다면 의당 성령의 열매가 삶을 통하여 드러나야 할 것이고 인격도 획기적으로 변화하여 어떤 상황, 어떤 여건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도 불사하는 믿음과 담대함으로 오직 주님주신 사명을 이루기에 초점을 두고 모든 일을 영위해 나갈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는 여전히 연약하여 주님께 실망을 드리고, 여전히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죄를 짓고 있다. 획기적인 변화가 내 영혼에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하여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완전히 성화된다는 의미나 같은데, 죄악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나를 돌아보면 그저 믿음을 가진 자로서 이 정도는 행하며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복음의 현장을 돌아다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으로 다시 정신을 차리고 가다듬게 된다. 설사 내안에 이미 성령께서 임재 하시는 세례를 받았는데도 이를 구분 못하는 어리석고 아둔한 나의 영성을 꾸중하시더라도 나는 주님께 확실한 변화를 주시는 성령의 세례를 주시기를 기도한다.
사모합니다. 성령님, 오소서 임 하소서, 성령의 세례를 부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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