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주진경] 펄럭 펄럭 , 치렁 치렁 .....

주진경 목사 0 2019.09.2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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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벽 기도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은 물론 신앙에 그 기조(基調)가 있겠으나,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째는 예수님이 새벽에 기도하신 기도의 모범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늘 새벽 미명에 기도를 드렸다. 예수님의 하루 일상은 가르치시고 병자를 찾아가 고치시고, 복음을 전하시는 것으로 날은 저물어 갔다. 새벽이 아니면 그 기도하는 시간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 인간들의 일상은 어떻한가? 피곤이 다 풀리기도 전에 일어나 새벽길을 재촉하여 가게에 가서 문 열고 고객을 맞이한다. 야채가개, 생선시장에 가야하고, 벌써 세탁소 문 앞에 와서 기다리는 손님을 맞이 한다. 의자에 앉아서 여유있게 점심을 먹을 겨를도 없다. 일용할 양식을 얻는데 이렇게 일상이 바쁘게 돌아간다. 새벽시간에 기도할 시간 없다고 좋은 핑계를 찾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사실상 새벽에 기도하지 않고 그 날의 일을 시작하면 그 일에 밀리고 파묻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은 찾을 수 없게 된다. 하루 일이 끝나면 곤비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신문을 읽다가 잠들고 다음 새벽이 닥아 온다. 우리 일상은 순간 순간 하나님과 동행히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되면 실상 신앙생활이란 찾아 볼수 없고 겨우 주일 한 두 시간 형식적인 의식에만 참여하는 것 밖에 없다. 예수님이 새벽에 기도하신 것은 통상적인 이유로도 설명 될 수 있는 모범(模範)이다

 

둘째로, 새벽기도는 첫 시간을 드린다는데 최선의 제사성(祭祀性)이 있다는 것이다. 2의 아담 인간들은 그들의 하루 사는 양식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이 아름답게 지으신 삶의 터전을, 달리고, 치닫고, 퉁탕거리고, 내뱉고, 굴르고, 내딛고, 덜 끄덕 거리고, 망가트리며, 겨우 하루 양식을 얻을 무렵이 되면, 피곤을 더 못 참고 자리에 눕는다. 그 토록 무책임하게도 자기의 휴식을 찾아 침상에 누어 호흡을 한다. 그것은 밤이 된 까닭이다. 대체 어떻게 무방비, 무책임하게 그 귀한 생명을 누구에게 맡겨 의탁하고 태평한 숨을 내쉰단 말인가 ?! 

 

밤이 되니 아침이 되니라” ( 1: 8 절 이하 ..... ).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은 아침이 되는 동안 그토록 망가지고 훼손 된 채 무책임하게 내 팽개쳐진 우리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새롭게 재창조하시고 다시 우리에게 안겨 주신다. 가나안을 찾아 광야를 건너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곤하지만 이른 새벽에 장막을 헤치고 밖으로 나온 자들만 아침에 내린 생명의 양식을 얻을 수 있었다. 해가 나온 다음에는 그 만나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자산(資産)중에, 시간은 저장하고, 절단하여 나누어 주고,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가변적 가용 재산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그 시간에 채워 제물로써 드리는 수밖에 없는 삶의 자산(資産)이다. 그 중에 새벽시간의 기도는 내 삶으로 드리는 가장 첫번의 제물이요 제사인 것이다. 구약의 제사법에서 제물은 무슨 제사이든지 첫 열매, 첫 새끼, 첫 소산을 드리기로 되어있다. 새벽시간은 인간이 드릴수 있는 것 중에서 부자나 가난한 자나 누구던지 드릴수 있는 최상의 첫 제물이다. 두툼한 물질 제물보다도 더 거룩한 삶을 드리는 제사인 것이다. 이러한 새벽시간을 드리지 못하면 그 날 하루 드릴수 있는 최상의 제물을 상실하고 말게 된다. 오늘도 새벽기도에 나갔기에 공원을 한 바퀴 도는 계기가 주어 졌다. 크롸쌍(croissant) 한 쪽과 같이 드는 새벽 커피의 향미는 일품이다. 이렇게 같이 기도한 이웃들과 공원을 한 바퀴 돌며 땀으로 등을 적시는 것은 아름다운 교제로 심금에 새겨지고 몸에 채워진다. 걷다가 뛰다가 ..., 아무래도 행보가 느리고 둔한 나는 다른 이들에게 뒤쳐지고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따라가게 마련이다

 

 펄럭 펄럭,나를 제체고 앞질러 가는 젊은 여자의 머리채가 좌로 우로 펄럭 펄럭, 치렁 치렁 운치 있게 좌우로 흔들리며 춤을 춘다. 바른() 발이 앞으로 나갈 때, 왼 발이 앞으로 나갈 때마다 머리채는 좌우 양쪽으로 펄럭이었다. 치렁 치렁한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머리채가 좌우로 펄럭이고 치렁거리는 것은 몸()이 그 머리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채가 펄럭이는 것을 보며 푸른 한국의 새벽하늘을 우러러 보니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가 보인다. 국기 게양대(揭陽臺)에 계양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높다랗게 계양된 태극기의 깃발이 바람에 확 펼쳐저 펄럭이다가 바람이 잔듯하면 밑으로 축 늘어졌다가 다시 바람에 날려 펄럭인다. 만약에 계양대가 꺾어저 내려 쳐진 다면 깃발은 저렇게 기상(氣象)있게 펄럭이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에 국민의 주권의식, 그 정신으로부터 울어 나온 애국하는 마음이 없으면 국토와 민족 이라는 깃발은 펄럭이지 못할 것이며 휘날리지 못할 것이다

 

공원을 걷다 보니 공원 주변에 욱어진 갈대 숲이 바람에 날려 전후 좌우로 소요(逍遙)하고 있었다. 바람에 날려 쓰러질 것 같이 휘청거리며 소요하고 있는 갈대들을 보면서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의 말을 상기하였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인간은 생각에 중심을 두고 생존 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인간의 생각, “자기의 생각으로 생존을 유지해 간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 생각이 심히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불완전한 인간의 생각조차도 뒤로 제치고, 기계의 생각을 좇아가는 현대인의 인생은 얼마나 불안한 세대인가 ?! 다행히 인간은 갈대로되 생각하는 갈대이며 진리요 의()며 평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생각과 뜻은, 우리의 생각과 뜻이 다른,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의 중심이요 생명의 축()이기 때문에, 아침 공원의 산책길에서처럼, 우리 인간들의 생각의 머리채가 좌우로 펄럭펄럭, 치렁치렁 할지라도 계절풍(季節風)과 같은 이 세상속(世上俗)을 달려 갈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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