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저의 집에서 파리가 들끓었습니다. 들끓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저 몇마리의 파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창문에 붙어 있는 파리를 죽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자기 전까지도 파리를 죽였으니 하루에 40마리 이상을 죽인 셈입니다. 한 삼일째 되었을 때 이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혹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떤 곳에서 감자나 양파 혹은 다른 음식이 썩어 있는 것은 아닌지 구석 구석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정문의 벌어진 틈에서 들어오는 것은 아닌지 그곳을 덕테이프로 단단히 붙여 놓았더니 다행히 금요일 부터는 몇십마리에서 몇마리로 줄어 들어서 조금 안심이 됩니다.그래도, 아직 완전히 박멸된 것은 아니니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는 상태입니다.
거의 일주일 동안 파리 죽일 생각만을 하다 보니,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죄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첫번째로, 부패한 곳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냄세나고 썩은 음식에는 어김 없이 파리가 끼는 것처럼,우리 마음 안에서도 가장 부패한 곳에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늘 거룩하고 정결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가꾸는 데 방심하게 된다면, 어느 새 그곳이 가장 냄세나고 부패한 곳으로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두번째 비슷한 점은, 죽여도 계속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 파리라는 놈은 정말 죽여도 계속 나옵니다. 정말 얄밉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막내 시헌이가 죽었던 파리가 혹시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고 이상한 소리를 할 정도로, 정말 매일 같이 창문에 달라 붙습니다. 그래서, 저하고 아내는 당신 몇마리 죽였냐고 서로 자신이 더 많이 죽였다고 하찮은(!) 경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도 우리 안에서 완전히 죽지 않고 계속 나옵니다. 이정도 신앙생활 했으면 그만 나올 것도 같은데, 웬걸! 정말 엉뚱한 곳에서 나옵니다. 이 죄는 우리가 그전에 뜨겁게 회개했다고 해서, 혹은 어떤 선교에 가서 은혜 많이 받고 왔다고 해서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없어진 것처럼 얼마 동안 조용히 있다가 다시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7절). 이 둘이 서로 대적하고 거스르는 것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론, 육체의 욕심이 전혀 나오지 않게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더욱 더 가까이 나가면 나아갈수록 우리가 육체의 소욕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을 따라 행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죄를 멀리하게 되는 길이요, 또한 그것이 성화의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이 성화의 길에 함께 동참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