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에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 저 사람 좀 고쳐주세요.” 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힘든 마음에 그 사람을 바꿔달라고 외쳤습니다. 그 때 제 마음에 들려온 말씀은 “잘되는 그걸 더 잘되게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난생 처음 들은 이해도 되지 않고 알 수 없는 이 외마디 음성을 들은 지 꼭 10년입니다. 달리던 그 순간 도로의 한 지점이 지금도 기억이 됩니다. 그 뜬금없는 음성 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은 잘되는 것에 집중하기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우리의 오해는 잃은 양 한 마리 이야기에 너무 잘 못 길들여 있는 점입니다. 그 이야기의 중점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잃은 양이 되라거나 잃은 양 찾는 자로 살라는 설득이 아닙니다. 목자의 심정을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도 중요하다는 점을 말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강조점은 그 하나에 대한 목자의 마음의 설명입니다. 하나를 찾아 나서라는 구절이 없습니다. “찾으면”입니다. “어떻게 하겠느냐?”입니다. 기뻐하겠지요. 그럼 기쁨을 위해 한 마리가 될까요? 한 마리 찾는 일에 집중할까요? 남은 99마리 양은 어떤 양들인가요? 한 마리보다 덜 중요할까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성경을 읽어도 잃은 한 마리 찾아 나서라는 요청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8장과 누가복음 15장의 기록을 찬찬히 읽어 보시길 희망합니다.
그 날, 10년 전 “잘되는 그걸 더 잘되게 하라.”는 음성을 들은 후 금방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연습했습니다. 집중했습니다.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잘되고 있는 일을 더 잘되게 하면 안 되는 일도 따라 잘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하는 사람이 문제도 해결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하는 그 한 사람만 있어도 많은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 되는 일, 사람, 불평 걱정하는 사람 곁에는 어둡고 칙칙하고 문제만 생성됩니다. 잘되는 것도 망칩니다.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줄어들고 갈라섭니다.
실패 경험은 두 가지 문제를 낳습니다. 낙심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다고 하지만 낙심이 자본이라 결국 망합니다. 또 하나는 복수, 보복, 보상, 명예에 목적을 두기 십상이라 성공까지 가지 힘듭니다. 그 부분은 그냥 두고 가는 길이 잘하는 길입니다. 냉정한 것이 아닙니다. 잘되는 것 보호하고 살리는 길입니다.
잘되는 것에 집중합시다. 안 되는 것 고치는 에너지로 잘되는 일에 투자합시다. 그러면 반드시 잘됩니다. 에너지 낭비하고 망하는 길에서 나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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