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얕은 묵상 - 욥기 12장 6절

Caleb 0 2017.02.23 09:44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의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 - But even robbers are left in peace, and those who provoke God -- and God has them in his power -- live in safety!” (욥기 12: 6)

욥이 처절할 만치 심각한 환난의 심곡에서 부르짖었던 외침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향한 항의조로 외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10장 15절에서 욥은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였고, 9장 12절에서도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다지도 심각한 고난을 경험해 보지 못한 입장에서 갑자기 환난을 당한자로 전락한 입장에서 주위를 바라보며 발견한 새로운 관점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신 정직하고 악에서 떠난 욥이며, 욥 자신도 나름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든 상황에서 주님 중심으로 살아왔던 것을 알고 있던 터이라 자신 같은 존재와 악행을 일삼고도 잘 살고 있는 자들을 비로소 비교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이 같은 비교는 누구에게서나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왜 내가? 왜 나만? 이라는 심리는 정죄 당하여 처벌받는 자의 측에서 징벌하는 권한을 가진 측에 호소내지는 항의를 하는 형태로 흔히 발동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앞서 위반 하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왜 나만 붙잡나? 하는 의미일 수도 있고, 혹은 저렇게도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지금 당하는 것 같은 벌을 내리시지 않으시면서 왜 정직하고 바르게 살고자 애쓰는 나에게는 이렇게 화를 내려 멸망당하게 하시는가 하는 호소일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라도 삶에서 어려움과 재난과 사고와 질병을 당한다. 반면에 악인도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건강하게 잘살고 물질적으로도 많이 누리며 사는 것을 흔히 본다. 오히려 성도는 말씀대로 바르게 살려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 정직한 언행을 하다 보니 거짓으로 덮지도 못하고 연루된 범죄의 사실을 시인하게 됨으로써 바로 입건되어 처벌을 면치 못한다. 그래서 더 어렵게 얽히는 경우를 당하고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신자이지만 거짓과 탈법으로 쌓아온 터라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자이기에 법률 대리인을 통해 온갖 법적 회피의 수단을 찾아 적용시켜 입건도 안 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누구는 정직하게 살려다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누구는 거짓을 무기로 하여 악하고 교활한 수단방법을 잘 구사하여 불행을 잘도 피해가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악인이 그렇게 피하고 모면해가며 언제까지 안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과, 의인이 또한 언제까지 그런 고난에 심연에 빠져 죽어가도록 내버려 둠을 당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욥을 통하여 교훈을 얻을 수 있듯이 과연 환난이나 재난이나 사고를 당하는 것이 우리가 이미 얻은바 하나님과 은혜로 이어진 구원의 연결고리마저 끊어졌다는 증거인가 하는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말씀 가운데서 수십 번 거듭 기록되어 있어 확실하다면 내가 이미 받았던지 아니면 앞으로 받을 환란으로 인하여 내가 모든 소망을 잃고 좌절하여 하늘을 향해 탄식하며 ‘나는 이제 망하게 되었구나!’고 외치며 탄식하고 원망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욥은 그의 기도에서 자신의 솔직한 고백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10:15)
이 말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았다고 하여 의연하게 머리를 들 수도 없지만 또한 나에게 악한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는 담대한 신앙의 고백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크리스천들이라 할지라도 흔히 뻔한 것을 부인하며 거짓말을 해놓고 본다. 그래서 잘되면 영원히 범죄의 행위가 묻힐 것이고 재수 없어 증거가 들어나면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얼굴 한번 쏙 집어넣고 그냥 죄 값을 치르면 될 것이라 여긴다. 왜 애초부터 정직하게 시인하지 못할까? 하는 것을 저주 생각해 본적이 있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도 생각해 보았다. 적당한 이유를 찾아 그것으로 나를 합리화하고서 한두 번쯤 거짓말을 해서 모면한들 뭐가 어때서 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지는 않는가를 스스로 체크해 본다. 간사한 인생,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또한 그런 순간이 오기 전에 나를 바르게 훈련시켜 그런 결정적인 때에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다운 정직한 처신을 자연스레 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함이 아직도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잠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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