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속에 선 신앙
나는 인생 중반까지 직장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신학공부를 할 때도 직장 생활을 하였고 전도사 시절에도 강도사 때도 목사 안수를 받고도 직장 생활을 하였다.
한마디로 직장과 교회를 겸하여 신앙생활을 하였다.
언젠가 부목사가 된 나에게 담임목사께서 수요예배 설교를 하라는 명이 떨어졌었다.
직장 퇴근시간이 6시이니까 7:30분에 드리는 수요예배에 설교하는 일은 시간상으로나 경험으로나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목사 초년생에게는 멋진 설교를 해서 성도들에게 목사로써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칭찬도 받고 싶었고 또 담임목사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도 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드디어 그날은 왔고 난 직장 근무 중에 틈틈이 시간을 만들어 준비한 설교 원고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면서 만만의 준비를 하였다.
퇴근시간 30여분전!
사장실에 고위직 인사가 찾아온 것이다.
당시 비서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는 퇴근시간이 되었다고 훌쩍 자리를 떠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6시가 넘어 갔다. 도무지 두분의 면담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교회에 갈 시간은 다가오고 안절부절 못하는 내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역역했다.
이대로 퇴근하여 교회로 갈 것인가 아니면 교회가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예배시간이 임박해 왔다. 갈등은 계속되었다. 교회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포기해야 하는가
만일 퇴근해 버리면 사장이 노발대발 할 것이고 또 중대한 업무를 지시할 수도 있을 텐데 여비서 혼자 놔두고 퇴근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반대로 교회를 포기한다면 성도들과 담임목사는 뭐라 할까? 목사가 직장에 매여서 설교해야 할 자기 본분을 잃고 예배에도 참석하지 않는 목사가 진정한 목사인가 한마디씩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갈등 속에 나는 그날 교회 가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는 자기 직분에 사명감이 투철한 사원으로,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뒤엎어버린 파렴치한 목사로 남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이민 사회에서 주일에 일을 하는 성도가 많아지고 있다. 어쩌면 그들 모두가 신앙심이 좋은 교회 직분자들도 있을 것이다. 주일이 되면 이들도 지금 갈등한다. 교회를 가야하느냐? 직장을 출근해야 되느냐?
직장에서는 주일에도 교회를 포기하고 일하러 나온 용감한 사원으로 박수를 보내는 반면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한 믿음 없는 직분자로 인정해 버린다.
과연 직장을 포기하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권 안에 들어간 거룩한 성도이고, 반면 주일 예배를 포기한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권 밖으로 밀려난 성도인가?
여기에 기독교 상황윤리가 적용된다.
현실적 상황에 따라 우리는 목숨을 걸고 주일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직장도 가정도 포기하면서까지도 주일을 지켜야 할 상황이라면 우리의 마지막 선택은 두말할 필요 없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교회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내가족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직장을 선택했다고 믿음도 져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우리에게는 이원론적인 사상적 흐름이 현대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세상은 악하고 교회는 은혜받는 곳으로 이원화 시킨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 안에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가 교회 안에만 은혜가 수여된다고 하였나,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직장을 통해서 이웃을 통해서 사건 사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는 내려지고 있다는 것을....
신앙은 갈등에 연속이다.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가? 세상을 선택할 것인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당연히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주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세상을 선택하셨나요?” 대답은 “아니요”이다. 비록 직장에 출근하는 것으로 인해 함께 교회 공동체와 예배를 못 드렸지만 그들의 심령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열망이 더 강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더 하나님을 찾을 것이다.
결단코 주일을 못 지켰는데도 당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늘 그들 마음에는 “하나님! 주일에 교회 공동체와 함께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주시고 믿음도 주옵소서”라는 고백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현실을 정당화시켜, 어쩔 수 없어서 못나갔다고 당연하게 여기는 성도들에게 묻는다. 어쩔 수 없어서 이젠 당연한 것이 되었다고 여긴다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 두자.
“생활에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34)”
갈등!
이 육신이 벗어지는 그 순간까지 오늘도 그 갈등은 계속되지 않을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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