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한준희] 목사의 사례비

한준희 목사 0 2017.10.05 20:22

 

처음 목사 초년생으로 부목사로 재직을 시작하면서 성도님 가정을 심방하였다.

심방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성도님이 봉투에 돈을 넣어 내 호주머니에 넣어 주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받기는 했지만 이게 교회에 내는 헌금인지? 나에게 개인적으로 주는 사례비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 것을 받아 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라 내 스스로도 이런 것을 받는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또 용납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고 영 심기가 불편하였다. 그래서 같이 간 여 전도사님께 그 돈을 드렸다.

이 돈은 전도사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라고 넘겨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은 편했다. 매우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심방 때 받은 사례비나 기타 경조사 때 집례를 해 주었다고 받은 사례금이나 어떤 사례금도 내 개인적으로 가져본 적이 없었다, 사례비를 받으면 무조건 그분들의 이름으로 헌금을 해 버렸다. 그것이 나에게는 늘 자랑스런 당당함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의로움에 당당함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목회에 어려움이 오면서 경제적 문제로 인해 돈이 궁해지면서 돈 구하기에 바쁜 목사가 되었다. 어쩌다 심방을 하거나 타 교회 설교를 하고 받은 사례비는 교회로 이관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내가 쓸 수밖에 없어져 버린 것이다. 결국 경제적 어려움이 나의 의로움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것이다.

 

더욱이 매년 한국을 방문할 때면 여러 교회에 설교 초청을 받게 되는데 그때마다 적잖은 사례비를 받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터이라 의례히 한국 방문을 하게 되면 방문할 교회를 섭외해 둔다, 그리고 얼마의 사례비가 수입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것도 계산을 하고 한국을 갈 때도 있었다. 이쯤되면 타락한 목사(?)수준에 들어 갈만하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미 그렇게 돈에 물든 사람이 쉽게 그 유혹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번은 아주 연약한 교회에 초청을 받아 간적이 있었다, 교인이라야 10여명이니 헌금이 얼마나 들어오겠는가, 설교를 하면서도 이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는다는 것은 틀렸다는 생각을 하면서 설교를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헤어질 무렵 봉투에 사례비를 주는 게 아닌가, 내 나름대로는 연약한 교회인데 사례비를 받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극구 주머니에 넣어 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시 꺼내 선교비로 다시 헌금을 하겠다고 했는데도 끝내 받지 않고 나에게 그 사례비를 주고 헤어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니 이게 웬일인가, 너무 큰돈을 사례비로 주신 것 아닌가, 아니 그렇게 연약한 교회에서 이런 거금을 줄 수 있을까 의문도 생기고 어쨌든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감사함으로 받아 넣었다,

 

다음 주일 제법 규모가 큰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고 예외없이 그 교회에서도 사례비를 받았다. 그런데 봉투를 열어보니 이게 웬일인가 지난주일 연약한 교회에서 받은 금액에 1/5도 안되는 금액이 들어 있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의심을 하였다, 이게 잘못 준 것 아닌가?

하지만 잘못 줄 리가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으면서 나도 모르게 분노가 솟아났다. 아니 내가 이정도 수준밖에 안 된단 말인가. 먼 미국에서 온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대접하다니,

섭섭함과 분노가 묘하게 교차하는 미묘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이런 상황을 누구에게 이야기 한단 말인가,

 

또 언젠가 그때도 한국 방문을 했고 예년과 똑같이 교회 섭외를 해 보았다, 그런데 그때는 무슨 하나님의 뜻이 계셨는지 주일 오후 단 한번의 설교 초청 외에는 불러주는 교회가 없었다.

뭔가 마음이 조급해지고 마치 내가 쓰임받지 못한 무능한 목회자라고 여겨지는 초라함을 느꼈다.

그해 한국 방문은 시쳇말로 본전도 못 뽑고 돌아온 패잔병이 되어버린 듯하였다.

이게 바로 물질에 병든 목회자의 자화상이 아니런지...

나는 이런 물질에 병든 목사였다, 설교로 장사를 한 파렴치한 목사였다. 그리고도 성도들 앞에서는 물질을 초월한 거룩함을 가진 의로운 목사로 보여지기 위해 얼마나 위선의 가면을 썼던가

 

그렇게 물질에 연연 안 해도 언제나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20여 년 동안이나 체험하고도 그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돈에 물들어 설교를 장사의 수단으로 삼고 살아왔으니 얼마나 비참한 나였나를 지금도 두고두고 회개한다.

 

나는 지금도 물질과 싸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께만 매달리는 방법 외에 없다, 그래서 요즘은 사례비를 주는 분들에게 하나님께 직접 드리세요,” 이게 요즘의 나의 목회에 즐거움이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는 더 풍성함으로 채워주신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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