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지옥에서 들려온 소리

김경열 목사 0 2018.10.21 21:43

묵상말씀 : 눅 16:19-28

제목 : 지옥에서 들려온 소리

                                     김경열 목사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눅16:24) And he cried and said, Father Abraham, 

 have mercy on me, and send Lazarus,

 that he may dip the tip of his finger in water, 

 and cool my tongue; for I am tormented in this flame.

 (Luke16:24)]

 

사람은 늘 꿈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육체의 나이를 먹어서 늙는 것보다 

꿈을 상실할 때 더 늙습니다.

 

구약에 갈렙은 85세의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하면서 가나안 땅에서

가장 고산지대인 헤브론에 도전하여 함락시켰습니다.

 

사람은 꿈을 가져야 희망이 생깁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하는 일을 즐겨야 합니다.

천재나 달인이라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니 엄청난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지겨우면 못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즐거워 미칠 때 명인이 되고

그 분야에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이 행복한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가장 어리석은 이는 

살아온 인생을 후회하는 사람입니다.

후회는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림을 그리다가 잘못 그렸으면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습니다. 

길은 가다가 잘못 갔으면 돌이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한번 지나가면 지울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일방통행과 같습니다. 

 

한번 주어진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오늘 말씀은 한 부자가 하나님을 버리고

인생을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죽어

음부에서 고통하면서 후회하는 고백입니다.

 

24절에 음부에서 너무 괴로워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향해 

손 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서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더 괴로운 것은 고통 속에서 

평안하게 안식하고 있는 상대편의 모습이

보인다는 사실이 더 괴로운 고통입니다. 

자신의 환경과 상대적인 비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고통 속에서 도움을 요청할 때

26절에 아브라함의 대답이

“큰 구렁텅이 있어서 내가 갈 수도 없고

 네가 올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부자는 괴로운 고통 속에서도 자기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지옥으로 올 이 땅에 

5형제가 생각나서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지옥에서 얼마나 고통 당하고 있는지를

형제들에게 전해주어서 내가 있는 지옥에 오지 않도록 

전해달라고 애원입니다.

 

우리만 구원 받았다고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진정 구원 받은 자는 우리 집에 

아직 남아 있는 식구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은 한 지붕 아래서 살지만

언젠가 이 땅을 떠나는 날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영적 이산가족이 됩니다. 

영적인 이산가족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인생의 몇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1.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19-22절)

 

1) 나사로도 죽고 부자도 죽었습니다.(22절) 

 

죽는다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라고 장수하는 것 아닙니다. 

성도도 죽고 불신자도 죽습니다. 

젊어서도 죽고 늙어 죽기도 합니다. 

병들어 죽기도 하고 사고로 죽기도 합니다. 

높은 자나 낮은 자나 죽는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조금 먼저 갈 수도 있고 조금 뒤에 갈 수도 있습니다.  

순서도 없이 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도와 불신자는 죽음부터 달라집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보세요. 

비록 이 땅에서 어렵게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살았습니다. 

그를 기다린 것은 천사들입니다. 

 

천사들에 받들려 아브라함 품에 안겨서

안식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자의 죽음은 이 땅에서는 호화롭게 살았지만 

방탕하면서 하나님을 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를 기다린 곳은 음부였습니다. 

 

23절에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아브라함의 품에서 

안식하고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를 보내서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서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24절) 

 

타들어 가는 혀에 물 한 컵도 아닌

"물 한 방울을 손끝에 찍어서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얼마나 고통스런 모습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상상할 수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2) 사후 세계는 

이 땅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25절) 

모든 일들이 이 땅에 살아 있을 때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1) 천국과 지옥도 이 땅에서 결정됩니다. 

예수 믿고 살았으면 천국으로 가는 것이고

믿지 않다가 죽었으면 지옥 가는 것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2) 상벌도 이 땅에서 결정됩니다. 

충성스럽게 살았으면 

장차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상을 받을 것이고

악하고 게으르고 불신앙으로 살았으면 

벌을 받을 것입니다.

 

마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2달란트나 5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없을 때

열심히 일해서 배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1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없을 때

땅에 묻어 놓았다가 본전만 가지고 왔습니다.

떠났던 주인이 돌아와 결산할 때 

충성된 종들은 칭찬을 받으며 더 많은 것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1달란트 받고도 묻어 두었던 게으른 종은 

결산 때 있는 것 마저 빼앗겼습니다. 

 

주인이 떠나 있는 사이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주소를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주인이 떠나 있는 사이 

게으를 수도 있고 부지런히 일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으로 살 수도 있고 불신앙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돌아올 때에는 반드시

결산의 때가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충성도 이 땅에서 하는 것이고

믿음도 이 땅에서 잘 해야 합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죽음 후에 천국과 지옥으로

상과 벌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이 땅에서의 삶을 바로 사는 것입니다.

 

2. 또 하나,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존재합니다.(25-26절)

 

1) 천국은 위로가 있는 곳입니다.(25절)

 

위로라는 말은 '자기 곁으로 부르다'라는 뜻입니다.

천국은 우리를 하나님 곁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슬픔을 당하기도 하고

고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우리를 하나님 곁으로 불러서

위로해 주시는 곳입니다.

 

계 21:4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더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1)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눈물을 닦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2) 애통하는 것도 없는 곳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위로자가 되시기 때문에

애통하는 일이 없습니다. 

 

(3) 아픈 것도 다시 있지 않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름 모를 질병들, 예상치 못한 사고들이

수없이 인생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천국은 질병이 없는 곳입니다.

            

(4) 계 22:5에 다시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도 쓸데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전 13:12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주님의 얼굴을 맞대면하고 보리라.”

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살지만

육신의 장막을 떠나는 날, 

저 천국에서 주님의 얼굴을 맞대면하고 볼 것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 살면서도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빌 3:20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나그네와 외국인과 같다 했습니다. 

나그네는 언젠가 떠나야 합니다. 

 

외국인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차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영결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영결식은 영원한 결별을 말합니다. 

우리는 또 만나기 때문에 환송식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러면,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

 

2) 지옥을 음부라고 했습니다.(23절) 

 

음부란? ‘하데스’란 말인데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이 가는 지하 세계를 말합니다.

음부가 얼마나 고통스런 곳인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한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지옥은 영원히 괴로움만 있는 곳입니다.(24절 하) 

괴로움이란? 아픔을 느끼고

고통하다, 슬프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지옥은 한마디로, 괴로움과 고통과 슬픔만 있는 곳입니다.

기쁨도 위로도 소망도 없고 

영원히 불꽃이 타는 곳이 지옥입니다.

 

평소에 가진 것이 많고 누리는 것이 많아서

하나님을 버린 부자가 

지옥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비참한 고통을 

입으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신약에서는 지옥을 ‘스올’이라고 부릅니다. 

그 뜻은 고통과 불 붙는 장소를 말합니다.

또는 지옥을 음부, 무저갱, 캄캄한 곳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4가지로 말씀합니다.

 

(1)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가는 곳(계 21:8)

(2)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와 악을 행하는 자들이 가는 곳(롬 2:8)

(3) 범죄한 천사들이 가는 곳(벧후 2:4)

(4) 복음을 거부한 자들이 가는 곳(마 10:15)이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는, 자신이 소유한 재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오히려 범죄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도

(1) 남보다 좋은 조건이 있습니까? 

그것이 죄악의 도구가 되고 있다면 복이 아닙니다. 

(2) 남보다 더 건강이 있는데 정욕으로 쓰이고 있다면

그 건강도 복이 아닙니다. 

(3) 남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악으로 활용되고 있다면 

그것도 복이 아닙니다.

 

본문은 부자라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남보다 더 좋은 조건이 하나님을 버리고 

죄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남보다 좋은 조건이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길 바라십니다.  

 

3. 자기처럼 고통 받을 다섯 형제를 생각했습니다.(27-28절)

 

1) 이 땅에 남은 형제의 구원을 생각하며

괴로워했습니다.(28절)

 

지옥의 고통을 겪고 있던 부자에게 마지막 생각난 것이 

구원받지 못하고 남아서 자기처럼 

지옥에서 고통당할 다섯 형제들이었습니다.

 

우리도 믿지 않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형제와 친척과 우리 주변의 영혼이 생각나야 합니다. 

 

지옥으로 떨어져가며 

나를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건너가고 있는데 물에 빠져서 

살려 달라고 손을 내밀고 아우성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외면하고 갈 수 있겠습니까? 

 

영적인 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미쳐 돌아가며

아우성치는 그 영혼들을 어서 구원해야 됩니다. 

 

우리는 그들이 매일 만나는 이웃들이요,

직장의 동료들이고, 사업을 같이 하는 동업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영생의 소식을 전하지 않아서 지옥에 갔다면 

그 영혼의 피값을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2) 이들에게 지옥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줘야 합니다.(요14:6) 

 

(1)예수 안에 길이 있습니다.(요14:6)   

(2)예수 안에 평안이 있습니다.(요14:27) 

(3)예수 안에 안식이 있습니다.(마11:28)

(4)예수 안에 인생의 해답이 있습니다.(행4:12)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

무당, 점쟁이를 찾아다니고 운명 철학관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답이 없고 길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길이 있고

평안도 있고 인생의 해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고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우리도 영적 이산가족들이 생각나야 하고

저들이 지옥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을 보는 눈도 열려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영혼이

우리 주변에 더 많습니다.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담대하게 입을 열고

구원의 손을 내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평생감사

 

                             뉴욕영안교회 드림

                              (917-963-9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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